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야 나오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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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후, 해찬, 수아 출석. 성은이는 어른예배 미리 드림.

Notes
Transcript
<나사로야 나오너라!>
설교 날짜-2023.03.12.
설교 본문-요한복음 11장 32~44절
설교문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 때 예포를 쏘는 대신 두 번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첫 번째 나팔은 취침나팔이고, 두 번째 나팔은 기상나팔이었습니다. 죽음은 잠시 잠자는 것이고, 때가 되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다시 깨어날 것이라는 처칠의 믿음을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이 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게 되고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눈물 흘리신 예수님
오늘 본문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인 요한복음 11장 32~39절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베다니의 나사로 집안에 가장인 나사로가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비통히 여기며 ‘불쌍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기록은 35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라는 말씀이 유일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상한 사람, 죽은 사람을 보시면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눈물 흘리셨습니다. 그들의 이러저러한 요구를 하시면 한 번도 ‘다음에 하자’고 미루신 적이 없고, 안된다고 거절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침례교 목사인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은 자신의 저서인 <고난주간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분의 낮아지심뿐만 아니라 그분의 동정(sympathy)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아침에 아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의 그 모든 아픔과 고통에 대해 알고 계십니다.
그분이 자신의 등을 때리는 자들에게 내어주신 까닭이지요.
여러분은 스캔들이나 중상모략 같은, 통증보다 더 심한 것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그분은 수치나 침뱉음을 당할 때 얼굴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조롱당한 적이 있습니까?
은총 없는 자들이 여러분의 신실함에 대해 놀리지는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공감하실 수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들이 예수님을 거룩하지 못한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잡아 찢는 모든 고통 안에 여러분의 주님은 분깃을 갖고 계십니다.
가서 그분에게 말씀드리십시오.
많은 이들은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나머지 새들과는 다른 얼룩이 있는 새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새들이 모두 여러분을 쪼아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아십니다. 그분 역시 쪼아댐을 당했던 얼룩이 있는 새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신” 분으로(역주: 히 7:26), 그러나 여러분에게서 분리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여러분을 동정하실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에 대단히 큰 문제와 아픔이 있어서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지만, 잘못 털어놓았다가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아서, 도리어 더 큰 상처를 입을까 두려우신 분들이 있으신가요? 우리 주님께 나아가서 모든 문제를 사실대로 털어놓으시기를 이 시간 권면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치유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아픔을 이 시간 다 치유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픈 맘을 아시며, 가까이서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의 모든 상황에 공감해주십니다. 세상에 훌륭한 상담가가 많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주님보다 결코 훌륭한 상담가가 아닙니다. 그들도 인간이라 결점이 있습니다. 최고의 상담가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한편,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나사로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시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철저하게 예수님에 대하여 오해한 것입니다. 이들은 듣고 또 들어도 부활의 예수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기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이것을 진정으로 믿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해결하지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 나아가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다만 이것을 우리가 믿고 사느냐 못 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의가 무엇인가요?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와 삶의 전 영역을 예수님의 손에 맡겨 드리고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다 같이 요한복음 10장 11, 12절을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지난번에 제가 공과에서 살짝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양의 시력은 마이너스 10입니다. 마이너스 10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가지 않아 제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자료 정리된 것을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화면을 봐주시면 됩니다!
-10이면 기껏해야, 5M밖에 볼 수 없다.
늑대가, 살금살금 5M까지 접근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자가 없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근데 성경은 우리를 양으로 비유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인도하심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필수라는 이야기이죠. 주님의 인도하심을 항상 구하고, 또 그것을 받는 귀한 모든 중고등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감사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신 예수님
나사로가 죽어서 모두가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41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먼저 부르신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려달라고 간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간구를 아버지께서 이미 들어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기도하신 것은 나사로를 살리는 이적을 통해 둘러선 무리로 믿음을 얻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구할 것이 있을 때, 먼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아주 힘든 시간에도 감사하는 태도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은 항상 감사할 때 일어납니다. 왜 우리는 감사함으로 섬겨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감사하는 최대의 이유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43절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너라’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죽은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배에 쌓인 채 나온 그의 몸에서 천과 얼굴을 덮고 있던 수건을 풀어 주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말씀으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나사로를 불쌍히 여기신 사랑의 마음과 동시에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목적은 ‘저들로 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따랐습니다.
변함없이 따른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결코 주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주와 함께 죽으면 죽었지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닭 울기 전에 3번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가롯 유다는 다른 길로 갔습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말하니,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놓겠다고 했지만, 아간은 제 몫을 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마가 요한도 선교여행을 떠났다가 힘이 들어서 중도에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요셉은 모진 고난 가운데도 하나님과 늘 함께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에 대해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서술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다니엘은 포로였지만 하나님만 지속적으로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좇았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했다는 것은 그 말씀을 따라 평생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끝까지 충성하셔서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섬김은 감정을 극복해야 합니다. 사람을 섬길 때도 하나님을 섬기듯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섬김은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작은 일을 기쁨으로 할 때 넓은 마음을 얻게 됩니다. 기적을 삶의 순간마다 체험하고 경험하지 못하며 살아갈지라도,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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