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로마서에 관하여-3. 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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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 5:1(신약 245쪽)
설교제목: 신약성경 로마서에 관하여-3. 화평
로마서 5:1 NKRV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신약성경 로마서를 살펴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마지막으로 ‘화평’이라는 주제로 로마서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우선 오늘 화평이라는 주제를 나누고자 하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앞서 로마서의 두 가지의 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가 복음이었고, 두 번째가 구원이었습니다.
보충해서 말씀을 드리면, 복음은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까닭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결과로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화평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우리가 누리게 된 삶입니다.
그런데 이 화평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실 이것을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면 히브리어 ‘샬롬’이 됩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의 원문은 헬라어이기 때문에 헬라어로는 ‘에이레네’라고 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는 유대인들의 인사이고, ‘평화’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 또는 화평은 유대인들의 핵심적인 신학사상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만물이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장 복되고 이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에덴동산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화평이라는 것은 단지 마음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 곧 온 우주의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 사도 바울이 신약성경 로마서에 이 화평이라는 말 할 때는 당시 로마제국의 의한 평화 흔히 ‘팍스 로마나’라고 하는 말을 염두해 두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나라는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 이룩한 질서를 로마의 평화 곧 ‘팍스 로마나’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세계가 로마에게 굴복하여서 평화롭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로마가 이룩한 평화는 로마에 속한 나라들에게는 평화였을지 몰라도, 그밖에 있는 나라들에게는 공포와 파멸과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런 거죠. 친구일 때는 든든한 사람이 적으로 돌아서면 굉장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좋은 관계에서는 화평을 이룰 수 있지만, 그 관계가 달라짐에 따라서 언제든 무너지고 파괴될 수 있는 것이 로마의 평화 곧 팍스 로마나였습니다.
이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의 평화는 거짓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평화는 진짜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화평을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평화는 힘으로 굴복시킨 폭력의 산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은혜로 자기를 희생한 사랑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야 말로 참 평화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화평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삶은 화평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에게는 화평하지 못한 상황들이 더 많습니다. 화평이라는 것이 고통이 없는 태초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참으로 화평을 누리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화평이 임했지만, 아직 이 세상에는 악한 영 곧 사탄이 남아서 우리에게 거센 공격을 퍼붓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비유하자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8월 15일을 통해 일본제국의 황제가 항복을 선언하고 그로 인해 우리는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지만, 아직 그 소식이 닿지 않은 곳에서 여전히 일제의 잔당들이 남아서 우리의 눈을 가리우고 우리에게 막바지 공격을 퍼붓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사탄의 잔존세력이 남아 우리를 고난 가운데로 몰아 넣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지만, 아직 우리 가운데 완전한 화평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화평을 훼방하는 악의 세력이 우리의 삶에서 화평을 누릴 수 없도록 오히려 고난을 경험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나 아직 구원의 완성인 화평이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 이유 때문에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힘겨운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모든 것이 좋아지고 완전해지면 좋겠는데, 여전히 우리는 세상 가운데 잔존해 있는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승리와 패배를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이로 인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때때로 고통 당하거나 고난에 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고난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벌을 주기 위함이라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대적자 사탄이 구원의 완성을 이루고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방해하고 공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격이 매섭기 때문에 우리는 자칫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 사탄의 계략에 또는 사탄과의 전쟁에서 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느 때에 이뤄질지 모르는 구원의 완성을 향해 가는 길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결국 우리를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지신 그 십자가가 다 무슨 소용이 있고, 우리가 진정으로 어떻게 화평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를 돕는 존재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간구해 주시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능력와 지혜로 우리는 바로 설 수 없기에 오히려 구원의 길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온전히 구원의 완성을 이뤄가도록 그리하여 화평을 누리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결과적은 신앙인의 삶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해내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사탄의 방해와 공격은 우리에게 매우 치명적이며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온전한 신앙생활을 이루기 위해서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성령의 도우심은 우리를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이겨나가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저는 이로부터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내 경험과 내 지식이 우리 신앙생활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사탄의 강력한 공격을 미처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먼저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오늘 우리 성도분들께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우리를 화평케 하고 우리를 구원의 완성으로 인도하여 줍니다. 오늘 저와 우리 성도 분들께서 이렇게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화평을 이뤄갈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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