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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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4:3-8(구약 4쪽)
설교제목: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창세기 4:3–8 NKRV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일은 죄송합니다. 그날 눈을 뜨니 오전 5시 20분이 넘었더군요. 이 일로 당황스러움과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또 그런데도 새벽기도회 자리를 온전히 지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한편 그날은 저를 돌아보게 된 날이기도 한데요. 그날 저는 제 안에 자리한 분노를 발견했습니다. 요사이 세금 신고를 하는 기간인데, 저도 몇 해 전부터 종교인 과세에 따라 세금 신고를 해야 합니다.
아직은 이것이 서툴러서,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세무서에 전화로 방법에 관해 문의했습니다. 그런데 작년도 올해도 마찬가지로 통화를 할 때마다 불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제가 느끼는 불편함은 상담해 주시는 분이 너무 무성의하다는 것과 그 내용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입니다. 전화상담을 할 때마다 상담해 주시는 분에게 제가 받는 인상은 ‘전화 받기 싫은데, 왜 전화했느냐’는 식의 반응과 언제나 전화로 충분한 설명을 하기 힘들다는 반응입니다.
이번에도 전화상담을 받으면서 불편함을 느꼈지만, 세무서에 방문하면 잘 처리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해서 월요일 오전에 세무서를 방문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이 세금 신고하는 기간이라서 세무서에서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운영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방문목적을 밝히니 그것은 그 공간에 있던 직원들이 도와줄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하는 것은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해서 별도의 창구를 마련해서 운영하는 것이고 모든 민원인을 대상으로 이것을 할 수는 없는 처지라 합니다. 그 공간에 비치된 컴퓨터를 통해 스스로 그 일을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다만, 스스로 하다 막히면 문의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이러한 말을 듣는데 마음속에서 갑작스러운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라고 해서 왔는데, 왔더니 왜 왔냐는 반응이어서 화가 난 것 같습니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지만, 제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서 일단 안내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약간의 도움으로 일은 잘 처리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얻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지만, 사실은 제가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이해를 잘못한 것이 있어서 헤매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 생겨난 분노는 저에게 합리적인 생각을 당장은 하지 못하게 하고, 일을 마치고도 당장 분노가 삭여지지 않아서, 잠깐 차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또 내 안에 왜 그러한 분노가 있었을까? 그러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어떤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인용한 20세기 유명한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입니다.
“내 삶이 흐트러져 있거나 타자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연약함 속에 있거나 낙담 속에 있는 까닭은 어쩌면 아침 기도의 소홀함에서 비롯됩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그날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지 못했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습니다. 물론 저의 분노는 아마도 보다 앞서서 세무서에서 상담받는 과정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켜켜이 쌓인 결과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 안에 분노를 자라게 한 것은 어쩌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저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관련된 책을 찾아보곤 합니다. 그러면서 그 문제에 관해서 이해하고 그 문제에 관해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관련 책을 찾아보니 그 책에서도 비슷한 진단을 했습니다.
그 책에서는 여러 성경 인물을 통해 분노의 원인과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성경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안내했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성경의 인물이 바로 ‘가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의 시작부터 분노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통해 분노가 무엇에서부터 비롯되고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너무나 잘 아는 성경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에 가인과 아벨이라는 자식을 낳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훗날 장성하여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은 동생인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아주셨는데, 형인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가인은 분노했고, 그 결과는 끔찍하게도 동생을 살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를 이를 통해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분노라는 감정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했고 그것의 결과는 참혹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분노에 관해 이렇게만 이해하면, 그 감정은 부정적이고 없애야 하는 것으로만 여겨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살펴본 책에서는 분노라는 감정이 꼭 나쁜 것은 아님을 말해줍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도 분노하셨는데, 대표적인 것이 복음서에 나오는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상을 뒤엎고 제사에 쓰일 동물들을 성전 밖으로 내모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분노를 성경은 없애야 할 것이라던지 부적절한 것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종종 예수님은 분노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은 적어도 분노라는 감정을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때때로 분노는 필요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분노는 언제 필요한 것입니까? 제가 참고한 책에 따르면 분노는 놀랍게도 사랑할 때 필요합니다.
왜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분노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그분을 예배하는 공간이 훼손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해해봅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억울한 일 당하고 위협을 받으면, 내가 점잖게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수 있습니까? 그 위협을 가하고 억울한 일을 행한 대상에게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사랑할 때 분노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저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왜 분노라는 감정을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구약성경 창세기에서부터 보여줄까요. 이건 저의 상상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에는 분노도 나타나니까요.
그렇지만 분노는 분명 잘 다스려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서도 볼 수 있지만,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가인은 동생인 아벨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분노가 사랑에 따른 것이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며 나쁜 것도 아니기에 분노는 분명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하는 것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이지만요. 분노의 원인을 생각해 보면, 이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앞서 분노를 사랑에 관계되어 말했지만, 그것은 분노의 원인은 아닙니다. 제가 참고한 책에서 또한 오늘 성경이 보여주는 것을 통해 보건데 분노의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 어긋남에 있습니다.
왜 가인이 분노했습니까? 자신의 제사와 제물을 하나님이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인에게 분노를 유발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인에게 원인이 있습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가인의 믿음 없음이 가인의 제사와 제물을 하나님이 받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원인은 가인에게 있습니다.
사실 올바르지 않은 대부분의 분노가 자신에게서 원인이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제가 좀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세무서를 방문하지 않고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안내해준 분과 제가 만난 직원은 별개의 직원이니 그에게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그 정도의 일에 분노할 만큼 저의 내면이 또는 저의 영적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성경에서 분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른 문제라고 얘기한다면,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분노를 다스리는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인에게 분노의 문제를 일러주셨습니다. 그때 스스로가 돌이켜서 그 분노로부터 빠져 나왔다면,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비극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분노를 다스리는 중요한 실마리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서 본회퍼의 이야기처럼, 아침 기도를 통한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여러 영적이고 신앙적인 활동일 수 있습니다. 설령 우리가 그것을 열심히 하면서도 우리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과 관계를 새롭게 점검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오늘 저와 우리 성도 분들께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금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보내면서 내안에 분노가 치밀 때,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계를 바로 세우라는 신호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하여 오늘도 주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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