때,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드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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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 15:20(신약 121쪽)
설교제목: 때,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드시는 하나님.
누가복음 15:20 NKRV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훌륭한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요. 참으로 성경이 오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은 성경을 보면서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가 참 놀랍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그와 같이 볼 수 있는 선배들의 탁월함이기도 하겠지만요. 성경이 마르지 않는 생수를 우리에게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최근에 저는 우리에게 익숙한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의 이른바 탕자의 비유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해석을 만났습니다. 이는 새물결플러스라는 기독교 출판사의 사장으로 있는 김요한 목사님의 이야기인데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이 ‘탕자의 비유’가 제게 무척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또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때라는 카이로스를 새롭게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우선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잘 알고 계신 것처럼, 그 이야기의 대략은 이러합니다. 아버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받을 유산을 달라고 하여서 그것을 가지고 집을 떠납니다.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데, 그는 아버지의 종을 자처했으나 아버지는 이 아들을 기꺼이 아들로 기쁘게 맞아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흔히 탕자의 비유로 소개가 됩니다. 그리고 탕자가 마음을 돌이켜 이른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교훈으로 등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이 비유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세리와 죄인들로 소개되는데요. 결국 이 비유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리와 죄인들에게 탕자와 같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김요한 목사님은 이 비유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해주는데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실 탕자가 아니라 아버지 곧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탕자로 나타나는 둘째 아들에게 구원이 임하게 된 것은 사실 탕자의 회개가 아니라, 표현이 좀 이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회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통해 볼 수 있는데요. 다시 한번 같이 오늘 성경 본문누가복음 15장 20절(신약 121쪽) 말씀을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5:20 NKRV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 장면은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서 매우 이상한 장면입니다. 우선 성인 남성이 달린다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 됩니다.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당시 문화에서 성인 남성이 어린이들처럼 달리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조선시대에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지만, 양반은 비가 내려도 뛰지 않는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또 둘째 아들이 유산을 먼저 달라고 한 시점부터 그는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킨 불효자가 됩니다. 이러한 아들을 당시 문화의 관습에서는 동네의 발을 붙지 못하도록 그의 발에 접시를 깨뜨렸다고 합니다. 이는 그 동네에서의 영원한 추방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러한 아들을 안고 입을 맞춘다는 것은 그를 환대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당시의 문화적 상황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탕자인 둘째 아들에게 달려가 그를 환대하는 것은 아버지가 당시의 문화적 관습을 깨버리고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됩니다. 혹시라도 다른 누군가가 먼저 아들을 발견하여 아들을 그곳에서 영원히 추방해 버릴 수도 있기에 아버지는 서둘러 아들에게 달려가고 아들을 맞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이 사실은 탕자를 구원으로 인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탕자의 비유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탕자인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이고 아버지의 행동을 통해 탕자가 구원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이 어제 나눈 용서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어제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마음을 먹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본래는 율법에 따르면 우리는 마땅히 정죄 받고 심판받아야 할 사람인데요. 그로 인해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속하지 못할 존재이지만요. 하나님은 친히 우리에게 달려오셔서 우리를 안으시고 우리를 맞아주심으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의 열심과 노력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서 김요한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하나님의 때와 연결을 시킵니다. 신약성경 마가복음 1장은 14절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때가 찾고” 여기서 말하는 때는 헬라어로 ‘카이로스’라고 부릅니다.
성경에는 두 개의 시간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헬라어로 크로노스인데, 이것은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그러니깐 몇 시 몇 분 몇 초 또는 몇 월 몇 일과 같이 날짜와 달력으로 규정되고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러한 시간 말고 앞서 말한 ‘카이로스’라는 시간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한 사건을 기념하는 때인데요. 가령 7월 4일은 그렇습니다. 잘 아시디시피 이는 우리 신황등교회의 창립일입니다. 이처럼 흘러가는 시간과 달리 특별하게 기념되는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그것은 흔히 ‘하나님의 때’라는 것으로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앞서 얘기한 마가복음 1장 14절에서 예수님이 “때가 찼고”라고 말씀하실 때 이 때는 특별히 기념할 때 곧 카이로스로서의 시간입니다. 20세기의 유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 카이로스의 시간은 복음이 전파되기에 무르익고 준비된 시간임을 말하는데요. 당시 로마 제국을 통해 세상은 연결되어 있었고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가 복음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토대가 갖춰져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복음이 전파되기에 충분한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요한 목사님은 이 때에 관하여 앞서 누가복음 15장의 이른바 탕자의 비유를 바탕으로 새롭게 풀어갑니다. 이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마음 먹고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신 때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결심하신 사건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카이로스의 때는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마음을 먹은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본격적으로 우리 가운데 일하시기로 결심하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로 마음을 먹으시고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이른바 회개 또는 카이로스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은 결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와 은혜에 바탕을 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가 그 구원에 은혜에 참여함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일이 다름 아닌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생각합니다. 성경이 참 놀랍다.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른 관점으로 풀어내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그 분은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성경을 통해 주님의 풍성함과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날로날로 성경을 통해 새롭게 경험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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