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과 예수님

예수님이 성취하신 하나님 나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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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과 부활주일이므로 조만간 공과책 순서를 바꿔 진행

Notes
Transcript
<하이힐과 예수님>
설교 날짜-2023.04.02.
설교 본문-마태복음 21장 1~11절
설교문
여러분! 하이힐 아시죠? 여성분들이 많이 신는 높은 굽을 가진 신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 아시나요? 하이힐은 원래 남성들이 신었던 신발이었답니다. 당시 하이힐의 형태는 오늘날 카우보이 부츠와 유사했습니다. 하이힐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것은, 프랑스의 절대 왕 루이 14세였습니다. 태양 왕이라고 불리는 루이 14세는 키가 165cm도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작은 키가 아니었지만, 그는 높은 곳에 있는 공기를 마셔야 더 권위가 선다고 느꼈고, 언제나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림을 보여준다) 따라서 빨간색 하이힐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신과 자신을 같은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귀족들은 높은 굽에 올라탔고, 높이와 권력은 비례하였습니다. 또한 하이힐은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이 주로 신고 다녔기에 부를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는 당시 배수시설이 좋지 않아 길거리에 널린 오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하여 남녀노소 하이힐을 즐겨 신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하이힐은 부의 상징이 되어 귀족이나 부자들은 평민들에게 봉변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구두의 뒤축을 많이 낮추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나귀를 탄다는 것은 하이힐을 신는 남자와 같이 권위를 상징하였습니다. 왕이 즉위식을 하거나 행차할 때도 나귀를 탔습니다. 마치 조선시대에 왕이 행렬에 가마를 타는 것처럼, 나귀는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또한 나귀는 물건을 이동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나귀는 말보다 덩치는 작았지만 힘이 세고, 병치레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어린 나귀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서는 모두 어린 나귀, 다시 말하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왜 가져가냐고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신 이유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곧 나귀의 작은 것 나귀 새끼니라.” 슥 9:9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마가복음 2장 17절과 10장 45절 같이 찾아서 읽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며, 자신이 하신 약속의 말씀을 삶 가운데 실천하며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며,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하이힐을 신고, 말을 타고 다니면서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상징하는 하이힐을 벗어두고 겸손을 상징하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군림하는 왕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며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섬기는 종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 한 말입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이야기를 듣고 교향곡 3번의 제목을 그의 이름으로 지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교향곡 3번을 “영웅”으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남대서양의 외딴섬인 세인트헬레나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어느 날 나폴레옹이 유배 생활을 하는 중에 기자가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폐하! 일생 중에서 언제 가장 행복하셨습니까?”
이 기자는 생각하기를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알프스산맥을 넘었을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혹은 ‘프랑스의 황제가 되어 세계를 호령할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라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 어느 날인가 전쟁터에서 전투가 치열하던 날 교회에 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겼던 순간, 그 순간입니다.”
나폴레옹은 유배하는 생활 동안 성경을 많이 읽으며,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같이 다 함께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나는 총과 칼 그리고 대포로 세상을 정복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바늘 하나 들지 않고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다.”
나폴레옹은 누구보다 높고 화려한 하이힐을 신고 황제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누구보다 강력한 권력을 누리며, 가장 좋은 말을 타고, 세상을 호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때에 그는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며 예배하는 시간이었고, 내가 신고 걸어가야 하는 것은, 하이힐이 아닌 나귀 새끼와 같이 예수님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중고등부 여러분! 역사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거울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범죄함에도 “내 마음에 맞는 자”라고 인정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왕관을 하나님께 내어드렸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다윗은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예배자였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어디서나 “나의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인정하는 삶이 되기를 이 시간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삶이 나의 삶이 되고, 예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3. 설교 후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죄와 허물 많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을 알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해주셨으니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의 손에 이끌려 순종하며, 그리고 겸손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세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말씀 귀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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