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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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1-8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막1:1-8)
“가장 많이 만나는 다섯 사람이 당신의 일생을 결정한다,” 이말은 한 두해 전 머니투데이에서 나오는 글을 인용한 한 컬럼에서 읽은 말입니다. 내 운명은 내가 많이 만나는 다섯 사람이 내 일생을 결정한다. 그러고 보면 저나 여러분은 아마도 피차 상호간에 영향을 주면서 내 인생의 운명을 좌우 하는 다섯 사람 중의 하나에 속할찌 모르겠습니다.
질론이라는 모티베이터는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수준은 가장 많이 어울리는 사람들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변화를 원한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다섯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라고하면서 이중에 세사람은 배울점이 많은 탁월한 사람이어야 인생이 상승견인 될 수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만나는 다섯 사람의 평균을 올려 주기 때문이다. 평균을 떨어 뜨리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만나든지 만날 수 없으면 긍정적인 책과 미디어를 접하는 것이 나의 평균을 올려 주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말이 해당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가장 많이 만나이 있기 때문 입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예수님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우리의 평균이 올라가려면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그것이야 말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 믿고 우리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화의 길에 올라야 합니다. 목적지까지 더욱더 변화 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래 전에 은퇴를 생각하면서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고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우연히 읽은 한 권의 기독교 교육에 속한 책에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하워드 핸드릭스의 삶을 변화 시키는 가르침이라는 책입니다.거기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고인물이 되기 보다는 흐르는 물이 되고 싶다.” 고인물은 썩을 수 밖에 없는데 흐르는 물을 맑아서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생수를 내보내기 때문입니다. 그저 늙어서 고인 물이 되기 보다는 생수가 되자 이런 생각에서 새로운 것이라고 하면 배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 시작한 일에 주님의 축복을 기대합니다. 여러분들도 새로운 도전,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까? 마음속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 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 하노라. (빌1:6) 다시 시작하는 일에 축복 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읽은 마가 복음은 “시작”이라는 특별히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4장 1 절에는 “예수께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다시 5장 7절에는 “무리가 예수께서 그 지방을 떠나 시기를 간구하기 시작하였다 (1장 45절에는) 문둥병자가 그 이적 을 전파하기 시작하니라(6:7)에는 그리스도께서 그 열둘 을 보내시기 시작 하니라(15:8) 에는 군인들이 그를 조롱 하기 시작하니라(14장:65절)에는 “조롱자들이 그에 게 침밷기 시작 하니라”
오늘 1 절 말씀에도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 말씀은 마가복음의 제목입니다. 어떤이는 이 말씀을 가리켜 4 가지 신비를 선포한 말씀이라고 칭합니다. 첫째는 하늘의 가장큰 신비(wonder)인 하나님의 아들 둘째는 인류의 가장 큰 신비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세번째는 모든 지식 중의 가장 신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마지막 네번째로 가장 놀라운 시대인 “복음의 시작” 이 말씀 속에 네가지 경이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 속에는 가장 위대한 신학이 들어 있습니다. 신학과 신앙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신학은 신앙을 해석해 주고 오류를 잡아주는 잣대입니다. 신학은 신앙을 해석해 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판과 같은 것입니다.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이 선언이 마치 마가복음 전체를 이야기 하려고 하는 듯이 말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복음” 이라는 말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앞에 얼마나 수식어가 많이 붙어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 둘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셋째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무엇을 이야기 할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복음 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긴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누구의 복음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요즘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복음을 선포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복음이지요. 비슷한데 아닌 것들도 있습니다. 그 복음의 유래는 어디 입니까? 복음의 기원이 어디입니까?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입니다. 그복음이 누구를 통해서 나타났습니까?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 해도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것 전체를 다 이야기 한 것 같습니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을 누군가에게 전할려고 이 책을 썼습니다.
이책을 쓴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행한 행적을 다 알고 있으며 특히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선교 여행에 동참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쓴 복음서입니다.
그래서1절이 간단한 것 같지만 그 가운데에는 복음의 기원이 들어 있고, 복음의 내용이 들어 있고, 복음의 시작이 들어 있습니다.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시고, 내용은 그리스도이 십니다. 이것은 또한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있습니다. 그것이 무어냐면 복음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은 충고가 아닙니다. 너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충고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충고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교훈도 아닙니다. 복음 가운데 교훈이 있지만 성현이 가르치는 교훈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이라고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복음은 윤리가 아닙니다. 윤리적 요소가 있습니다만 복음은 윤리가 아닙니다. 그런 윤리라면 다른 종교도 얼마든지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윤리라고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복음은 도덕이 아닙니다. 물론 도덕적 요소가 있지만 도덕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도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지요, 예를들면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던가, 특별히 구약에보면 윤리적으로나 도덕 적으로 이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 만 보다가는 잘못하여 실족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할려고 하는 것을 잘못 들을 수가 있습니다.
복음은 도덕경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도덕이 라고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복음은 철학도 아닙니다. 산상설교 같은 것은 위대한 철학 입니다. 그러나 철학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과학도 아닙니다. 성경에는 과학적으로 이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학 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과학이 설명을 못하고 있거나, 우리가 이해가 다르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이라고 만능이 아닙니다. 과학은 단지 하나님이 주신 세계를 끊임 없이 탐구해내는 것이 임무입니다.
복음이 무어냐하면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멧세지 입니다. 그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의 뜻은 Good News 입니다. 영어로 Gospel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멧세지 라는 뜻입니다. 이 말들은 그리스어 유앙겔리온 에서 나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마라톤의 유래를 아실 것입니다. 전쟁터에 나간 군대가 전쟁에 승리했다는 기쁜 소식 을 42킬로인가요?
그 소식을 달음질 해 와서 전했던 데에서 유래 되 었는데 말하자면 복음 이라는 말은 이와같은 기쁜 소식 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message" 라는 말입니다. 무슨 멧세 지냐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구원”의 멧세지 라는 말입니다. 사실인류의 문제는 경제문제가 아닙 니다. 환경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문제나 도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에 앞서 죄의 문제입니다. 이문제 해결이 없이는 어느 문제도 해결이 없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예수님은 해결해 주셨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예언 되었습니다.
그런데2절에 보세요 무어라고 쓰여 있습니까?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고 기록된것과 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2절 중간부터 3절 끝트머리에 있는 말, 기록 된 것과 같이....라는 말은 이사야의 글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전 700여년전 사람입니다. 그는 예언자입니다.
이 예언에 따라 누가 왔다는 것입니까? 세례 요한 이 왔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서 올 것을 수백년 전에 이사야가 예언을 했다는 것이요, 그 예언에 따라서 세례 요한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신 것은 이미 이러한 예언의 성취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와서 무엇을 했습니까? 예언에 따라 다음에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길닦는 일을 하러 왔다는 것이지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이렇게 외쳤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그래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것이라는 뜻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 를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유대와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와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온 유대와 예루살렘이라 했으니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 복받으라는 축복 성회는 많이 열려도, 힐링을 위해 병고치는 성회는 많이 열려도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성회가 열렸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선지자들이 외친 말씀들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는 멧세지였고, 회개가 일어났을 때에 하나님은 마음조차 돌리셨다는 것을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읽오 있습니다. 진정 회개를 요청하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평양 대부흥이나 미국의 30 년대 부흥운동의 기저에는 회개와 각성 운동이였다는 우리는 역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누가 받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누가 받을 수 있습니까? 복음은 누구에게나 다 전해졌지만 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를 영접하는 자만이 받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 영접 합니까?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드리는 사람 입니다.
회개는 또한 예배의 기본 요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에 예배 순서에는 “죄의 고백”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국교회 예배는 이 순서가 없습니다. 오늘은 있는 교회도 있고 없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고백”후에는 용서의 선언도 있지요…여러분 그런 주보를 보신 일이 있습니까?
회개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방향 전환 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가던 길을 바꾸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일렇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부터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말씀 했습니다.
그 사람이 구원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충고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까? 교훈을 주기 위해서입니까? 도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까? 윤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입니까? 철학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입니까? 아닙 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새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믿는자 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영원히 잘되게 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으면 죄의 권세와 유혹에서도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책임지시는 분이 우리의 육신도 책임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믿음이 별것입니까 바로 이것이 믿음이지요. 믿으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성령을 선물로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고 인도 하심을 받아 사는 백성 그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려면 구원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날마다 감사하면 그 감격으로 살아가야 하지요. 내 모든 일을주께 맡기고 내 영혼 주께서 주장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 라도 주께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9970820 갈릴리교회, 20090830수도장로교회,2013년 10월20일 해거스타운 한인교회, 20220501 워싱턴신학교)
나의 신앙고백은?
(막1:1-8)
지난 주와 같은 성경 본문입니다. 지난 주에 이런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가장 많이 만나는 다섯 사람이 당신의 일생을 결정한다,” 한 두해 전 머니투데이에서 나온 말인데 인용 했습니다. 내 운명은 내가 많이 만나는 다섯 사람이 내 일생을 결정한다. 그러고 보면 저나 여러분은 아마도 피차 상호간에 영향을 주면서 내 인생의 운명을 좌우 하는 다섯 사람 중의 하나에 속할찌 모르겠습니다.
질론이라는 모티베이터는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수준은 가장 많이 어울리는사람들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변화를 원한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다섯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라고하면서 이중에 세사람은 배울점이 많은 탁월한 사람이어야 인생이 상승견인 될 수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만나는 다섯 사람의 평균을 올려 주기 때문이다. 평균을 떨어 뜨리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만나든지 만날 수 없으면 긍정적인 책과 미디어를 접하는 것이 나의 평균을 올려 주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 여기 마가라는 사람에게서 인생이 변화 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가가 누구였느냐?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이었 습니다. 교부 이레네우스는 130넌 -140년경 시대의 교부인데 베드로가 행한 설교를 기록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을 읽어보면 단순하고 솔직하고 활기 넘치는 언어와 생동감있는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본명이 마가 요한이고, 그 모친은 마리아이며 그의 집은 제자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 되었습니다.(행12:13), 그는 바나바의 사촌이기도 합니다.(골4:10), 본서에는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한 청년이 따라 오다가 벌거벗은 채 도망쳤다는 기록은 아마도 본인을 가리켰을 것이다 라고 보고 있는 견해가 있습니다.(막14:51-52) 그는 후에 베드로를 도왔습니다. (골4;10;몬24; 딤후4:11, 벧전 5:13) 그리고 디모데 후서 4:11 절에는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베드로전서 5:13절 “내 아들 마가도 (문안)하느니라,” 두 사도의 관계는 마가복음은 마가가 썼다는 내증이 되기도 합니다.
특징은
1. 마가복음은 간결한 복음서입니다. 복음서 중에 가장 짧죠.
2. 구약성경을 한번만 인용합니다.(1:2-3)
3. 이방인 위해서 쓴 것 같습니다. 선교의 입장에서
4. 이책에는 행동의 복음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곧, 즉시(ευθεωs, euθυs)라는 말이 40회나 나오고 유드스 1회)라는 말이 41 번이나 나오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에 대한 말씀은 19개나 기록 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족보와 유아 시절은 생략 되어있습니다.
5.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들에 대해서 비교적 생생하고 자세히 묘사했다. 예를 들어, 2:3은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어서” 왔다고 증거했고, 4:38은 예수께서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셨다고 증거했고, 5:41과 7:34는 “달리다굼”이나 “에바다”라는 아람어를 그대로 증거했고, 6:14-29는 세례 요한의 죽음을 자세히 증거했고, 6:39는무리를 “푸른 잔디에” 앉히셨다고 말했고, 9:14-29는 간질병 소년의 치료를 자세히 증거했고, 14:30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 주를 부인하였음을 증거하였다.
왜 오늘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했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마가가 쓴 맨처음 이 책의 시작이 “하나님의 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전제로 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마가의 신앙고백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왜냐? 남의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에 대해서 믿고 본대로 쓴 것이기 때문 입니다 야
그렇다면 내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신앙고백을 하십니까?
교회에서 가르쳐준 그 고백이 아니라 내가 믿는 예수를 어떻게 고백하느냐 그리고 내가 그 고백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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