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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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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35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

전도서 9:1–10 NKRV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난해함의 대명사

이틀 연속으로 이 자리에서 성도님들을 새벽에 만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으로서 말씀을 준비해서 성도님들과 나누는게 늘 기쁘고 설레는 일이지만, 솔직히 이번에는 참 부담이 많이 됩니다. 단순히 연속으로 삼일 설교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필이면 전도서가 본문이기 때문이었지요. 사실 전도서는 심오하면서도 의문의 여지가 많은 책입니다. 전도서는 우리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읽어보지 못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지요. 묵상을 하다보면 도대체 “이게 지금 맞나? 어떻게 이런 내용이 성경에 써있을 수 있지?”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혼란을 주는 내용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전도서는 1장에서부터 우리의 인생을 아주 그냥 헛되고 의미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전도서 1장 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처럼 전도서는 무려 열두 장에 걸쳐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해 아래에서의 삶)이 불의와 불합리함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헛되고,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내용은 우리에게는 참 받아들이기 곤란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설교자의 입장에서도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본문이 전도서일 것이고, 대부분의 성도님들의 입장에서도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본문이 전도서일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약시대가 끝날 무렵에 유대인들도 전도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전도서를 성경에 포함시킬 것인지 말것인지를 두고 엄청난 대립이 있었지요.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가 바리새파의 양대 세력을 이루고 있었는데요, 힐렐 학파는 신앙에 있어 조금은 자유롭고 진보적인 반면에 샴마이 학파는 상당히 보수적이었습니다. 이 두 학파는 늘 율법을 해석 문제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는데, 전도서를 성경에 포함하는 문제로도 서로 대립하였습니다.습니다. 율법의 정신을 중요하게 여긴 힐렐 학파는 전도서를 가리켜 “거룩한 손을 더럽히는 책”이라고 혹평했습니다. 반면에 율법은 있는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샴마이 학파는 전도서를 가리켜 “율법으로 시작해서 율법으로 마치는 책”이라고 호평했습니다.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전도서가 성경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잠언, 욥기와 함께 순서가 묶여 지혜를 담은 책들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이 지혜를 담은 책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또, 인간이 어떻게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교훈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지요. 그러니 전도서가 비록 우리에게 어색하고 의문스러울 수는 있어도, 여기에는 아주 심오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전도서를 잘 소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특별히 불의와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겠지요. 그러니 계속해서 전도서를 묵상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해와 깨달음을 주셔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충만하게 하시는 새벽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앞 장에서 전도자는 악인이 의인의 상을 받고 의인이 악인의 벌을 받는 것 같은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고민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어제 새벽 우리가 아주 깊게 함께 나누어보았던 그 문제입니다. 전도자는 의문을 품고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깊이 고민하였습니다. 전 8: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아무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보아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요.
전도자는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 끝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전 9: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전도자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지만 이 세상이 기계처럼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아득히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로 이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해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그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일들이지요. 그래서 사람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의인도 하나님의 손에 있고, 지혜자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을 누릴 것 같지만 깊이 생각해보니 그들이 사랑을 받게 될지 미움을 받게 될지, 그들의 앞길이 형통하게 될지 곤고하게 될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의롭게 산다고 해서, 지혜롭게 처신한다고 해서 당연히 나의 앞길은 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아직 마음이 답답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욥기도 어느 정도 비슷한 내용을 교훈한다 할 수 있는데요, 욥이 얼마나 의로운 사람이었습니까? 또 이 욥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까? 성경은 그가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자였다고 기록해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앞날이 늘 형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시련이 욥에게 임했습니다. 그 많던 가축이 다 노략질 당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아들과 딸 셋은 사고로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욥 자신의 몸에는 심한 악창이 생겼습니다. 욥이 그토록 의롭고 지혜로웠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니까 시련이 임하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욥이 비록 시련을 당했지만 누구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까?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욥 1:21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요.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렇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이시고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 그래서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것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2절입니다. 전 9:2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여기서 말하는 결국이 무엇일까요?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든지, 되는 대로 살든지 죽는 것은 일반입니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음. 어떻게 살다가 죽어도 그저 죽으면 끝임. 시대적인 한계. 죽은자의 부활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아직 계시되지 않았던 시대. 그래서 이것이 사람들을 방탕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가장 큰 악한 일이라고 탄식함. 전 9: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이 두 가지 대 전제, 즉 사람은 자기 앞날을 예측할 수 없고,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이라는 대 전제에 대해서 솔로몬은 3절 이하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죽음은 피할 수 없다(Death is unavoidable). 솔로몬은 3절 이하에서 죽음을 앞두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이 과연 어떠한 자세로 사는 것이 마땅한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먼저 솔로몬은 두 가지 잘못된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고, 그런 다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살아가면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 마땅한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첫번째 잘못된 견해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죽음을 악한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이렇게 살아도 죽고, 저렇게 살아도 죽고, 죽는 것은 매일반인데 구태여 힘들게 의롭게 살아갈 필요가 무엇인가?" 이렇게 악한 마음을 품고 미친 듯이 살다가 허무하게 죽는 인생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들이 잊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히 9:27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삶은 다릅니다. 공통이 아닙니다.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되는 대로 악하게 마음대로 살다가 허무하게 죽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잘못된 견해입니다. 그 다음에 또 잘못된 견해가 있습니다. "그래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참으면서 인생을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4∼6절 말씀입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설마 산 입에 거미줄치랴. 살아가다 보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겠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현실의 어려움을 꾹 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생을 소극적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즐겨 인용하는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4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성경에 보면 개는 토한 것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부정한 동물입니다. 경멸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사자는 용맹스럽습니다. 동물의 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더 나은 이유가 있습니다. "살아 있어야 더 나아지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의하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나은 이유가 또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살아 있는 사람은 그래도 의식이 남아 있지만 죽은 사람은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또 있습니다.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죽은 사람에게 상을 줘보세요. 기쁨을 느낄 수 없지 않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6절 말씀입니다.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지 오래니."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살아 있어야 무엇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요. 죽었는데 무엇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기회가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하면서 지겨운 인생이지만 마지못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것도 잘못된 견해입니다.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최선이 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분에게 나이 든 아버님이 계셨습니다. 사람이 나이 들면 이런 저런 병이 들게 마련입니다. 신경통이 생깁니다. 당뇨도 생깁니다. 관절염도 생기지요. 이분의 아버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심장병으로 늘 고생했습니다. 이분은 믿음이 좋았습니다.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쫓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병원 곁에 있는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의식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며칠 뒤에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셔서, 아버지와 아들이 말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게 그냥 그대로 데려가 버리셨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살아나 보았자 또 이런저런 병에 시달리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역시 고통 당하기는 매일반이지 않습니까? 그럴 바에야 아예 고생이 없는 곳, 고통 당하지 않는 곳, 질병이 없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오래 산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죄악 가운데 무조건 오래 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받을 형벌만 더 많아지지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더 복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순교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솔로몬은 7∼10절에서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가서." "가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적극적인 삶을 살 것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죽을 인생이니까!"라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지 마세요. 또 가만히 앉아서 소극적으로 살려고 하지도 마세요. 그러면 과연 적극적으로 사는 인생이 어떠한 것인지 솔로몬은 우리에게 네 가지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1) "Enjoy your meals." 음식을 맛있게 먹으라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음식을 먹으면서 투정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잔소리하는 사람은 아주 못된 사람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언제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마시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인간은 자기 수고의 낙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는 사실은 벌써 우리의 수고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먹을 수 있는 건강 주셨지요, 그것을 느낄 수 있은 입맛도 주셨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음식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이와 같이 언제나 즐거운 식탁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Enjoy your life." 삶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옛날 유대인들은 결혼식과 같은 축제 때에는 흰옷을 입었습니다. 멋을 부리는 것입니다.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평소에는 올리브 기름을 발랐지만 축제 때에는 머리에 향기름, 향수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솔로몬은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축제 때만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언제나 축제 때의 기분으로 활력 있게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언제 보아도 멋있고, 향기 나고, 활력 있는 즐거운 삶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Enjoy your family life." 가정생활도 즐겁게 해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우리가 덧없는 인생길을 살아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덧없는 인생길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의 즐거움을 자기의 가정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서,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네가 일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내 남편은, 내 아내는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분복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누리라고 주신 복입니다. 일평생동안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즐겁게 살라고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배필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으신 분들은 일평생 동안 함께 사랑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Enjoy your work." 일하는 것도 즐겁게 해야 합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무슨 일이 주어지든지 간에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어둔 밤 쉴 때가 곧 닥쳐옵니다. 그때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하나님 앞에서 셈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슨 일을 맡겨주시든지 간에 그 일에 땀흘리면서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일도 열심히 하고, 직장 일도 열심히 하고, 교회 일도 땀흘리면서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 앞에서 셈할 때 잘했다 칭찬 받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어차피 죽을 인생이니 되는 대로 살라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소극적으로 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니 더욱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지요. 즐겁게 살아야지요.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즐거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솔로몬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교훈입니다. 먹는 것도 즐겁게 먹고, 사는 것도 즐겁게 살고, 부부생활도 즐겁게 하고, 일하는 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자세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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