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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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 2:10(신약 89쪽)
누가복음 2:10 NKRV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반갑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함께 하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를 아끼고 불쌍히 여기는 지인들은 종종 제게 묻습니다. ‘좋은 소식 없냐고’ 말입니다. 아마 저에 관해 잘 아시는 성도님들은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금방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혼자냐, 언제 둘이 되냐’라는 말이지요. 아쉽게도 저는 아직도 혼자입니다. 그래서 이에 관해서 들려드릴 좋은 소식은 안타깝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다른 좋은 소식이 제게 최근에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곽희명 전도사님과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제가 곽희명 전도사님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 사역자로 오시면서 처음 만났고 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왠지 예의상 그렇게 말해야 할 것도 같고요. 사실은 이전부터 이에 관해서 계속 기다리고 바래왔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신황등교회에 올 때 저의 선임으로 김문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초반에 교회에 적응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얻었는데요.
아쉽게도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는 것처럼, 한 동안 전임사역자로는 혼자서 있었는데요. 그간 저를 어여삐 여겨주시는 성도님들로 인해 그럭저럭 부족하나마 제게 주어진 역할들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좀 아쉽고 채워졌으면 하는 것이 있었는데요. 제가 청소년부와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었는데요. 교육부서는 특성상 학생들과 좀더 친밀해져야 하는데, 그러한 친밀함을 이루기에 좀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청소년부 또는 청년부에게 늘 미안한 마음으로 남이 있었습니다. 예배나 모임을 인도하긴 하지만, 그 외 다른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요. 그래서 맞벌이하는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열심을 내줘서 사실은 많이 힘쓰지 못했음에도 큰 탈 없이 지금껏 운영이 됐습니다. 또 한편으로 시간이 약인지 서로 조금씩 편한 관계가 되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실 수 있는 사역자에 대한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형편이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사역자들을 쉽게 교회에 청빙할 수 있는 형편이 잘 안됩니다. 그러다보니 그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로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정말 감사하고 다행스럽게도 곽희명 전도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셨는데요. 저는 마음 한 켵에 있던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향한 미안함과 그에 따른 부담감을 덜 수 있게 됐어요. 다소 덜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지금은 저의 부담감을 오히려 전도사님에게 지워지고 있으니 좀 미안하긴 하지만요. 그래도 전도사님이 계시니깐 확실히 이전보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교역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잘 아시지만 교회는 연말로 갈수록 여러 행사들을 준비하느라 바쁘잖아요. 그에 따라 저도 평소보다 많이 움직입니다. 제가 차고 다니는 시계에는 운동량을 체크해주는 기능이 있는데, 평소에는 주로 자리에 앉아 있으니 운동량이 그리 많지 않은데요. 요즘은 그보다는 훨씬 많은 운동량이 채워집니다.
그러다보면, 참 슬픈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교회의 연중행사 가운데, 잘 아시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은 꽤나 크고 중요한 행사인데요. 그 행사를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기보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되새기며, 오히려 빨리 지나가게 되기를 바라곤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일은 아닌데요. 제가 전에 사역하던 교회에서는 12월 24일과 25일이 너무나 힘든 날이었습니다. 매번 그날이 오면,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새벽까지 예배 준비에 따른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러한 성탄절이 제게는 하나도 기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오히려 힘들고 괴로운 날이기만 했습니다.
제가 목사이기에 오히려 더욱 교회의 여러 행사들을 보다 의미 있게 맞이하고 준비해야함이 마땅할 텐데요. 그 행사가 일에 치이다 보니 피하고 싶은 것이 되어버리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성탄절에는 우리 전도사님이 계시잖아요.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몰라요. 절대로 마구 부려먹을 수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사실 어제도 전도사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시간에 쫓기며 해야 했던 일들을 훨씬 수월하게 빨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구절을 묵상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10 NKRV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예수님의 탄생 소식에 관하여 천사들은 말합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교회에서 일하면서 엉뚱한 구절에 저의 눈길이 머뭅니다. 천사가 말하죠.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어느 순간 제게 성탄절은 ‘무섭고 두려운 소식’으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 소식을 들었던 목자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봅니다. 과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정말로 ‘기쁘고 좋은 소식’으로 다가왔을까? 당시의 상황을 놓고 보자면, 사실 목자들은 양들을 지키느라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밖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대체 천사의 말처럼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무슨 기쁨을 준다고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목자들에게 필요했던 좋은 소식은 ‘정말 수고 많이 했으니, 이젠 집으로 돌아가 쉬어라 일하느라 애썼다’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듣고 싶은 말 아닙니다.’ 그저 당시 목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상상해 보는 겁니다. 그런데 왠지 목자랑 제 처지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래서 저는 이 말을 곱씹으며 생각해 봅니다. 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좋은 소식이지? 그리고 여기서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복음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복음’ 곧 좋은 소식 또는 기쁜 소식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신다는 것이 바로 복음 곧 좋은 소식입니다.
성경을 같이 좀 찾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21절입니다. 신약 93쪽입니다.
누가복음 4:16–21 NKRV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십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읽은 이사야서를 통해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 또는 구원자가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나타내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심을 말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우리에게 복된 소식인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제가 우리 전도사님을 통해 과거보다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처럼 이상으로 아니, 사실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서 예수님을 통해 온전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그 분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우리가 기쁨으로 그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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