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아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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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64:1(구약 847쪽)
설교제목: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시편 64:1 NKRV
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엊그제 감명 깊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잠깐 소개하며 오늘 성경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한 명의 딸과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막내 아들은 한 살에 한국에서 입양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막내 아들은 어릴 때부터 눈치를 보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형이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아 가도 조용히 방에 들어가 울기만 할 뿐 형과 싸우거나 아빠인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번도 먼저 무엇을 요구하거나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늘 언젠가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큰 딸이 결혼을 할 무렵이었는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결혼식을 해서 엄마인 그 목사님의 사모님은 먼저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갔고 아빠인 그 목사님은 교회 일로 결혼식 이틀 전에 아들과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떠나기 이틀 전에 막내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답니다. 내용인즉 ‘학교에서 다리를 다쳤다는 거였습니다’ 곧 멀리 이동을 해야 하는데 다쳐온 아들 때문에 속이 상했지만, 내색 않고 물었습니다. ‘많이 다쳤어?’ 그러자 막내 아들이 ‘조금 다쳤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교회 일이 바쁘기도 해서 교회에 한의사로 있는 집사님께 침을 놓도록 부탁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녁에 집에 와서 아들에게 어떠냐고 묻자 괜찮다고 해요. 알겠다고 하고 내일 그 한의사 집사님께 침을 한번 더 맞자고 얘기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기도회를 나가려는데 아들 방에 불이켜진 것을 보고 들어가보니 아들이 다친 다리를 붙잡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었어요. 걱정되서 많이 아프냐고 물었더니, 또 아이는 괜찮다고 그래요. 당장 어쩔 수 없어서 나중에 한의사 집사님이 침을 맞으면 괜찮아 질거야라고 얘기하고 집을 나왔어요.
그리고 아침에 걱정이 되서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가 부러진 거예요.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을 나와서 차를 타는데 아들이 그래요. 아빠,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때 그 목사님이 너무 속상해서 화를 내면서 말했대요. ‘이 놈아 그럴 때는 미안하다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 때는 고맙다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 때는 화를 내는 거야, 내가 이렇게 아픈데 아빠는 왜 내게 관심이 없냐고’ 그 얘기를 하면서 그 목사님이 너무 속상했데요. 어쩌면 이 아들이 아직도 나를 아버지라고 생각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제가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 아버지 목사님의 마음과 그 아들의 마음이 서로 얼마나 아팠을까 하고요. 이러한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그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고난이 찾아오면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다보니깐 우리 안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신앙생활 가운데 쌓여간다는 거에요. 내가 그 고난을 온전히 견뎌내지 못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면 마치 믿음이 없거나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계속 참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그러한 모습이 어쩌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일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면, 오늘 우리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뢸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물론 우리는 신앙 안에서 그 고통을 넘어설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내 안에 꼭꼭 쌓아두는 방식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탈탈 털어내서 내 안에 아무런 미움과 증오가 남지 않도록 하나님께 모두 아뢰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시편의 시인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구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시편 64:1 NKRV
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시인은 자신이 처한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어요. 여기에는 시인의 이와 같은 믿음이 바탕되어져 있어요. 하나님은 나의 문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나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시다는 것 말이지요. 저는 이것으로 생각하게 돼요. 앞서서 우리가 살펴본 시편의 내용들이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찬양하는 것이었는데요. 그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께 나의 고난을 아뢰는 것이 가장 먼저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분명 하나님이 우리의 고난을 도우실 것을 믿는데요. 그 믿음으로 인해서 또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어려움을 맘편히 토로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혹시라도 목사가 무슨 그런 기도를 해 또는 장로가 권사가 집사가 무슨 그런 기도를 해 하는 핀잔을 받을까 해서요. 그런데 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뢸 수 있어야 함을 오늘 시편을 통해 또한 앞선 어떤 목사님의 아들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 봐요. 분명 우리가 하나님께 솔직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우리 가운데 온전히 피할길 구원의 길을 열어주실 것을 말이지요.
제가 목사이다 보니까요. 저는 계속 점찮게 기도하려고 해요. 표현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칠고 이른바 잡스러운 것을 기도하지 않으려 해요. 또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설교할 때도 많고요. 왠지 모르게 그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품격 같은 것이라고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어쩌면 나의 기도가 예수님께서 비판하셨던 바리새인의 기도인지 모르겠어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세리의 기도와 달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사어구로 치장한 기도 말이지요.
물론 저는 성숙함이라는 것은 분명 유아적인 형태의 떼쓰기나 주술적 기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믿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때로 너무 점잖아져서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모습으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을 깨닫게 돼요.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히 살게 해달라는 간절함이 뭍어나는 기도가 아닐까 해요. 그래서 종종 시편을 보면, 이런 식으로 기도해도 될까하는 식의 원수를 향한 조롱과 저주가 등장하기도 해요. 그것은 한편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은 그와 같은 기도를 용납하신다는 말이 될 거에요.
오늘 우리 성도 분들의 기도는 어떤가요? 혹시 우리 안에 쌓아 놓고 눌러 놓은 감정은 없나요? 하나님께 아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감정을 사람에게 쏟아내지 마세요. 모두 하나님께 내어 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 우리의 눈물과 우리에 호소를 들으시고 오늘 우리와 함께 고난에 동참하여 주시며 우리의 길을 열어주실 거예요. 그리하여 바라건데 오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진실되고 참 되기를 바랍니다. 그와 같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저와 우리 성도 분들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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