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주님의 은혜와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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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 4:14-17(신약 332쪽)
설교제목: 부활은 주님의 은혜와 능력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17 NKRV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부활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관련된 여러 자료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접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드리기에 앞서 먼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대부분은 그렇다고 말씀하실 거라 예상되는데, 저의 생각이 맞나요? 제가 흥미롭게 접한 이야기는 바로 이 영혼에 관계된 것입니다. 어떤 과학자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에 관해 어떤 신학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그건 선을 넘은 답변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과학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과학이 어떻게 영혼을 측정하고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올바른 과학적 태도는 모른다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존재유무를 말하는 것은 과학의 선을 넘은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배경에는 오늘날 과학이 사실을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 과학에도 한계가 있고 그것을 넘어선 것에 관해서 주장할 수 없습니다.
제가 흥미를 가진 이야기는 영혼의 존재유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영혼이 무엇인지를 신학자가 밝혀주는 부분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영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과 차이가 납니다. 많은 경우에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몸과는 구별되는 어떤 영적인 존재가 있다고 말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영육이원론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영혼과 육체라는 두 가지 존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영육일원론을 말합니다. 이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영육이원론과 영육일원론은 영혼의 불멸성에 있어 차이를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흔히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거나 이른바 구천을 떠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영육이원론인데, 영육일원론은 인간이 죽으면 영혼도 죽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육일원론은 육체와 영혼은 하나이지 따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성경은 영육일원론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도 종종 영혼과 육체를 구분해서 말하는 구절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한글 번역상의 구분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로 영혼에 해당하는 단어가 네페쉬입니다. 또 이를 헬라어로 옮긴 단어가 퓨뉴마입니다. 이 단어는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종종 성경에서 네페쉬나 프뉴마는 영혼으로 번역되지만 또한 목숨이나 마음으로도 번역이 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영적인 것과 구별하는 육적인 것 또한 영혼과 육체의 구분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죄에 따른 삶과 회심한 삶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의 시작에 처음 드렸던 질문에 관해서 답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육체와 분리되는 영혼은 없습니다. 성경은 육체와 영혼이 하나임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육체와 영혼의 구별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육체의 본능만을 쫓아 살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도 사랑하는 이가 먼저 먹도록 참을 줄 알며, 나보다 약한 자를 돕거나 섬길 줄 압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있는 도덕성과 인격같은 것이 우리가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죽음 이후에 어떤 소망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또 그렇다면 우리가 구태여 하나님을 믿거나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이에 관해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이 그것입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17 NKRV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종말에 관해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고 사도 바울은 이에 관해 부활의 이야기로 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부활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소망을 잃지 않고 부활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일찍이 죽었던 이들과 주님 안에서 다시 재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야하는 이유가 잘 드러납니다.
현실의 삶이 만족스러운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의 삶에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들이어서 언젠가는 죽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불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현실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들에게는 미래에 관한 소망이 없다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이 난다면, 차라리 그것이 더 옳고 좋은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고통을 오래 연장하는 것보다 빨리 끝내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활의 때가 있음을 얘기합니다. 이는 우리의 유한한 삶에서 오는 불만족이 해소되고 하나님으로 인해 영원히 충만한 삶에 이르게 되는 때입니다. 더욱이 이 부활의 때는 심판의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현실의 삶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히 살아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에 따른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반면에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았던 이들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상급이 수여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부활의 때를 소망중에 맞이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입니다. 육체만 죽고 영혼은 살아서 떠돌아다니는 죽음 아닙니다. 육체와 영혼의 완전한 죽음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부활은 우리의 어떤 능력으로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로써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치 해가 뜨기 전까지 밤이 계속되듯이 우리의 죽음은 영원한 밤의 시간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밤의 세계에서 벗어나 영원한 낮의 세계로 새로운 삶 곧 부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활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누군가에는 두려운 심판의 자리로 느껴져 차라리 피하고 싶은 것일지 모르지만, 사실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불만족스러웠던 우리의 인생을 충만한 것으로 거듭나게하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입니다. 바라건데 우리 모두가 이 은혜 안에 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저와 우리 성도님이 부활하신 주님께 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며, 그분의 뜻 안에서 살기를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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