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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용서와 인간의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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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지은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 어떻게 반응하십니 까 ? 잘 용서해 주십니까? 아니면 잘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까? 저는 다른 사람이 용서를 구하 면 그 상황의 기분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하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신은 용서받았지만 다 른 사람에게는 용서를 베풀지 않은 한 종에 관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이 비유는 다른 복음서 에는 등장하지 않고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비유입니다. 비유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 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23-27절에 나타나고 있는 첫 번째 막은 한 임금과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나 되는 엄청나게 많은 빚은 진 어떤 종 사이에 있었던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금은 자기에게 일만 달란트 를 빌린 종을 불러 그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습 니다 . 달란트는 대략 34Kg 에 해당하는 당시의 가장 큰 화폐단위인데, 만 달란트는 지금 우리 의 화폐 기준으로 보면 16조가 넘는 상상하기도 힘든 큰 빚을 진 종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이 종이 어떤 이유로 이렇게 큰 빚을 졌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 않아 알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종이 임금에게 빚을 졌고, 지금 임금이 종에게 하고 있는 요구는 부당한 것이 아니라 당 연한 요구라는 것입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신에게 빌린 것을 갚으라는 임금의 정 당한 요구에 종은 자신의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종에게 그 몸과 아 내와 자식들을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는데, 당시 노예의 가격이 대략 500~2,000 데나리온에 거래되었음을 생각해 볼 때, 종이 자신의 모든 가족을 팔더라도 임금의 빚을 갚기에는 역부족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종은 임금 앞에 엎드려 절하며 빚을 다 갚겠으니 제발 참아달 라고 간청하며 임금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 때 임금은 종의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놓아주며 모든 빚을 탕감해 주겠노라고 선포합니다. 종이 요구한 것은 단지 빚을 갚을 수 있 는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임금은 기간 연장이 아니라 빚 자체를 모두 탕감해 주 겠다는 놀라운 은혜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일만 달란트 , 우리 돈으로 16조가 넘는 돈을 임금이 종을 불쌍히 여겨 탕감해 준 것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임금은 종을 불쌍히 여겨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첫 번째 막이 끝이 나고, 이어서 28-30절에서는 두 번째 막이 나타납니다. 두 번째 막에서는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탕감 받은 종과 그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 진 동 료 한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금의 은혜로 일만 달란트나 되는 엄청 난 빚을 탕감 받은 종은 궁전에서 나가자마자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서 멱살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습니다. 비유에서 분명하게 빚을 탕감받은 이후 바 로 나가서 자신에게 빚진 자를 찾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임금에게 엄청난 빚진 자였 지만 임금의 자비와 은혜로 탕감 받았지만, 방금 자신에게 일어난 용서를 잊어버리고 자신이 받아야 할 빚만 생각하였습니다. 임금에게 자신이 져야 할 의무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었던 종이었지만, 자신의 작은 권리에 대해서는 한걸음의 후퇴도 하지 않는 악랄한 모습 을 보이고 있습니다.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는 이전에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임금에게 했 던 것과 같은 자세로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주면 곧 갚겠노라 ”고 자비를 구합니다 . 앞서 임금의 자비를 받은 종은 자신이 입은 은혜를 기억하며 마땅히 자비를 동료에게도 베풀어야만 했습니다 . 하지만 종은 자신보다 더 간절하게 자비를 구하는 동료의 요청을 묵살하고 ,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31-34절에는 마지막 세 번째 막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는 임금으로부터 다시 호출 받은 종과 임금 사이에 있었던 일이 나타납니다. 자신은 임금으로부터 일만 달란트나 되는 엄 청난 빚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그의 60만분의 1 에 해당하는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신의 동료에게 그 빚을 탕감해주기는커녕 감옥에 가두는 종의 모습을 동료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안타까워하며 임금에게 가서 이를 모 두 다 보고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은 더 이상 종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분노하며 종 을 다시 불러서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는데 그러면 너도 나처럼 동료를 용서해 주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책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종을 불쌍히 여기지 아 니하고 빚을 갚도록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세 번째 막이 끝납니다. 세 번째 막에는 첫 번째 막과 다른 점이 있는데 이제는 종에 대한 임금의 일방적인 공의의 선언과 처벌만이 주어지고, 더 이상 종이 변명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자비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 실상 자신의 힘으로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다 갚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평생 감옥에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 장면으로 구성된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각각 마음으 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고 말씀하시면서 비유의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통해 제자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는 일만 달란트나 되는 엄청난 것이지만, 이웃이 우리에게 지은 죄는 백 데나리온에 지나지 않는 작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엄청난 죄를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 해 주셨기에, 우리도 이웃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와 동시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만약 자신들이 이웃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 임금이 자비를 베푼 신하를 다시 불러 감옥에 가둔 것처럼 , 하나님께서 도 우리에 대한 용서를 취소하시고 다시 그 죄에 대한 값을 물으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 니다 .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 자신의 행동과 판단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도 아닌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이런 모습을 보이셨냐는 문제가 발생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한번 결정하신 일을 ,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한번 용서해 준 일까지 다시 취소하시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의 행동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 라질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용서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마태복음 6장에 있는 주기도문에도 등장합니다. 주기도문 중에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직후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 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 여기에서도 예수님은 형제 상호간의 용서와 하나님 과 우리 사이의 용서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할 때, 하 나님께서도 우리의 용서 청원을 허락하시지만 ,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 하나님도 우리 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 자체를 잘 보고 이에 충실 해야 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하려는 것 아니 라 성경 자체로부터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야기 서두에 있는 23 절의 “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 떤 임금과 같으니”라는 말씀과, 이야기 결론 35절의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 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는 말씀을 깊이 살펴봐 야 합니다. 이 두절의 말씀을 통해 오늘 본문의 비유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천국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야기의 주인공인 임금은 천국을 이끄시는 하나님이시며, 종들은 천국 백성을 가 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임금이 종에게 보여준 공의로운 요구와 자비, 자비를 거 둠 , 종에 대한 최종적 심판 등의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 국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보여주는 사랑을 통하여 표현된다는 것 입니다 . 임금이 동료 종의 빚을 용서해주지 않은 악한 종에게 실제로 그렇게 한 것처럼, 하나 님께서도 천국 백성인 우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우리 죄를 용서해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천국에 관한 말씀은 우리가 이 비유를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세상의 관습과 도덕, 제 도등의 방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천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에서 통용되는 여러 원칙들이 통하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에 관해서는 우리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법칙과 기준에 가두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 람을 용서할 때 용서할 마음이 없어도 상황에 따라 용서할 때가 있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의 용서는 사람과 달라서 인격적인 용서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용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상 적인 용서의 방식으로 본문 비유의 용서에 접근하면 하나님이 변덕을 부리시는 이상한 분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범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용서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격의 변화까지 불러오는 천국의 용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예수님의 가 르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가운데 임금이 용서해준다고 선언한 것은 임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엄청난 손해와 희생을 감당하며 용서해 준 것입니다 . 임금이 얼마나 돈이 많은지는 몰라도 결코 일만 달란 트 , 16 조나 되는 금액은 적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문제는 용서를 받은 종의 모 습에 있었습니다. 종은 임금의 값비싼 용서를 올바로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자신 이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진 상태라는 것 역시 깨닫지 못했습니다. 용서 받기 전이나 후나 달 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임금의 용서와 자신의 용서를 별개의 문제로 이해했 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동료에게 자신이 용서받기 이전과 동일한 행동을 보여준 것입 니다 . 용서 받은 종이 받기 이전과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그 안에 변화를 일으 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임금의 용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 가 무엇이며, 천국은 어떤 곳인지 , 천국 백성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 습니다 .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단순한 용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 나라 백성인 우리 자신의 용서까지 포함하는 용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문 속의 종처럼 우리의 삶에서 하 나님의 용서가 나타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표현으로 서 하나님의 용서는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서 만나고 체험적해야 하는 당장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잣대와 , 내가 사람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잣대를 분리해서는 안됩니다 . 하나님으로부터는 한없이 무한한 용서를 받기 원하면서 , 내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일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끝없이 계산하는 그런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용서를 받 았는지 , 또한 이후로도 더 많은 용서를 받아야 하는 자인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용서하지 않은 종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안에 이 종의 모습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 었습니다 . 이 종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가 너무나도 큰데 그 용서는 이미 제 머리 속 에서 잊혀지고 , 하다못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이시니깐 당연히 저를 용 서해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고 제 죄가 얼마나 큰지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하고자 시도하 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향한 비판과 용서에 대해서는 얼마나 인색하고 계산적 인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신 그 은혜는 새까맣게 다 잊어버리고 아무런 대가 없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에는 억울하고 또 그렇게 용서 하고 싶지 않은 너무나도 악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품은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이런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이런 모 습이 있다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일찍 이 모습을 버려야만 합니다 . 비유에 나타난 종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가 임금에게 받은 용서가 취소되고 옥에 갇히게 되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런 모습을 버리고 종과 같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서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계속해서 용서받기 전 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용서가 취소되어버릴 것입니다 . 하나님 으로부터 용서 받은 천국 백성의 합당한 모습은 하나님의 용서를 닮아 다른 사람을 동일하게 아무런 대가 없이 용서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유에 나타난 종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심으 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 천국 백성다운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시는 품은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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