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의 표적(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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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세계관을 말씀의 세계관으로 변화시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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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의 표적(5:1~9)
첫째 표적과 둘째 표적. 아주 비슷한 표적. 장소도 갈릴리 가나, 등장인물 큰 위기 가운데 있는 사람(마리아와 왕의 신하), 위기 대처방식도 예수를 찾아옴, 전적인 말씀 신뢰(“무슨 말을 하든지, ‘믿고 가더니’) 마지막 반응 표적의 의미를 깨닫고 놀라더라 아니고 믿더라.
첫째와 둘째 표적. 장소가 같고 표적이 가르키는 강조점이 같다. 기적자체가 아니라 말씀. 1~2표적 사이 에피스드가 4개. 예수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드러내고 “그 이름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에피소드 사이에는 그 말씀으로 오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은 사람과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 그 사이에 4개의 에피소드.
1) 성전 에피소드.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 “요나의 표적” 유대인들은 예수가 부활이라는 메시지를 못 받아들이고 심판당한 사람을 상징. 2)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가 표적 때문에 찾아옴. 나사로. 11장 뒤에 따로 기록. 밤에 찾아옴. 3) 세례요한의 증언 그가 신랑이고 나는 친구이다. 나는 반드시 쇠하고 그가 반드시 흥할 것. 이 증언을 받아들이느냐? 아닌가에 구원 유무. 4) 낮 사마리아 여인. 깨닫고 전파함. 샘물에 목마른 사람에게 생수로 오심. 장소와 때를 넘어서 영과 진리로(성령과 말씀:바람소리) 만날 것이다. 이런 구조 구성.
오늘은 세 번째 표적. 이때부터 대중에게 행함. 베데스다 연못 이야기. 장소는 예루살렘. 부림절 명절(에스더). 1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절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행각은 쉼터. 이곳에는 연못과 5개의 쉼터. 태양의 열기 피하고 이슬 피함. 왜 5개나? 3절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병자들이 있었기 때문. ‘맹인(모래바람과 먼지)’, ‘절뚝발이(전쟁과 기근)’, ‘혈기 마른 자(중풍, 뇌졸중 신경마비)’ 셋으로 분류. 팔레스타인 대표 고질병. 이들이 모두 ‘누워 있다’ 왜? 신화가 있었다. 물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것. 소위 간헐천. 지각, 지층운동으로 압력이 가해지고 지하수가 뿜어져 나오기도 하고 색이 다른 물이 나오기도 함. 아주 신기한 일이었을 것. 이 신기한 자연현상에 신화가 덧붙여짐. 4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왜 이들이 누워서 잠시도 집에 가지 못하고 한없는 기다림 중에 있을까? 먼저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각박한 현실 가운데 잠시도 쉬지 못하고 온 신경을 곧두세우며 남보다 먼저 들어가기 위해 연못을 바라만 보고 있음. 베데스다 치유 신화 속에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고 뒤흔드는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경쟁과 속도의 신화. 행각은 신화가 지배하는 세계를 상징. 핵심 사상은 경쟁과 속도. 이 속에서 모든 사람이 노예화. 오징어 게임.
예수님이 가장 의도적으로 한 사람을 찾아감 5절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이 경쟁과 속도라는 신화적 세계관에서 패배하고 소외된 사람. 고대 농경사회에서 38년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 가정, 직장, 일상, 삶의 인격도 다 파괴. 이 사람이 삶의 출발점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연못에 먼저 들어가는 것. 탈락한 사람들이 벌이는 ‘처절한 패자 부활전’. 연민이나 양보 없음. 양보하는 그 순간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함. 오직 물의 동함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삶의 자리가 베데스다 행각 다섯 채의 자리. 아주 처절한 자리.
이 자리 중에서도 가장 깊이 빠져 있는 한 어두운 사람을 보신 것. 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은 이 세계의 삶의 철학을 꿰뚫어 보시고 이 구조 안에서 가장 절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심.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상한 질문. 가장 못 믿는 사람.
이 사람은 아주 깊은 분노와 원망은 무엇인가? 7절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타인과 환경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분노와 허탈감에 싸여 있음. 왜? 마음의 상태를 이미 아시고 강하게 뒤흔드는 것. 가장 낫고자 하지만 희망을 스스로 닫아버린 사람 자신에 대해서 절망과 죽음을 선포. 주님은 ‘네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품고 믿음의 눈을 들 수 있겠느냐?’라고 물어보신 것.
베데스다 행각을 지배하고 다스리던 경쟁과 속도라는 시대정신이 확장되어 오늘날 21세기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을 지배. 철저하게 이기적. 인간성이 파괴되어 지옥을 만들면서도 못헤어나옴. (교육과 성장/ 70년대 로마클럽 보고서:성장욕구가 인류파멸을 불러올 것. 리스본 보고서:무한경쟁이데올로기라는 경쟁과 정복의 반성) 패배와 노예화, 절망, 허탈감에 시달리며 점점 더 절망적인 신화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음. 더 잘자. 더 높이 올라가자! 세계적 팬데믹 상황, 출산율, 자연파괴 터전을 망쳐놓고 못 멈춘다.
오늘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을 맞서 계심. 예수님의 사역 ‘물’로 상징. 물로 포도주,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생수의 근원, 오늘 베데스다의 38년 된 환자에게 생명의 자리는 연못의 물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설명.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놀라운 움직임은 말씀의 움직임. 시대정신과 신화보다 더 파워풀 한 것은 성령 안에서 선포된 말씀. 고대의 신화와 시대 정신보다 훨씬 큰 위력을 가지고 병자의 삶을 뒤 흔들고 있음. 신화가 가진 어두움의 본질을 꺾어 버리고 붕괴시키고 있음.
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광속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다. 이 세계관을 인정 안하심. 신화의 어두움의 본질을 붕괴시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 주님께서 일으키시기로 작정하심. 이 사람을 둘러싼 신화의 족쇄를 끊어버리고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로 작정. “일어나 걸어가라!” 말씀이 임하는 순간 새롭게 창조된 것. 다시 경쟁과 속도의 신화속으로 들어가는 ‘나음’을 의미하지 않음.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 회복 사건이 아니라 창조 사건.
우리를 둘러싼 시대정신, 세상의 철학과 어둠의 신화를 깰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성령 안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 자살, 중독, 가난. “포기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처음 믿는 사람은 3대가 고생” 가계에 흐르는 저주. 말씀 앞에 상황과 타인의 분노에서 새롭게 창조되어 일어설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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