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서도 주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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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63:3(구약 847쪽)
설교제목: 고난 중에서도 주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시편 63:3 NKRV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요즘 좀 이상합니다. 평소에 잘 안 하던 것을 하고 평소와 다른 감정상태가 되곤 합니다. 아마 짐작은 하시겠지만요. 또 일전에 수요예배 때 제가 말씀을 드린바도 있지만요. 담임목사님 안식월에 따른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분은 그러셨어요. 마치 부모님이 출타한 집에 아이 같아 신나 보인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저는 어서 빨리 부모님이 돌아오시길 바라는 아이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수요일에 제가 이러한 심정을 제 상태가 뾰족뾰족 한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저희 성도 분들께서는 얼마나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친절하신지요. 제가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인데도 미안해하시면서 말씀하시더구요. 그로 인해 좀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또 어제는 식사자리에 초대를 받았는데요. 장미를 한 움큼 가지고 오셔서, 테이블에 놓아주셨어요. 그 붉고 풍성한 장미가 얼마나 화사하게 피었는지 몰라요. 다들 집에서 그렇게 장미가 장식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시는 거죠?
그리고 요즘에 왜 그렇게 음악을 듣는 일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원래 제가 늘 설교에 관한 부담을 앉고 살아서, 자주 강의와 설교 그리고 책을 읽어주는 것을 매일 들어요. 그래서 저는 늘 그와 같은 것을 듣는 것에 시간을 쏟느라 평소에도 음악을 거의 안 들어요. 오히려 음악을 듣는걸 대신해서 강의와 설교를 듣는 것이 더 많아요.
한번은 제가 이용하는 전자책 사이트에서 제가 얼마나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지 통계로 보여주던데요. 제가 이용자들 중에 상위 5%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스스로도 놀랬어요. 물론 그것을 아주 꼼꼼하게 듣는다기 보다는 정말 음악을 듣는 것처럼 설거지하다가도 듣고 샤워하다고듣고 길을 걷다가도 듣고 그래요. 그러니 이용시간에 비하면 제대로 정보를 습득하는 비중은 작아요.
이렇게 저는 틈만 나면 강의 듣고 설교 듣고 전자책도 듣고 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음악을 듣는 일이 좋아져서, 오히려 음악을 듣는 시간이 좀더 많아진 것도 같아요. 이전까지는 그것이 시간 낭비라거나 혹은 시간이 아깝다고 여겼는데요. 요즘에는 교회 출근하면서부터 음악으로 시작해서 심지어 이 설교를 쓰면서도 음악을 듣고 있었어요. 다만, 그 일로 옆에 같이 일하는 전도사님에게 약간의 미안함이 있는데요. 제가 음악을 스피커로 틀어서 듣다보니깐, 좀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래도 전도사님이 착해서 아직까지는 아무런 말이 없어서 눈치없이 제 하고 싶은데로 하네요.
설교시간에 제 얘기를 너무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서 죄송해요. 사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어서요. 제 얘기를 좀 해야 했어요. 제 안에 일어난 변화들이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보니깐, 감정의 영역이 활성화 된 것 같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아실지 몰라도 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요. 가급적이면, 감정이 자극 받지 않도록 노력하기도 하고요. 가끔은 제가 너무 감정이 메마른 것이 아닌가 해서 오히려 염려할 때도 있지만요.
그런데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떤 고난이 찾아 올 때 감정적으로 변화를 받잖아요. 제가 요사이에 그런 상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가 잘 감정을 단속해서, 다른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이 감정의 변화가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제 깨달았어요.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놓고 한참을 묵상하고 고민을 했어요. 왜냐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다시 오늘 성경 본문인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63:3 NKRV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우리가 복음성가로 부르는 찬송 중에서 이러한 찬양이 있기도 한데요. 여기서 3절“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라는 표현이 좀더 이해하기 쉽게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나와요.
시편 63:3(구약 847쪽) / 새번역
3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니깐 시인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이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어떻게 시인이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 특히나 이 시편의 제목이 이렇게 되어 있어요.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이는 다윗이 고난 중에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인데요. 그가 광야에 있었던 때라는 것으로 보아서, 왕이 되기 전에 사울 왕에게 쫓기던 때일 수도 있고, 왕이 된 후에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궁에서 쫓겨난 때 일 수도 있어요. 이것이든 저것이든 다윗이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는 것은 분명하죠.
그와 같은 환란 중에 하나님을 찬양한다라는 것이 참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다른 시편을 통해 보건데 다윗은 고난 중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고백을 했었죠. 우리가 앞서 살펴본 시편에서 그와 같은 고백이 있었고요. 심지어 어제도 또 아마 그제도 고난 중에서도 다윗이 아니라도 시인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저의 고민은 오늘 시편은 그것보다 한걸음 더 나간다는 거예요.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을 또는 주님의 사랑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죠.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고난 중에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고난 속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 잘 못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또 원망하고 저주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도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음에 나눠야겠다고 생각하고 평소처럼 설교에 도움이 될만한 설교나 강의를 찾아보았어요. 그런데 설교를 듣는데 이상하게 평소같지 않게 감동이 밀려오는 거예요. 물론 그 분이 설교를 잘하시는 것도 있는데요. 그래도 확실히 평소와 다르는 생각 들었어요. 제가 평소에 감정에 좀 둔감하기도 하고 또는 앞서 말씀드린데로 감정을 일부러라도 제어를 하곤 하는데요. 평소와 다른 감동이 밀려왔어요.
그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았어요. 무엇이 그 설교를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했을까? 설교자의 능력일까? 그것도 일부분 있을 것인데, 그것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 설교를 듣는 나의 마음은 어떤가? 평소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생각해보니 최근에 감정적으로 예민했는데, 그것이 나는 부정적인 감정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감정 전반에 있어서 예민해 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고난이 나를 힘들게하고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만을 덧씌우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이지요. 평소 같으면 차분하게 받아들였을 이야기들이 감정이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보다 격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로부터 생각하니, 내게 왜 최근에 음악이 좋아졌는지, 또 평소와 다르다고 느끼는 것인지를 깨닫게 됬어요. 제 감정이 평소보다 고양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 알게 됐어요. 그렇구나, 고난 중에서 시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구나, 그것이 심지어 살아있는 이에게 가장 귀한 가치인 생명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 크게 깊게 놀랍게 다가올 수 있었구나 하고 말이지요.
저를 이를 통해 생각합니다. 어쩌면 고난이 꼭 슬픔과 괴로움만은 아닐 수 있겠다. 물론 이런 말을 할 때는 좀더 섬세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남들이 그렇다더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얘기지요. 내가 경험한 고난은 그렇더라라고 해야하는 이야이지요. 고난을 겪는 당사자에게 고난은 분명히 힘들고 괴로운 것은 맞으니까요.
다만, 저는 나름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내 안에 부족했던 것 또는 이전에 잠들어 있던 감정이라는 것을 깨워주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심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저는 우리가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의 인자하심 곧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심지어 고난의 현장에서도 말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으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삶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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