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평안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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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 14:27(신약 173쪽)
설교제목: 주님의 평안을 누립시다.
요한복음 14:27 NKRV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종종 ‘잘잘법’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봅니다. 이는 C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데요. ‘잘 믿고 잘 사는 법’이라는 이름을 줄여서 ‘잘잘법’이란 이름으로 운영되는 유튜브 채널입니다. 주로 신앙생활에 관계되어 목사 그리고 신학자 또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 중에서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에 관계된 이야기하는 영상이 다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 본 영상 중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하나 있어 같이 나누려 합니다. 제목이 ‘선한 사마리인이 되는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이는 기독교인 과학자이며 현재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으로 있는 이정모 관장님의 영상입니다. 목사와 신학자와는 또 다른 눈으로 성경과 신앙생활을 보게 해주는 영상이었습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프린스턴 대학의 두 명의 심리학자에 의해서 진행된 실험인데요.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험을 설계하고 이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상대방을 돕게 되는지에 관해 연구했다고 합니다.
실험방법은 이러했습니다. 우선 3가지의 조건이 필요했는데요. 첫째는 강도 만난 사람입니다. 이는 전문 연기자를 섭외해서 연기하도록 했습니다. 둘째는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이는 당시 프린스턴 대학의 신학생을 선정하였습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선한 사마리아인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또 그들에게는 다른 과제를 줬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선정된 신학생은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눠서 각각 다른 주제로 발표하게 했습니다. 하나는 목회자의 소명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여리고로 가는 길입니다. 이는 프린스턴 대학의 뒷골목으로 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실험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선정된 프린스턴 대학의 신학생이 자신이 맡은 주제를 발표하기 위해서 여리고로 가는 길인 프린스턴 대학의 뒷골목을 지납니다. 이때 강도 만난 자의 역할을 맡은 연기자가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 것을 연기합니다. 이때 누가 이 강도 만난자를 돕는지를 살펴보는 실험입니다.
이 실험을 설계한 두 명의 심리학자는 아마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발표하는 신학생이 더 곤란에 처한 연기자를 잘 도울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신학생의 발표 주제와 관계없이 시간이 없다고 재촉받은 신학생은 곤란에 처한 연기자를 돕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시간 재촉받지 않은 신학생은 모두 그 곤란에 처한 연기자를 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실험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과학적인 방법은 여유를 가지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선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여유라는 것이 됩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잘 살지 못하는 것도 결국 우리 안에 여유가 없어서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에게 여유를 주는 것일까요? 또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 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금 오늘 성경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27 NKRV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여유를 주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잘 생각해 보면 이 말씀에는 세상도 평안을 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마냥 바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어린이날처럼 때로 공휴일도 있고 요즘은 주 5일만 일하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쉼을 얻을 수 있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휴식만으로 우리는 진정한 평안에 이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한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근심과 불안이 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번 어린이날은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저는 특별한 활동 없이 주로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기도 했고, 모처럼의 휴일이라 늦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휴일을 보내면서 거의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데, 평온한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소와 다른 생활로 염려와 불안이 생겼습니다. 모처럼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을 잘 사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마 늦잠을 잔 것이 첫 번째 문제였을 텐데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영적인 일에 관심을 두기보다 육적인 일에 관심을 두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공휴일뿐만 아니라 쉬는 날에 종종 저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으로 그간 눌러 참아왔던 일을 하곤 합니다.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인데요.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거나 게임을 하기도 하고 종종 과식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불법적인 일은 아니지만, 그 밑바탕에는 이것이 나의 정신건강과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일종의 유흥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뭔가 충분히 쉼을 얻지 못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면서 늘 깨닫게 되는 것은 그것이 저에게 충분한 쉼을 주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삶의 리듬을 깨고 삶을 자주 흩트려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끝을 모르고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조금만 더’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만족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더욱더 갈증이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단지 착각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렇게 휴식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그와 같은 육적인 관심이결코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오래 휴식하여도 아무리 열심히 유흥을 즐겨도 평안은 찾아오진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육적인 일 또는 세상의 가치를 좇는 것과는 다른 것 곧 영적인 일에 따른 것일 겁니다. 물론 영적인 일이라는 것이 꼭 종교적 차원의 활동 곧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는 등의 일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세상의 가치를 뒤집고 그로부터 구원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세상의 가치는 경쟁 속에서 돋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돋보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혹은 특별해지려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니 늘 몸과 마음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이러한 무한경쟁의 세상 속에서 어떻게 평안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영적인 것은 그것을 뒤집어 버립니다. 세상에서 돋보이는 일이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그것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와 같은 속박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구원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참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적인 것은 세상의 가치를 거부함으로 평안에 이르는 길이 됩니다. 마치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것을 주지 못합니다. 일시적으로 착각을 일으킬 수는 있습니다. 아주 열심히 일하다가 잠깐 쉬는 휴식이 그와 같은 평안함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어 치열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휴식한 것 이상으로 더 박차를 가해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 안에서 평안을 찾겠다 생각지 마십시오. 그곳에 평안이 없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믿고 이 세상의 논리와 가치를 넘어서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시는 주님을 따라 평안에 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비로소 근심과 염려와 불안을 내려놓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믿고 그분과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그 속에 참 평안이 있습니다. 바라건데 오늘 그 평안을 누리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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