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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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 14:6(신약 172쪽)
설교제목: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근에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접했습니다. 어찌보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구원받았나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살던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이 구절에 근거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화된 말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순신 장군이 예수님을 몰랐고 그 분을 믿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요. 아브라함은 어떤가요? 그보다 앞선 아담은 어떤가요? 심지어 아담은 하나님께 범죄하여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는데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곤 하지만, 사실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구약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그들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이순신 장군이 구원받았는지에 관한 문제는 보다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어요. 그가 예수님을 몰랐던 것처럼, 구약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 심지어 믿음의 본을 보인 많은 인물들도 예수님을 몰랐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초대 교회에서는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성경의 인물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를 묻는 이야기가 없어요.
그렇다고 초대 교회가 신앙에 관계된 여러 문제들에 관하여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사실은 여러 가지를 도전받았죠. 신약성경 고린도전서만 보아도 엄청나게 많은 문제들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가령 이방인도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먹어도 되는지, 예배할 때 여성의 복장에 관하여, 성만찬에 관하여,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부활에 관하여 등등 여러 신앙생활에 관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그것에 초대교회는 답해야 했어요.
그런데 놀랍게 앞서 의문을 제기한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구원받았는지에 관한 문제제기는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하나는 이것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문제가 될만한 것도 아니라는 거였어요. 둘 중은 어느 쪽이든 확실한 것은 성경은 이에 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아마도 이것은 문제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이에 관해서 어떤 힌트를 얻을만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기도 합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7장 29절에서 31절 말씀입니다. 좀더 쉽게 풀어 쓴 새번역 성경으로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 17:29-31(신약 218쪽)
29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신을,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새겨서 만든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30 하나님께서는 무지했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31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정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하신 사람을
내세워서 심판하실 터인데,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의 아테네 성경표현으론 아덴에 가서 행한 설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 여러 신상들을 보고 심지어 이름이 없는 제단도 보았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그 이름 없는 제단에 속한 신의 정체를 말하겠노라 하면서, 그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심을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무지했던 시대 곧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들에 관해서는 ‘눈감아 주셨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 주님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은 자신을 미처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그 잘못을 따져 묻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신을 아는 이들에게 온전히 믿을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본문 요한복음 14장 6절의 의미가 이러합니다. 이것은 비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른바 지옥간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을 들었던 이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도마입니다. 그러니깐 예수님은 지금 자신을 알지 못하는 무리와 세상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본 제자들을 향해서 또 오늘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참된 구원의 길인데, 이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믿고 따르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우리로써는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을 구원하실까요? 예수님을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까요? 사실 이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답이고,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영역입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서 우리가 깊게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얼마 만큼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또 우리의 믿음은 구원을 받기에 충분한가요?
이렇게 우리는 구원에 관한 문제 관하여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믿음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말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이루실 분은 우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한 자세로 신앙생활하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계획을 측량하거나 재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구원받냐 안 받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로써는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따른 문제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알고 그 분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온전한 삶인지를 끝임없이 돌아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내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지를 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우리가 불안해 떨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 구주로 영접하고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간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믿음 가운데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걸음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우리로써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늘 주님 앞에 묻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저와 우리 성도 분들께서도 온전히 주님을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오늘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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