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마가복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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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1:1(신약 53쪽)
마가복음 1:1 NKRV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신약성경 마가복음에 관한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일전에 신약성경 마태복음을 나누면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보통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담고 있는 성경의 책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요한복음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내용적인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각 권의 책을 통해 강조되거나 특징지어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복음서 각 권이 그려내는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신약성경 마가복음을 통해 본 예수님에 관한 얘기를 나눌 겁니다.
우선 신약성경 마가복음이 복음서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는 성경의 순서는 마태복음부터 시작하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사실은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마가복음의 많은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반복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마가복음이 짧은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겁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전하다 보면, 이야기가 살이 붙어서 점점 커지거나 늘어나곤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내용이 짧고 간결한 것일수록 가장 처음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서 짧다는 것은 아무래도 가장 처음 기록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예요. 물론 모든 이야기가 다 짧게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같은 이야기를 짧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거의 90퍼센트가 유사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오늘 마가복음을 통해 보게 될 예수님도 사실은 일전에 마태복음을 통해 본 예수님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같은 이야기임에도 분명 마태복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이 누군신지를 드러내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마가복음을 기록했다고 알려진 마가라는 인물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일전에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세리 마태가 기록했다고 했는데요. 마가복음은 마가 요한이라는 인물이 기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고, 사도 바울과 또 사도 베드로와 관련이 깊은 인물이었습니다. 성경에 처음 마가 요한이 등장하는 것은 사도 바울과 관련해서인데요.
신약성경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바나나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그들의 동행으로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요한이 함께합니다. 그런데 마가 요한은 전도 여행 중간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일로 인하여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전도 여행에 마가 요한을 데려가는 문제로 갈라지게 됩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에서 실라와 함께 가게 되고,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 요한과 함께 갑니다.
그런데 훗날 마가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도 위로자로 불리며, 중요한 동역자가 되었고 심지어 사도 베드로에게는 영적인 아들로 불리게 됩니다. 바로 그 마가 요한이 신약성경 마가복음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전승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에게서 들었던 예수님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기록한 것이 마가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가 요한은 세리 마태와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니깐, 마태가 순수한 유대인이었다면, 마가 요한은 재외 동포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마가 요한은 사실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두 개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깐 마가라는 이름도 있고 요한이란 이름도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가라는 이름은 당시 로마의 영향을 받은 이름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에 함께했던 것은 그가 아마도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두 개인 것으로 보아서, 그는 외국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유대인 우리로 치면, 국외 교포 같은 이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마가복음은 마태복음과 달리 유대적인 색깔이 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시 로마 제국의 관습을 반영한 부분들을 볼 수 있고, 유대인들이 당시 사용했던 말, 예를 들면 ‘달리다쿰’ 같은 말을 ‘소녀야 일어나라’로 번역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겨냥하는 독자들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거의 90프로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그 강조점과 표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점에 유의하면서, 오늘 마가복음을 통해 나타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마가복음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인데, 다시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의 말씀(신약 53쪽)입니다.
마가복음 1:1 NKRV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방금 읽은 구절은 굉장히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것이 마가복음이라고 했는데요. 이 복음서라는 말이 비롯된 것이 바로 마가복음으로부터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복음’이라는 말은 당시에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황제의 탄생과 등극, 또는 전쟁에 관한 승리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는 복음 본래부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에 관련된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그것을 예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것이죠.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마가복음 1장 1절을 접했을 때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감히 황제에게나 쓰는 단어를 예수에게 돌린다니, 예수가 그렇게나 대단한 분이시란 말이야?’
이를 통해 마가복음 당시에 없던 새로운 장르인 복음서라는 장르를 탄생시키기에 이른 것이지요. 그리고 이를 통해서 분명히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분이 진정으로 세상의 왕이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은 일전에 나눴던 마태복음에서는 ‘메시아’라는 단어로 표현된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은 대체 어떤 왕인지를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목해서 볼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사는 땅과 이방인들이 사는 땅을 왔다 갔다하면서 사역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이적 중에 오병이어 사건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칠병이어 또는 칠병이삼어라고 불리는 사건도 있습니다.
그러니깐 오병이어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 이상의 사람들을 먹이신 사건이라면, 칠병이어 또는 칠병이삼어는 떡 7개와 물고기 두세 마리로 4천 명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여기서 오병이어는 유대인들에게 행하신 이적이라면, 칠병이어 또는 칠병이삼어는 이방인들을 향해 행한 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사실 유대인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고 그들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관련해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가시다가 폭풍을 만나는 장면을 우리는 잘 알텐데요. 이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에 관한 사역에 관계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놀라운 권능에 관한 것으로 보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가는 곳은 주로 이방지역이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은 유대인이라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에게 이방지역에서의 사역을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방지역을 향해 배를 타고 갈 때, 일어나는 폭풍우는 유대인들의 그와 같은 못마땅해하는 모습이나 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잠재우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결국, 이를 통해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왕이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절정은 십자가 사건에 있습니다. 저도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것인데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마가복음은 당시 로마제국 황제의 즉위식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고대 로마제국 황제의 즉위식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첫째, 로마제국 근위대가 로마 황제의 관저에 모입니다. 이때 황제로 등극할 인물이 중앙에 인도됩니다.
마가복음은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립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위치한 로마 총독의 관저로 끌려갑니다. 그곳에는 로마 근위대가 모여있습니다.
둘째, 로마제국 근위대는 자줏빛 예복을 가져와 새로운 황제에게 입힙니다.
마가복음은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립니다.
로마제국 근위대가 예수님께 가시 왕관과 낡은 막대기와 자줏빛 옷을 줍니다.
셋째, 로마제국 근위대가 큰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며 새로운 황제를 승리자로 맞이합니다.
마가복음은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립니다.
로마제국 근위대가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이란 호칭을 부르며 조롱하는 방식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넷째, 로마제국 근위대가 거리 행진을 시작합니다. 행진의 중앙에 새로운 황제가 자리하고, 그 뒤로는 황제의 입성을 기념할 황소 한 마리가 끌려가고 또 황소 옆에는 도살용 도끼를 든 노예가 따라갑니다.
마가복음은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립니다.
예수님이 직접 제물이 되기 위해 걸어가시고 그 옆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매달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갑니다.
다섯째, 행렬은 로마에서 가장 높은 언덕까지 이른다.
마가복음은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립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 오르십니다.
여섯째, 새로운 로마 황제는 몰약이 섞인 포도주잔을 받는다. 그러나 마시지 않고 다시 돌려주고, 그런 다음 그 잔을 제물인 황소에게 뿌린 후 황소를 도살합니다.
마가복음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립니다.
로마제국 근위대가 예수님에게 신포도주를 먹이려고 하나 예수님이 거절합니다.
일곱째, 새로운 로마제국 황제의 오른쪽으로는 제국의 2인자가 왼쪽으로는 제국의 3인자가 붙어 선다.
마가복음은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오른편과 왼편에 각각 한 명씩 강도가 자리한다.
마지막 여덟째, 운집한 군중이 새로운 로마 황제에게 환호를 보낸다. 이때 신들이 이를 수락했다는 표시로 일식이 일어난다.
마가복음은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립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하늘이 어두워진다.
어떠신가요?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은 그저 참혹한 죽음의 현장이 아니라, 마가복음의 저자의 눈으로는 예수님께서 왕으로 즉위하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 말이지요. 물론 로마 황제의 즉위식과 같이 화려하고 멋지게 즉위하시는 것이 아니라, 처참한 모습으로 즉위하는 것은 대조적이지요.
그런데, 마가복음은 10장 45절(신약 73쪽)에는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마가복음 10:45 NKRV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으로 오셨지만, 군림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예수님이 바로 그러한 왕이심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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