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성탄절 (2)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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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 3:16-17(신약 146쪽)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기쁜 성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최근에 흥미로운 책을 접했는데요.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이라는 것인데요. 여러 종류의 지식을 흥미롭게 전달하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에 관해서 새로운 관점을 주기도 해서 틈틈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최근에 흥미롭게 본 내용은 이러합니다.
우리가 남자를 대표하는 색을 파란색으로 생각하고, 여자를 대표하는 색을 빨간색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화장실에도 자세히 보면, 남자와 여자를 그림이나 기호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색깔로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본래는 이와는 정반대였다고 해요. 그러니깐 과거에는 빨간색이 남자를 대표하는 색이었고, 오히려 파란색이 여성을 대표하는 색이었다고 해요. 붉은색이 정열을 나타내기도 하고 종교적으론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기도 하니까요. 또 동양에서는 태양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실은 우리나라 태극기에 보면, 빨간색과 파란색이 있잖아요. 빨간색은 양의 기운을 상징하는 것이고 파란색은 음의 기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요. 또 이것은 자석에도 동일한데요. 양극이 빨간색이고 음극이 파란색이죠.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이 요즘에는 여자 아이들에게 주로 사랑을 받는 핑크색이 과거에는 남자 또는 남자 아이를 상징하는 색깔로 사용되었다고도 해요. 흥미롭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황희 정승의 초상화를 비롯해서 조선시대 초기의 관료들은 핑크색 관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러던 것이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반대로 뒤바뀌게 된 것인데요. 가령, 남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하던 빨간색을 서구에서는 군복에도 사용하였는데요. 사실 전투 중에는 빨간색이 눈에 잘 뛰다보니깐, 오히려 빨간색 대신에 파란색을 선호하게 되었고요. 그러한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면서 빨간색이 아니라 파란색이 남성을 상징하는 색이 점차 바뀌게 되었죠. 이런 배경으로 영국의 왕실근위대는 전통적인 군복을 입고 있는데요. 그것이 빨간색이에요.
그 외에도 파란색이 본래는 인기가 있거나 주목받던 색상이 아니었는데요. 피에타라는 것이 있는데요. 뭐냐면, 예수님의 어머니 이른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님의 시신을 앉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말해요. 그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가 주로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그려짐에 따라서 파란색이 특별하고 고귀한 색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어요. 또 그에 따라서 여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파란색이 쓰이기도 했는데요. 파란색의 인기가 올라감에 따라서 그것은 남성도 관심가지는 색상이 되었죠. 더욱이 오늘날에는 여러 기업들에서 파란색을 사용하고 있죠. 우리가 잘 아는 삼성만 해도 파란색 로고를 쓰고 있잖아요.
그 외에도 역사 속에서 여러 혁명의 시기를 거치면서 붉은색은 혁명을 주도했던 세력의 색상으로 또 우리에게는 공산당이나 혹은 빨갱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그것과 대비되는 색으로 파란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어요.
얘기가 길어졌는데요. 제가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요.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한 통념들이 있는데, 그것을 앞서 소개해드린 이야기들이 깨주기 때문이에요. 사실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는 과정은 한편 그와 같은 통념들을 깨는 과정은 아닐까 해요.
왜냐하면,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그와 같은 통념이 깨어지는 일들을 종종 마주하고 놀라울 때가 있거든요. 이제 이런 얘기는 새롭지 않을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성경에 모세오경이라고 불리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내용을 진짜로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는 얘기 말이죠. 그건 사실 성경을 잘 읽어보아도 알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모세오경에는 모세가 죽음에 이르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자기의 죽음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세 오경은 모두 모세가 쓴 것이 아님에 틀림없죠.
게다가 이러한 내용은 어쩌면 어떤 분들에게는 다소 충격을 줄 수 있을지 모르는데요. 사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고요. 성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에요. 오늘 우리가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키고 있잖아요. 그러니깐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12월 25일은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니에요.
우선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아기 예수님이 12월 25일에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없어요. 본래 이것은 교회의 역사에서 제정된 날인데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략 예수님이 오신 후 300년이 지나는 무렵에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정해서 축제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본래 이 날은 태양신을 숭배하던 이들의 축제였고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태양신을 위한 축제의 날을 성탄일로 변경하게 되었어요. 이 이야기가 아주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을지 모르는데요. 관련된 이야기를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서 사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얘기라는 거예요.
또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말은 사실 신학적으론 맞지 않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성육신하신 것이기 때문이지요.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은 본래부터 존재하셨던 분이라는 거예요. 신약성경 요한복음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시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것이지, 마리아를 통해 비로소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는 얘기에요.
그러니 정확하게 하자면, 우리가 어제 성탄전야제를 하면서 대부분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했는데요. 그건 신학적으론 올바른 표현은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본래부터 존재하셨던 분이시고 하나님이시니 말이지요. 단지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죠. 그것이 마리아를 통해 아기로 태어나시는 방식이었던 거예요.
제가 드린 얘기가 기쁜 성탄을 맞는 것에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데요.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흥미로운 일이면서 때때로 우리의 통념을 깨는 일이기도 해요. 우리는 늘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생일로 성탄일로 오랜 시간을 지켜왔어요. 그러나 그것이 사실과는 다를 수 있고, 신학적으로도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과 통념을 뒤흔드는 일일 수 있어요.
그러다보니, 이단들은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성탄절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거나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식으로 매도하기까지 해요. 앞서 제가 말씀드린 12월 25일의 유래를 가지고와서 결론은 성탄절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죠. 그러나 저는 그러한 이단들의 결론에 동의할 생각이 없고 그것이 결코 올바른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성탄절은 꼭 12월 25일에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셨기 때문에만 의미 있는 날이 아니거든요. 사실 그 날짜가 특별하다기 보다는 그 사건이 특별하다고 말해야 할 거예요.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 사건 곧 성육신 또는 성탄 말이죠. 저는 그 사건이 특별한 이유를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고 보는데요.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심지어 암송까지 하는 말씀일 겁니다. 주로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암송하고 있을 것이지만 말이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하시는 말씀인데요. 이 말씀 속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곧 성탄의 의미가 분명히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말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바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이를 분명하게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제대로 알게 된다면, 우리는 참으로 오늘을 기쁜 성탄으로 맞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생각합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오신 주님을 생각합시다. 그 놀라우신 은혜를 기억하며 복된 성탄주일이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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