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울음(눅19: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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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모르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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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울음(눅19:28-44)
오늘은 종려주일. 한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예수의 죽으심을 깊이 묵상함. 예수님이 공생애 끝.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날. 직전의 사건이 오병이어, 죽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 유대 사회가 일순간에 뒤집어지고 베다니가 관광특구가 됨. 이 상황에서 예수님이 마지막 일주일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 여정.
일요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입성. “호산나” 오늘 본문. 출퇴근. 월요일 성전청결. 아침에 무화과나무 저주. 화요일 논쟁 수요일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 “예수뿐 아니라 나사로도 죽이기로 하니라” 유월절 인파가 너무 많아서 폭동이 날까 염려해서 못 죽이고 안식일 후로 연기. 목요일 난데없이 가롯유다가 나타난 것. 급습하면 폭동도 안일어난다. 은30냥. 솔깃. 키스하는 그가 예수다 밤에 체포하고 제자들이 다 도망감. 금요일 밤새도록 세군대 옮기며 재판을 받음.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여호와 참람죄는 즉결처분(스데반) 못죽임. 그러면 정치범으로 죽이자 황제저항죄 󰋏빌라도 관청(스페인출신) 아내의 예감이 이상해서 못 죽이게 함. 종교문제에 관여하지 말자. 어디사람이야? 갈릴리? 내 관할아냐. 󰋐헤롯 안디바 관할 그리고 압송. 난데없는 폭탄돌리기 헤롯은 “범죄는 예루살렘에서 했잖아? 다시 빌라도에게 가!” 밤새도록 가야바-빌라도-헤롯-빌라도. 황제라고 했소. 죄가 없는데? “당신은 반역자와 친구네요?” 예수 때문에 목이 날아갈까봐 나는 죄가 없다. 사형선고(6시). 하루밤에 선고되고 아침9시 십자가형. 일어나보니 이미 달리심. 그리고 금요일 오후3시 사망. 마지막 5일 전.
십자가를 위한 입성준비 28~36절까지. 어린 나귀 새끼를 준비.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새끼라는 것은 흠없는 재물. 입성준비는 하나님이 친히 하신 것. 31절에 어찌하여 푸느냐? 주가 쓰시겠다 하라. 예수님이 구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전날 돈을 주고 구입해 놓은 것. 군마와 대비.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입성하는가 보여주시는 것.
제자와 무리들이 대하는 반응과 예수님의 반응이 대조. 제자들의 반응 겉옷을 땅에 깔고 가시는 길에 겉옷을 깔았다. 35~36절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겉옷 강조. 예수님 앞뒤에서 흥분해서 입성. 무리의 반응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찬양하는데 보통찬양이 아님 37~38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대할렐시라고 불리는 시편 113~118편으로 만들어진 노래. 성전에 제사 드리기 위해서 유대인이 일년에 한번 성전에 올라간다. 여리고 거쳐서 예루살렘 1200미터. 성전산 앞에 감람산 사이가 1킬로. 마을이 베다니와 벳바게. 태양이 비취면 성전이 이글거리면서 빛을 반사.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 이 노래를 예수님께 부르고 있는 것. 예수님을 메시아, 하나님으로 본 것. 이 분은 하나님이다. 랍비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고 오직 메시아로 보았을 때 이 노래를 부름.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이 독특함. 41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대성통곡, 계속 오열하면서 울었다는 것. 무리의 환호와 예수의 통곡이 아주 대비되고 있음. 왜 우셨나? 37절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동기는 예수님의 이적. 갈릴리 떠나기 전 마지막 이적이 오병이어. 오늘날 150만명 엄청난 대중동원력.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들어오기 전 2.5킬로 전에 대낮에 죽은 나사로를 살린 것. 충격받고 정치적 메시아로 전쟁하러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 엄청난 흥분.
제자들은 옷을 그 앞에 깔았다(36절). 열왕기서 예후장군 아합을 무너뜨리고 엘리사를 통해 쿠데타를 허락. 소년이 몰래 군막에 들어가서 기름을 쏟음. 그 옆에 장군들이 무릎꿇고 자기 겉옷을 깜. 충성맹세. 이 관습으로 옷을 깔았다는 것은 결사항전의 충성서약. 바리새인이 좀 말리세요. 이러니 저들이 소리지르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이러고 들어가심.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이 보기에 아주 위험한 모습. 왜 우셨을까? 결국 너희는 폭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멸망할 것을 내가 보셨기 때문에.
43~44절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AD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사건을 미리 내다보신 것. 과격한 열심당주의들이 68년 정권을 잡고 로마에 결사항쟁. 티투스 장군이 주둔군을 모아 멸망시킨 것. 이때 끝까지 항쟁하다 죽은 유대인이 100만명.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고대 가장 잔혹한 전쟁. 민족을 박멸하려고 아이의 발을 잡고 돌에 머리를 처서 죽이고 엄마들이 미처서 돌아다니다가 죽었다. 예수님이 이것을 미리 내다보고 우신 것. 그 날이 이를 것이다.
왜 멸망했나? 첫째는 하나님의 평화를 우리고자 하는 일이 네 눈에 숨겨졌기 때문. 42절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너희는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끝까지 모르기 때문에 망할 것이다. 내가 죽기 직전까지 너희의 평화는 힘을 매개로 하는 평화. 로마의 평화 유지방식, 바리새인의 평화, 열심당의 평화. 그 사이에 끼여서 예수가 죽음. 야당과 여당의 평화 그 가운데서 약자들이 죽어 나가는 것, 아버지의 평화, 어머니의 평화, 시부모의 평화와 며느리의 평화, 그 사이에서 상처받고 갈등하고 원수됨이 일어남. 힘의 각축장을 벌리면 힘센놈이 이김. 그 방식으로는 피투성이. 나의 평화는 용서하고 죽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평화. “그런 평화는 죽어도 싫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너희의 폭력으로 너희가 죽음에 이를 것이다. 제자들은 눈이 빨개져서 옷까지 깔고 환호하는 것.
둘째는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 44절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군대가 와서 아이들까지 몰살시킬 것이다. 왜? 하나님이 긍휼을 가지고 찾아오신 것을 끝가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불쌍히 여김 받기를 거부하니 하나님의 은총은 거두어지고 역사의 보편법칙에 의해서 은혜의 시스템이 아니라 차가운 약육강식의 시스템 속에서 처참히 찢게 이스라엘의 운명을 내다보시면서 우신 것.
우리가 주님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유대인들과 매우 비슷하다. 환호하는데 어떤 메시아인가? 필요를 채워주는 메시아. 병, 사업 형통, 성취와 성공, 성장의 예수. 성취와 승리주의 기독교. 이런 교회의 메시지는 항상 적극적 사고, 믿으면 승리한다는 주장, 거기에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승리의 확신.
거기에는 자기부정과 겸손함,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도 그리스도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숙명이 없다. 번영의 신학.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부활의 영광강조. 이런 메시지를 가감없이 내보내고 교인들이 좋아한다. 서로 도치된다. 마치 유대 민족주의 열망을 가지고 쫒았다가 그것이 사라지자 실망하고 죽이려고 달려드는 유대인의 반응과 똑같다. 고난주간의 경건. 자기 부정. 성취의 욕구, 힘으로 해결하려는 욕구 절제. 힘이 아니라 나의 죽음. 반드시 죽어야 한다. 내가 온전히 죽을 때 다음 주일 부활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고 하늘의 뜻이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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