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고린도전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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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3:13(신약 278쪽)
설교제목: 신약성경 고린도전서에 관하여
고린도전서 13:13 NKRV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신약성경 고린도전서에 관해 나누려 합니다. 중간에 흐름이 끊어져서 반복해서 이야기를 드립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을 이 시간에 역사적 순서에 따라 살펴보고 있습니다. 맨 처음이 갈라디아서 였고, 그 다음이 데살로니가전후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뒤를 이어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쓴 편지 중에서 분량이 로마서 다음으로 많은 책입니다.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모두 합치면 로마서보다 분량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로마서가 가장 먼저 나오고 그 다음이 고린도전서와 후서 그리고 갈라디아서입니다. 이는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역사적 순서가 아니라 기록된 양에 따른 순서입니다.
그러니 고린도전서와 후서는 이 시간에 한꺼번에 다 다뤄서 얘기하기에는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린도전서를 나누고 다음 번에는 고린도후서를 나눌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워낙 내용이 다룰 내용이 많기 때문에 사실은 수박 겉핧기 식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고린도전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주어진 시간에 전하려 합니다.
그럼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가서요. 고린도전서는 잘 아시는 것처럼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는 어디일까요? 현재는 그리스에 속한 도시이고 성경에서는 아가야라고 나오는 지역에 속한 도시입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때에 이곳을 방문하여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당시 고린도 또는 아가야 지방은 로마제국의 중앙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에 따라서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과 같고 미국으로 치면 뉴욕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러 있을 때에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들이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그 문제에 답하고자 편지를 씁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여러 문제 가운데 하나는 사도 바울이 쓴 편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현재 그 편지는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앞서 보낸 편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편지로 생겨난 문제들에 관해 답합니다.
그러니 사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에 그 보다 앞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였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로 인해 생긴 문제에 답하고자 사도 바울은 두 번째 편지이자 오늘 우리가 보는 고린도전서에 해당하는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디모데를 통해 전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직접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가르침을 전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습니다.
괴로운 마음을 품고 에베소에 돌아온 사도 바울은 보다 강경한 어조로 다시 세 번째 편지를 써서 디도를 통해 전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세 번째 편지가 효과를 발휘하여 고린도 교회가 안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쁨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네 번째 편지를 쓸 무렵에 고린도 교회로 부터 또 다른 소식을 접합니다. 이른바 거짓 교사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바울을 폄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네 번째 편지를 보낸 이후에 혹은 그와 동시에 다 섯번째 편지를 통해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쓰인 편지가 오늘 우리가 보는 고린도전서와 후서로 남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에 관한 내용만 살펴볼 것인데, 사도 바울이 답한 고린도 교회의 여러 문제들에 관해 제목수준에서만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교회의 분열에 관한 문제’. ‘근친상간에 관한 문제’, ‘법적소송에 관한 문제’, ‘성적타락에 관한 문제’, ‘결혼과 성에 관한 문제’,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관한 문제’, ‘예배때 여성들의 복장에 관한 문제’, ‘올바른 성만찬에 관하여’,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부활에 관하여’, ‘성도를 위한 구제에 관하여’가 그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꽤 여러 종류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각각의 세부적인 내용을 이 시간에 살펴볼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기게 된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이는 고린도라는 도시의 특성에 따른 것입니다. 고린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또 상업이 발달한 도시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 간에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경쟁에 과열되었습니다.
오늘날 서울과 같은 대도시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인데요. 서울에는 각 지방에서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도시가 발달했고 그에 따른 경쟁이 심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을 획득한 이들은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자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쌓게 되고 그 경쟁에서 밀린 이들은 거처를 마련하기도 어려워 노숙자가 되기도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서울에는 부자도 많지만 노숙자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고린도가 그와 같은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특출나거나 자기를 과시해야했습니다. 그러한 도시의 분위기의 영향으로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과시적으로 들어내보이려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공적인 예배에서 방언을 사용하는 것들을 자제하도록 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것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경쟁과 양극화로 인해서 여러 분파로 분열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아볼로파, 바울파, 베드로파, 예수님파와 같이 여러 파당으로 나뉘어진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혼란스럽고 분열된 고린도 교회에 관하여 바울은 여러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입니다. 다시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 NKRV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도 바울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가깝게는 성령의 은사를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것에 관하여 교훈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과시적으로 경쟁하고 분열된 공동체를 위한 신앙적이고 목회적 처방으로써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하여서 남을 나보다 높이고 서로 하나 되기를 힘쓰는 공동체를 이루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높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이것을 모르지 않고 이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어떤지 깊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나보다 귀히 여기며, 기꺼이 나를 낮추고 있습니까? 또한 우리는 서로 하나 되기를 힘쓰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불행하게 저는 우리에게 그와 같은 모습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자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내 뜻과 감정에 먼저 반응하고 그것을 따르곤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잘 사랑하지 못하고 우리는 잘 하나되지 못합니다. 그렇게보면 우리와 약 2000년 전 고린도 교회는 크게 다를 바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성경의 가르침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쉽게 따르기가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바라건데, 저는 오늘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 가르치는 사랑이 그때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덕목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께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를 귀히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와 같은 삶을 이루는 오늘 저와 우리 성도님들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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