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로마서에 관하여-2.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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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 3:21-24(신약 243쪽)
설교제목: 신약성경 로마서에 관하여-2. 믿음
로마서 3:21–24 NKRV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번에 이어서 신약성경 로마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번에는 복음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오늘은 믿음에 관한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이는 지난 번 이야기와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해서, 지난 이야기를 간략하게 짚으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번에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음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기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곧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이 주된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복음이 왜 필요한 것일까요? 간단히 말해보자면, 모든 인류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죄인된 인류를 둘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는 이방인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입니다. 먼저 이방인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상을 섬기고 그에 따른 불의와 악행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죄인으로 규정됩니다. 한편 유대인은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께 부여받은 말씀 곧 율법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죄인으로 규정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얘기하는 것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지 못한 것에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인으로 죄인이라는 말을 쓸때는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법에 어긋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함을 받을 수 없기에 곧 구원에 이를 수 없기에 우리에게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믿는 것이 곧 신앙인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을까요? 이는 크게 두가지 차원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속량입니다. 본래 이말은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 죗값을 지불한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속죄입니다. 속죄는 구약시대의 제사와 관련되어 있는데, 자신의 죄를 제물에게 안수하여 전가시켜서 자신을 대신하여 죽게 하여서 죄를 용서 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이러한 속죄를 이룬 것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해보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사단의 권세에서 종노릇 하던 것에서 속량을 받았고 우리의 죄에 관하여 하나님께 속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여기까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또는 매우 익숙하게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고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느냐하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에게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관련해서 오늘 성경본문인 로마서 3장 22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3:22 NKRV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방금 읽은 구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라는 표현을 주목해 보셔야 합니다. 이것을 신약성경 원어인 헬라어의 의미를 좀 더 담아서 풀어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을 믿은 신실함을 믿는 믿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에 관한 그 믿음을 우리가 본받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 봐야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건은 단순히 정해진 길을 따라 가거나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길을 벗어날 수도 있었고 그것을 충분히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그런 기도를 하시지 않습니까.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자발적인 순종에 따른 것이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와 같은 예수님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얘기입니다.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믿음은 수동적인 차원의 또는 지적인 차원의 동의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차원의 행동입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믿음을 얘기할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합니다라는 고백만으로 충분하다고 또는 그것을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행함으로 들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이는 본래 믿음이라는 것이 행함을 동반한다는 뜻이고 믿음이 단지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하는 차원 이상의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인도 하나님을 아는 유대인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단지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에게 그러한 삶이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이루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있고 마지막 날에 알곡은 곡식창고에 저장될테지만 가라지는 불에 태워질 것을 말입니다. 더욱이 심판의 때에 우리는 양과 염소로 갈라져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염소로 비유된 이들은 자신들이 신앙생활을 또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멸망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오늘 우리의 믿음을 온전히 세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써만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말씀을 쫓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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