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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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67:1-2(구약 849쪽)
설교제목: 복주시는 하나님
시편 67:1–2 NKRV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본래 핵심 구절은 4절입니다.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이 시편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있는 4절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예를 들면 1-2절과 6-7절 그리고 3절과 5절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보자면, 마땅히 4절이 이 시의 핵심구절이고 그 내용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1-2절의 구절을 통해 시인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는 이유인 ‘복’에 관하여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무엇이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은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대략 우리가 복을 생각할 때, 어떤 일이 잘 되는 것이 복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간절히 바라던 또는 기도하던 일들이 이뤄지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물질적이고 유한한 복일 수 있는데, 이는 성경이 말하는 복과는 차이가 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잘먹고 잘사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또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했던 복은 그러한 차원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단 복은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생명력입니다.
예를 들면, 구약성경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은 새와 물고기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만약 복이 물질적인 가치 또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관계된 것이라면, 새와 물고기에게 주어진 복은 무엇일까요? 사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성경이 말하는 복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창조된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히 살아가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생명력입니다.
좀더 부연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아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제 기능을 수행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요. 가령, 우리는 육체의 호흡이 끝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죽음이란 육체의 기능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에 따라 온전히 살아가느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아무리 멀쩡하게 움직이는 인간이라도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그는 살아도 산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시계가 계속해서 정확한 시간을 알려줘야지 제대로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이 시간이 어긋나서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작동하지 않는 것과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만드신다고 부르실 때’ 그가 받은 복은 부와 존귀와 영광과 같은 세상적이고 물질적이며 유한한 복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복의 전부였다면,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기 이전부터 그와 같은 복을 누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의 고향으로 알려진 갈대아 우르는 매우 발달한 도시였고 거기서 아브라함은 오랜 시간을 살았던 것으로 보아 적잖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해서 불러낸 곳은 자신이 살던 갈대아 우르보다 사실은 더 척박한 땅이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종종 기근을 피해서 이집트로 내려갔다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다고 또 복의 근원을 삼아주신다고 한 것은 그 복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원리에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고 그로부터 구원받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은 사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다시 한번 같이 오늘 시편 1절과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67:1–2 NKRV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1절을 자세히 보시면,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고서 복이 따라 옮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구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 곧 호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을 통해 이룩되는 관계의 시작이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개미가 인간에게 자신과 친구가 되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데, 사실 개미는 인간을 발견할 수라도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힘으로 발견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오시지 않으면 은혜를 베풀어주시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복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생각하고 복을 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것저것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실 것을 알기에 그렇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 순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시는 것으로부터 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가는 것이 사실은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복은 사실 우리의 물질적인 필요나 그것의 획득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돈 많이 벌고 부자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만약 그것이 복이라면 성경의 많은 인물들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신 인물들이 잘먹고 잘살았다는 얘기로만 도배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철저히 믿었던 이들 가운데 많은 고통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머리둘 곳조차 마땅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삶이 불신앙적이거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삶이라거나 평가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가난한자가 복되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실 중요한 것은 돈 많이 벌고 부자되는 것이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에도 돈 많이 벌고 부자된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의 전부라거나 복의 원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그렇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라 죽습니다. 나무에 온전히 붙어서 생명력을 가진 나무가지만이 온전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서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상태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한 목적에 따라 사는 삶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력에 따른 삶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유한한 가치 곧 죽어나 썩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있는 한에 영원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야 말로 복입니다.
물질은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인 생명력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고 있는 때까지는 썩어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저는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주님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우리와의 관계를 바로 세워주실 것을 구해야할 것입니다. 오늘도 이에 따라 살아가는 저와 우리 성도 분들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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