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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평신도 사역자 (교회를 세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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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이제 내가 살아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본문: 골 1:24-29(행 11:19-26, 행 18:24-28, 마 28:18-20)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가르침은 각 사람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교회는 고난을 기뻐해야 한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편하고 싶고, 안 힘들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난이 기쁘다, 괴로움이 기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너희를 위한 고난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위한 고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어요.
우리 24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누군가를 대신해서 받는 고통은, 기쁨이 됩니다.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헌신하고, 수고하고, 애쓰는 것은, 아이들을 위하여 하는 고난이고 수고이죠.
이런 수고가 기쁨이 됩니다.
우리 교회 순장들이 다 그런 존재입니다.
순장들은 여러분들의 영적 부모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수고하고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순장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여기서 ‘위하여’라는 단어는, ‘대신에’라고 번역할 수 있고,
그러면, 너희를 대신해서 고난 받는 것이 기쁘다.
여러분, 우리가 부모로서 고난 받기를 기뻐하려면 준비가 되고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울면 짜증이 나거든요.
아이들은 배가 고프고, 필요를 채우고 싶어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울거나 보채거나 짜증을 냅니다.
그러면, 부모는 그 상황을 잘 체크하고,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해야 하는 거에요.
이게 사역자입니다.
사역자들은 맡겨진 양떼들의 필요에 민감해야 해요.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잘 확인해야 하는 것이죠.
바울은 자신이 고난받는 것이 기쁘다.
너희를 대신해서,
또 교회를 대신해서, 고난 받는 것이 기쁘다. 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 경지까지 가려면, 엄청나게 자기 부인을 해야 해요.
원래 사람들은 ‘자기 중심성’이 있어서,
고난이나 어려움을 당하면, ‘자기’ 밖에 안 보입니다.
한국교회도 보면은,
성도들이 듣기 좋은 설교,
현세적 축복의 설교,
치료의 설교,
마음의 회복을 위한 설교 등등
자기 중심성에 가까운 설교 주제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정말 그 사람을 치료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냐?
물론, 그런 설교도 해야 되겠지만,
자기 중심성이라는 지독한 죄성을 회개시켜 고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처방전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죠.
나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고, 나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훈련을 하는 것이,
자기 중심성을 치료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래서, 훈련받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세우고 섬기는 일에 쓰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죠.
그게 순장이고, 리더이고,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죠.
*교회는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를 대신해서,
양떼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괴로움이 무엇인가?
바울은 그것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일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28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
이것이 바울이 받는 괴로움이고, 고통이고, 고난이라는 것이죠.
사람을 세우는 것이 무엇이 어렵냐?
사람을 세우는 것이 무엇이 힘드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사람은 세워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헌금 안 하던 사람을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사람으로 세워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을,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으로 세워보실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이죠.
마음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하냐? 라고 하면서, 매주일 모여서 드리는 공적 예배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에게, 공적 예배가 중요하고,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옳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사람 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드냐면,
여러분이 먹던 음식이 뭐에요?
라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라면 좋아하지 말아라, 이제 건강한 음식만 먹어라.
이게 되겠습니까?
안 먹던 음식을 강제로 먹일 수도 없고 ㅎㅎ
쉽지 않은 일이죠.
평소에 늘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세상에서 숨고 싶고,
그런 사람을, 밖에 나오게 하고, 긍정적으로 살게 하고, 자기 자신을 자책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믿으며, 자유롭게 살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이죠.
이게 괴로움이고, 고난이고, 고통인 거에요.
사람을 바꾸는 힘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매일을 날마다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이죠.
이게 고난이고, 고통이고, 이런 걸 사역이라고 하는 거에요.
이거 할 수 있으면, 여러분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이게 대부분 안 되는 거에요.
말씀만 전하고 가르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영적인 형편도 살펴서, 그 사람의 영적인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고, 채워지도록 또 기도하는 일이 필요한 거에요.
이게 사역인 것이죠.
바울은 이 일을 위해서 자기가 직분을 받았고, 일꾼이 되었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거에요.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다.
내가 직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게 25절인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사역하는 거 참 힘들다.
왜냐하면, ‘일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사역자, 하인, 노예, 봉사자, 집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사역자가 뭐에요?
노예라는 것이죠.
봉사자, 사역자, 집사라는 것이죠.
집사라는 단어가 디아코노스에요.
교회에서 사역자이고, 하인이고, 노예이고, 봉사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사역하는 게 참 힘든 것이죠.
그런데, 바울은 힘들다고만 이야기하지 않고, 뭐라고 합니까?
이거 하나님이 나한테 주신 직분이다.
청지기직이다. 관리직이다. 라고 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집을 관리하는 직분이다. 라고 하는 거에요.
이 직분이 얼마나 굉장한 직분이냐면,
이 직분을 잘 하고,
이 사역을 잘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교회의 일꾼, 교회의 직분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교회의 일꾼이 될 수 있어요.
교회의 일꾼이 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나고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유명한 대기업가의 자제나, 임원이나, 권력 있는 정치인과 관련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를 안 믿으면, 이 직분을 받을 수 없고요.
예수를 모르면, 이 직분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훈련을 받아야 하고,
예수를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1월 초가 되면은, ‘새가족반’도 운영을 하는데요.
새가족반을 하는 이유가 뭐냐?
예수를 구원자로, 주님으로 영접하도록 돕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반을 하고, 제자훈련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고 돕기 위해서입니다.
일꾼다운 일꾼이 되기 위해서 이런 과정들을 거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가 살고, 예수의 사람이 되도록 돕기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사역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사역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8절을 다시 읽어보시면,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 우리가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 닮지 않은 사람이 사역을 할 수 있을까요?
말에나 일에나, 성품에나, 영성에나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사람이 사역을 하기는 쉽지 않아요.
여러분,
요즘 헬스장 다니시는 분들 있죠?
헬스장 다니면, 개인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사람이 개인 트레이닝을 시켜줄 수 있는 이유가 뭐에요?
먼저, 그 사람이 몸 단련하는 일에 능숙하고, 운동기구를 활용하는 일에 능숙하고, 어떻게 하면, 건강한 신체와, 밸런스 있는 몸을 세워갈 수 있는지, 훈련이 되어있고, 탁월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본인도, 몸을 세울 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몸을 세워줄 수 있을까요?
그런 거에요.
그래서, 누구나 사역자가 될 수 있고, 누구자 교회의 직분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나 교회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예수님 닮은 몸으로 세워 보았느냐?
얼마나 예수님께 순종하였고, 예수님처럼 헌신하였느냐?
이게 되어 있어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세워줄 수 있는 것이죠.
*이 일을 하는 원동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다.1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나?
원동력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이,
사람을 세우는 일,
교회를 대신해서, 괴로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을 기뻐할 수 있었던,
그 에너지가 무엇이냐?
그게 29절에 보니까, 2가지로 나오고 있는데요.
첫째는, 바울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이 사역을 했다는 거에요.
사역이 얼마나 힘드냐면,
이게 사람을 세우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사람들 마음에 다 만족을 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죄인이 예수님 따르는 게 쉽겠습니까?
안하던 헌신을 해야 하고,
안하던 헌금을 드려야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으로 세우는 게 쉽겠습니까?
이게 참 힘든 거에요.
평일에도 수고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인데, 사람 세우는 일까지 맡기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해야 하고,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고,
정말, 고민이 많이 되고,
힘이 드는 거에요.
그러니, 이게 사람의 힘으로 되겠습니까?
사람은, 조금만 미움을 받아도 힘들어요.
사람은 사회적 욕구가 있고, 소속되고 싶은 소속감의 욕구가 있어서,
누군가가 자기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그러면, 그 공동체를 떠나고 싶고, 그런 거에요.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대신해서 괴로움을 받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바울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인 거에요.
그게 있어야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힘들면 포기하고 멈추고 그만하고, 이런 것은, 아직도 내적인 힘이 약해서 그런 거에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끈끈해져야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이 내 안에서 살아 숨쉬셔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뭐든지 다 그래요.
*이 일을 하는 두 번째 원동력은 자신의 힘을 다한 수고이다.2
또 바울의 두 번째 원동력은 무엇이냐?
다시 29절을 보세요.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고한다고 했으면서,
동시에 뭐라고 하냐면은,
나도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힘을 다하여는 헬라어로 ‘아고니조마이’ 힘쓰다, 싸우다, 애쓰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바울 자신도
힘을 다 하고,
날마다 싸우고, 애를 쓰면서, 수고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여러분, 힘을 다해서 사역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영적인 싸움을 싸워가면서 사역을 해야 하는 거에요.
애를 쓰고, 수고하고,
어머니가 아기를 낳는 심정으로 애를 쓰고 수고를 해야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힘이 드는 것이죠.
*내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년부터 시작되는 모든 사역을,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또 우리 자신이 힘을 다하고, 애를 쓰고, 수고를 다하여야 되는 사역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역하는 은혜가 우리 청년부에게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주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순장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평신도는 누구인가?
평신도는 교회의 시녀인가?
평신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순장은 = 사역자이다.
사역자만 사역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권주의이다.
평신도가 사역자이다.
무슨 사역을 해야 하는가? 말씀과 목양 사역을 해야 한다.
바울은 목사인가? 사도인가? 평신도인가?
바울의 동역자들은 목사인가?
사도행전, 13장을 보니 바울은 선지자요 교사이다. 그리고 바울 외에도 교사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평신도이다.
관찰
24 이제 나는 기뻐한다(카이로 / 현재). 그 파쎄마(고통, 고난)을, 너희를 위하여(휘페르 / 대신에), 그리고 나는 채운다(안타나플레로오 / 현재). 그리스도의 슬리프시스(환난, 고통, 고난)들의 부족한 것(휘스테레마 / 가난한, 남은, 부족한)을, 나의 사륵스(몸, 육체) 안에, 그의 소마(몸)인 에클레시아(교회)를 위하여(휘페르 / 대신에),
*너희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바울은 먼저 기뻐함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고난을 기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남은 것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
이것들이 바울은 기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교회와 양떼들을 위하여 받는 고난과 고통을 기뻐하고 있다.
25 내가 된 것은, 디아코노스가(섬기는 자, 집사, 사역자),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사명, 경륜)에 따라서, 내게 주신, 너희를 위하여, 이루려는 것이다(플레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바울이 섬기는 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또한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경륜(직분)에 따라서
26 그 비밀은 숨겨졌던 것(아포크립토)인데, 세대들(아이온)과 세대들(게네아)로부터, 이제! 그러나 드러났다(파네로오), 그의 거룩한 자들에게.
*그 비밀은 무엇을 받는가?
*그 비밀은 세대들과 세대들로부터 숨겨졌던 것이지만, 이제 그 비밀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대상은, 거룩한 자들이다.
27 하나님이 바라셨던 바, 드러나는 것을, 이 비밀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이방인들 가운데에. 이것은 그리스도다! 너희 안에, 영광의 소망이다!
*하나님은 드러나는 것을 바라셨다,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얼마나 풍성한지를.
이것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다.
곧 영광의 소망이시다!
*바울은 찬양하고 극찬하고 있다.
이 비밀은 곧 이방인에게도 임재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놀라운 소식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숨겨진 비밀이지만, 이제 거룩한 자들, 즉 이방인들에게 드러나게 되었다. (바울은 이방인을 성도라고 부른다.)
28 우리가 공개적으로 전하는 바(카탕겔로 / 전하다, 알게 하다), 모든 사람을 권하고(누세테오 / 훈계하다, 권하다, 가르치다), 모든 사람을 지도하는 것은(디다스코 / 가르치다, 지도하다), 모든 소피아(지혜)로,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텔레이오스(온전한, 장성한, 완벽한) 자로 파리스테미(보내다, 이르다, 서다, 준비하다)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공개적으로 전하고
모든 사람을 권하고
모든 사람을 지도하는 것은
모든 지혜로,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한 자로 준비시키기 위함이다.
*온전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 바울이 일하는 이유이다.
29 이를 위하여, 내가 코피아오(수고하다, 피곤하다, 노력하다, 지치다, 애쓰다)한다, 아고니조마이(힘쓰다, 싸워다, 애쓰다)하면서, 그의 엔에르게이아(사역, 역사, 활동)을 따라서, 에네르게오(역사하다, 활동하다)하시는, 내 안에서 뒤나미스(권능, 능력)으로.
*코피아오 - 마치 코피를 쏟으면서 일하는 느낌이다.
바울이 싸워가면서, 애쓰고 지치고 피곤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 일을
자기 안에서 능력으로 활동하시는, 그의 활동을 힘입어서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바울은 자기 공로를 내세울 수 있으나, 성령님께 그 공로를 되돌려드린다.
연구
골로새서 개관
바울의 옥중 서신 중 하나인 골로새서는 이제 막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의 첫걸음을 내디딘 신생 교회가 세상의 철학과 초등학문으로 불리는 외부의 미혹과 공격을 잘 이겨내고 복음의 본질을 깊이 깨달아 성숙해지도록 권면하는 성경이다.
골로새서의 핵심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을 완벽하게 성취한 분으로, 그분이 하신 일에 인간이 더하거나 뺄 것은 전혀 없다. 이 사상은 골로새서, 1:15-20의 ‘그리스도 찬송시’에 가장 잘 나타난다.
골로새 교회는 누가 세웠나? 사도행전, 2:10에 따르면, 오순절을 맞아 브루기아 출신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가 베드로가 선포한 복음을 듣고 회심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골로새 지역에 교회를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이보다 더 개인성이 높은 것은, 바울 일행이 제2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 머물 때(행 19:10), 골로새 출신의 바울의 동역자인 에바브라가 고향을 방문하여 교회를 세웠을 가능성이다(골 1:7). 당시 바울은 2년 3개월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두란노를 중심으로 복음을 강론하며 아시아 각처에서 에베소를 방문한 사람들을 통하여, 다시 복음을 아시아 전체로 전파하였다(행 19:26).
골로새 교인들은 대부분 이방인들로 구성된 듯하며(골 2:13), 그중에는 빌레몬, 압비아, 아킵보 등과 같이 바울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골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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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절에서 바울은, 교회를 대신하서 종으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로 이해하였다.
‘비밀’은 신약에서 28회 나온다.
많은 경우 특징은 이 단어가 구약의 인용문이나 암시(다니엘서 등)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시킨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일을, ‘자신의 사역’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속죄 행위’를 한다는 것인가?
틴데일 신약주석 골로새서 빌레몬서 1) 그리스도 안에서의 바울의 사역(1:24–29)

중간기의 몇몇 저자와 랍비 문헌의 저자들이 구약성경으로부터 발전시킨 이 후자의 사상은 (예수와 바울에게도 나타나는데) 세상의 역사를 두 시대, 즉 현 시대(악의 시대, 갈 1:4 참조)와 다가 올 시대로 나눌 수 있다는 견해의 일부이다. 역사상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위대한 순간이 도래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엄청난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믿어졌다. 그러한 고난은 새 시대를 위한 해산의 고통으로 이해되었다(롬 8:22). 그러한 고통은 메시아의 도래와 함께 수반되는 것으로 아마도 메시아 도래의 전조(예시)일 것이다.

주님의 부활과 재림 사이의 기간은 “시대의 전환기”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을 “메시아적 탄식”의 시기로 특징지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고난은,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새 백성이라는 증거로 간주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고난의 한 가운데서 또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난 안에서” 기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메시아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난의 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처럼, 그의 백성들도 그들이 견디는 고난에 의해 인정받을 수 있다.
바울은 고통당하는 것을 교회의 소명으로 본다.
틴데일 신약주석 골로새서 빌레몬서 1) 그리스도 안에서의 바울의 사역(1:24–29)

바울은 십자가에서 성취된 것과 동일한 형태, 즉 다른 사람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동일한 형태를 자신에게 적용시킨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골로새 교인을 그들의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일은 이미 행해졌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현재 당하는 고난에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가능한 한 자신이 많은 고난을 짊어지기를 기뻐한다.
‘채우다’로 번역된 ‘안타나플레로’는 ‘아나플레로’에 ‘안티’라는 전치사가 접두모음으로 붙은 형태인데, 전치사 안티는 바울의 고난이 단지 골로새 교회를 ‘위한’ 고난만이 아니라, 사실상 그 교회를 ‘대신하는’ 고난임을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틴데일 신약주석 골로새서 빌레몬서 1) 그리스도 안에서의 바울의 사역(1:24–29)

여기에 언급된 고난을 그리스도인이 믿음 때문에 당하는 직접적인 외부 박해의 관점에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교회가 그런 박해에 늘 준비해야 하고 그러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실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그가 가진 믿음 때문에 이런 저런 식으로 다양하게 고난을 당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외적인 고난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다양한 내적인 고난들, 즉 유혹 또는 질병과의 느리지만 오랜 투쟁, 가정 또는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연관된 염려들(바울 또한 이러한 고통들을 안다. 고후 1장과 2장; 살전 2:17–3:1을 참조), 믿음의 순종과 함께 나타나는 끊임없는 의심과 불확실성,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았지만 육체의 한계에 따라 자연적으로 겪는 수많은 충격적인 일 등이 일어난다. 이 모든 고난들이 적절하게 이해된다면 기뻐해야 할 일들이다. 결코 가볍게, 경솔하게, 피상적으로 기뻐해서는 안 될 이유는 그것들이 현 시대가 지나가고 메시아 예수의 새 백성들이 새 시대의 자녀들이며, 이 새 시대가 동터오는 해산의 고통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징조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임무는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는 것,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비밀 : 이전의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 비전과 상징으로만 예고되다가 마침내 이제 그의 모든 백성 앞에 드러난 하나님의 비밀스런 계획이다.
바울에게 ‘비밀’은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이다.
이 비밀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포용한다는 계시가 있다. 이 사실이 바울에게 하나님의 계획의 ‘영광의 풍성함’을 드러낸다.
이 영광의 소망은 그 비밀이신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때문에 확실하다.
유대인의 메시아가 “세계 이방 민족 가운데 그의 거처를 삼으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계획(22절)은 그의 백성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계획에서 파생된 바울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세우는 데 있다.
그리스도와 바울의 목적이 이처럼 유사하다.
바울이 일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분명 수고한다.
그러나 바울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활력을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이다.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는 말은 운동 경기를 연상시킨다.
바울은 자기가 게을러서 할 수 없는 틈을 은혜가 채울 것이라 기대하면서 자신의 사역을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또한 ‘모든 것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여 쉼 없이 염려하며 수고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식으로 덤벼든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교만이나 두려움”이라는 강력한 압박 없이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성숙함에 도달할 수 있다.
“모든”이 3번 반복된다.
‘권하다’는 누군가의 마음이 일면 혼란해졌음을 전제하고 그 마음을 적절한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혼란이 때때로 찾아올 수 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생각을 올바르게 다 잡아 바로 세우는 일이 ‘권면’이다.
성숙의 의미는 ‘죄 없음’이 아니다. 성숙함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묵상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주변 신자들과의 관계를 세워주어야 한다.
불평하는 말은 쉽다.
죄인들은 ‘자기의 옳음’을 입증하고, ‘상대방의 옳지 않음’을 드러내기 위해 불평한다.
불평은 쉽다.
그러나 ‘감사’는 어렵다.
감사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일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교사, 순장, 리더들은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배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임명된 사람들이다.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실력만 좋으면 나라가 망한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이 되면 그 가정이 망한다.
‘감사’는 실력보다 우선한다.
실력보다 ‘감사’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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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사장이다.
회사를 차렸다.
직원을 고용했는데, 실력이 뛰어나다.
그런데 그 직원이 항상 회사와 사장을 향한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다.
이 직원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 직원의 태도 때문에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여러분이라면, 실력이 뛰어난 직원과, 태도가 좋은 직원 중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어떤 직원을 선택할까?
어려운 질문이고,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그리고 특히 중요한 직책일 때에는 직원의 태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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