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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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56:9-11(구약 843쪽)
설교제목: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시편 56:9–11 NKRV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제목 흔히 표제어라고 부르는 것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표제어는 구약성경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였던 골리앗을 쓰러트린 일로 사울 왕은 다윗을 질투하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떠돌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울보다 다윗이 더 대단한 일을 행했다는 칭송이었고 이에 사울은 자신의 자리를 다윗이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다윗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당시 이스라엘의 적국인 블레셋으로 몸을 숨기게 됩니다. 그런데 블레셋 장군들 중에서 다윗을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쓰러트린 일로 다윗은 블레셋 입장에서는 가장 위협적인 적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다윗은 위기 상황에 봉착하자, 기지를 발휘해서 침을 흘리며 미친척하여 겨우 목숨을 부지해서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골리앗을 쓰러트리는 공을 쌓았더니, 나라의 왕은 자신을 위협세력으로 간주하고 죽이려하고, 겨우 몸을 숨긴 블레셋에서도 죽을 뻔한 상황이 벌어지니 말입니다. 대체 다윗이 잘못한 것이 무엇이기에 다윗은 이와 같은 시련을 겪어야 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하나님도 무심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성경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56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을 기록한 시인은 다윗과 같이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에 두려워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대적이 그를 삼키려 하고 종일 압제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술래잡기하는 때에 술래를 피해 숨죽이고 숨어있는 모습 같습니다. 놀이에서는 술래에게 잡혀도 아무도 죽지않지만, 다윗과 오늘 시편의 시인은 대적자의 손에 잡히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위기와 두려움 속에서 이 시편은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성도님들은 오늘 시편의 시인처럼 혹은 다윗처럼 자신이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누군가 자신을 위협하거나 괴롭히는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그 때 어떤 마음이 드셨습니까? 보통의 경우라면, 분노할 것이고, 내가 맞서 싸울 수 없는 상대라면,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또 그러한 원수에 관하여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아마 싸워서 이길만한 상대라면, 복수를 꿈꿨을 것이고, 대적하기 힘든 상대에 관해서는 신세한탄을 하며 원망하고 저주하지 않았겠습니까?
사실 제가 그랬습니다. 어떤 관계에서 억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원수로 여겨지는 상대와 싸웠습니다. 물론 저는 몸싸움은 못하니깐, 말싸움으로요. 어떻게든 원수의 정신과 마음에 큰 타격을 줄 말을 쏟아놓으며, 원수에게 충분한 분풀이를 해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말싸움이나 가능한 원수를 만났을 때 이야기지, 그것이 불가능한 원수에 관해서는 저의 무력함에 신세한탄을 하고 원수에 관한 앙금으로 뒤에서 저주를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이상한 것입니까? 목사답지 못하다고 얘기하실 겁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저의 반응이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인이 하나님께 보이는 반응은 저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것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통해 볼 수 있는데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시편 56편 9절에서 11절입니다.
시편 56:9–11 NKRV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것이 시인과 제가 크게 다른 지점입니다. 저는 저에게 닥친 불행한 일에 관해 또는 억울한 일에 관해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원수같은 상대를 먼저 보았고, 나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내 기분이 어떻고 내가 어떻게 앙갚음을 할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시인은 자기보다 앞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내놓으며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저는 이것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큰 차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아는 구약성경의 인물인 요셉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면 보다 명확해집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고난을 당합니다. 요셉이 철이 없어서 형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기로서니 형들이 요셉을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아버리기까지 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요셉의 철없는 행동에 비해 그 결과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요셉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바라 볼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고난을 안겨준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로 말미암아 가족을 기근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저처럼 자신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형들에 관한 복수만 꿈꿨다면, 과연 요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러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나온 한국영화 중에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가 있습니다. 최민식, 이병헌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들이 있는 자극적인 영화인데, 최민식 배우가 악마 비슷한 존재로 악역을 맞았습니다. 이병헌은 그 최민식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잃게 되고 복수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복수가 진행되면서 최민식뿐만 아니라, 이병헌도 악마로 변해갑니다.
그런말이 있습니다. 괴물을 상대하다보니 괴물이 되었다는 말 말입니다. 비극과 불행에 빠져 자신만을 생각하다보면, 그 비극과 불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그 비극과 불행을 만든 이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괴물과 싸우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의 뜻을 헤아렸던 것, 또 오늘 시편의 시인도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결단했던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요셉은 고난을 넘어선 인물이 될 수 있었고 아마도 시인 역시 고난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을 겁니다. 당장 현실이 바뀌진 않았겠지만, 시인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심지어 고난과 환란중에도 변함없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나의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가 처한 모든 형편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시간 이것을 결단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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