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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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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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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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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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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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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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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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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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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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기도회에 나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성도님들 대부분 자녀가 있으실텐데 자녀들을 사랑하십니까 ?
어떻게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자녀를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사랑하십니까?
각자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 실텐데 ,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가기 원 합니다.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와 그 주변의 이방교회들에게 보낸 편지글입니다.
사도 요한 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받은 자 였습니다 .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일, 이, 삼서를 기록하고 요한계시록 역시 기록했는데, 이 책들을 보시면 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 은 그의 편지 속에서 “ 사랑”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 요 한은 편지의 수신자들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 5 장 3절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 니다 .
3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
5장 3절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 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라고 명확하게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는 5장 1절부터 3절에 걸쳐서 설명되고 있는데 제가 한 번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읽어보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는 모든 사람 은 , 하나님에 의해 낳아진 사람입니다 .
낳아준 자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그에게서 낳아진 사람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행할 때, 이것으로 우리는 하나 님의 자녀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의 계명들을 준수하는 것이 하나님 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성도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시켜주고 있 습니다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되심을 믿는 모든 사람, 즉 성도는 하나님에 의해 낳아진 사람이 라고 말합니다 .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다른 성도들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들을 지켜 행할 때, 우리가 다른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이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 하는 것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
즉 ,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2 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비 로소 하나님에 의해 낳아진 다른 사람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
본문 속에서 요한은 다른 성도들을 ‘형제’가 아니라 ‘자녀’ 라는 단어를 통해서 부르 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 즉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사랑해야할 필요성에 대 해 말하기 위함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앞서 먼저 자신들이 속한 신앙 공동체 속에서 그 구성 원들을 사랑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요한은 성도의 참 모습을 검증하는 테스트 중 가장 실제적인 테스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가 과연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우리 눈에 보이는 분이 않으십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사랑한다는 말로 끝나는 것 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 주위의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임을 말합니다.
참 된 사랑의 증거는 말이나 감정에 있는 것이 아 닙니다 .
참 된 사랑의 증거는 행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만하고 감정만 가지고 아무런 행동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나타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웃 사랑을 말하는 이유는 당시 영적 엘리트주의자들의 모습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를 자랑했습니 다 .
그렇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자랑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한 그들의 사 랑으로 검증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만약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을 미워하면 하나님에 대 한 사랑을 의심해야 하며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주위의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의 근거를 19절에서 찾고 있습니다 .
19절에서 요한은 “우 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고 말합니다 .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더 이상의 이유가 필요없는 것입니 다 .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연히 우리의 힘으로는 이웃 역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셨기에, 우리가 그 사랑에 힘입 어서 , 그 사랑에 우리가 녹아져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우리 가 하는 모든 사랑의 근거가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박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사랑의 모든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 만약 주위의 형제와 이웃들을 미워한다면, 그 사랑은 거짓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은 본문에 앞서 요한일서 3 장 17-18 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 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
자녀들아 !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결코 진실된 사랑이 아닙니 다 .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과 혀로만 말하고 , 정작 주위에 있는 형제의 어려움과 궁핍함에 눈을 감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그 형제에 대해서 온전한 사랑을 나누고 전해야만 합니다.
복음서를 보시면 바리새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율 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던진 질문은 바로 “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냐” 는 것입니 다 .
이 때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계명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계명을 주시는데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율법을 율법 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 니다 .
그런데 두 번째 계명을 말씀하실 때 독특한 부분이 있습니다.
둘째 계명을 주시면서 예 수님께서는 두 번째 계명이 첫 번째 계명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같다는 것입 니다 .
여기서 같다는 것은 단순히 그 의미가 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요성에 있어서 동등 한 것을 의미합니다 .
예수님의 기준에서 볼 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요성이 완전히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이웃 사랑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
로마서 13장 8-10절 말 씀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
간음하지 말라 , 살인하지 말라 , 도둑질하지 말라 ,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 었느니라 .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 장 3절에서 분명하게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말한 것과 동일한 내용이 로마 서에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 로마서에서도 분명하게 우리가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 안에 다른 계명이 다 포함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 즉 사랑이 곧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눈 것들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 다 .
그리고 사도 요한은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계명 지키는 것을 이웃 사랑에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 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히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죄인된 우리가 행하기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를 사랑해 주는 자를 사랑 하고 , 형제에게만 문안하는 것은 세리와 이방인들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 이 무시하던 세리와 이방인을 언급하시면서까지, 우리의 원수와 박해하는 자를 사랑하라고 강 력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으로의 이웃 사랑은 쉬워 보입니다 .
본문에서 나타난 것은 단순히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성경 속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형제 사랑을 말씀하신 내용은 우리 안 에 많은 갈등을 불러옵니다.
어떻게 원수까지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
인간적인 생각과 관점으로 볼 때 이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
인간의 사랑은 너무나도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이심을 믿는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낳아진 우리는 아버지되신 하나님으로 인해 이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고 인도하시는 힘에 따라서 행하면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랑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이웃과 형제들이 있습니다 .
누가 내 이웃이고 형제인지 너무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주위의 성도님들이 우리의 형제 자매들 입니다 .
또한 우리 주위에서 만나는 앞집 옆집 사람들 역시 우리의 이웃입니다 .
지나가다 만 날 수 있는 노숙하시는 분들도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가 사랑을 나눠야할 대상입니다.
사랑하는 품은교회 성도 여러분, 주위의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 니다 .
오늘 본문 속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이웃 사랑의 모습이 나 타난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살펴본 모든 사랑을 그의 사역을 통해 보이시고 나타내셨습니다 .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그리스도인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진실임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사 랑을 나누며 살아가시는 품은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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