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따라 살아냅시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9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야고보서 2:14-17(신약 372쪽)
야고보서 2:14–17 NKRV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물을 돈을 주고 사 먹는 것이 그럴 것이고, 각 사람이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것이 그럴 것이며, 인터넷을 통해 세계가 연결되어있는 것이 그럴 것입니다. 물론 세대에 따라서 이러한 변화의 차이를 서로 다르게 느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시대 변화와 관련해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이러했습니다. 제가 휴대전화를 가지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된 무렵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휴대전화는 있었지만, 학생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생 무렵의 어느 날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길을 가면서,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것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같은 시대에 살지만, 그 변화를 체감하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는 최근에 또 하나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공지능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A.I 기술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 새벽기도회 시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사용된 것을 최근에 접하고는 무척이나 놀라워 합니다.
제가 놀라워하는 것은 이런 부분입니다. 이 기술을 통해서 글쓰기를 할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나를 대신하여 A.I가 글을 써주는 겁니다. 예를 들면, 대표기도문을 써달라고 하면 그것을 써줍니다. 심지어 성경 구절을 주고 설교를 써달라고 하면, 설교도 써줍니다. 그것도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가령, 1000자 이내로 또는 10분 안에 할 수 있는 설교를 써달라고 하면 써줍니다.
혹시 오해하실까봐 얘기하는데, 오늘 설교문은 제가 직접 썼습니다. A.I가 설교문을 쓸 수는 있지만 아직 제가 만족할 만큼은 써내진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괜찮은 내용을 써냅니다. 아마 성경에 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다면, 어느 정도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적어도 논리적은 구성은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일만큼 잘 써냅니다.
이게 우리 성도님들께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저에게는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대략 10분짜리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최소 몇 시간에서 때로는 며칠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A.I는 단 몇 분도 안 돼서 완성합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너무나 놀랍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두려움도 느낍니다. 이러다가 더 이상 목사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또 더 나아가서,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더 이상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이것을 대체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한 예감은 사실 어느 정도는 역사에 비춰보면 틀리지 않을 것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기계에 졌습니다. 인간의 기계의 힘을 능가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산업 현장에서 사람 대신에 기계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이세돌과 바둑을 두었던 알파고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결코 기계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불행하게도 인간의 패배였습니다. 그러니 결국 글을 쓰는 일에 있어서도 인간의 패배가 예견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일이 제게는 염려로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몇 일을 또는 몇 시간을 고민해서 설교를 준비하는 일을 A.I가 도와주면 목회가 한결 편해지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가 이제는 그것이 목회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주기에 이릅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기술 발전에 따른 시대적 변화라는 것이 다소간 저를 근심케 합니다.
그런데 근심을 하던 중에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기계와의 대결에서 지겠지만, 우리가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것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믿음대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통해 이러한 본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만, 책 한권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 가운데 부도 지식도 권력도 사실상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이야기는 2000년의 역사를 통해 여전히 우리에게 전해져옵니다. 그분이 직접 쓴 글은 단 한 줄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분에 관한 이야기와 가르침은 정말로 많은 이들을 통해 기록되고 전해졌습니다. 어떻게 세상가운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분이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다름 아닌 그분의 삶에 있다고 봅니다.
그분은 자신이 믿고 있는 바대로 사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말하고 행하며 사셨습니다.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힘으로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도 이를 이야기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결국 믿음을 가지고 살아내는 일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능력과 지식과 권세가 우리를 특별하게 해줄 것을 기대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그와 같은 것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로 우리 신앙을 말해주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마치 A.I가 모든 부분에서 우리를 능가할 실력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우리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능력이 우리에게 귀감이 되거나 그것이 존경의 대상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겉치레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가치이고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대신할 수 없고 온전히 우리 각자가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라건데,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성회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40일간의 절기입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받았음을 믿는다면, 이를 놓고 우리가 경건한 삶을 이룰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믿음을 삶으로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하나님께 나오는 일에 더욱을 힘쓰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