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평신도 사역자 (교회를 세우는 자)
중간기의 몇몇 저자와 랍비 문헌의 저자들이 구약성경으로부터 발전시킨 이 후자의 사상은 (예수와 바울에게도 나타나는데) 세상의 역사를 두 시대, 즉 현 시대(악의 시대, 갈 1:4 참조)와 다가 올 시대로 나눌 수 있다는 견해의 일부이다. 역사상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위대한 순간이 도래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엄청난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믿어졌다. 그러한 고난은 새 시대를 위한 해산의 고통으로 이해되었다(롬 8:22). 그러한 고통은 메시아의 도래와 함께 수반되는 것으로 아마도 메시아 도래의 전조(예시)일 것이다.
바울은 십자가에서 성취된 것과 동일한 형태, 즉 다른 사람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동일한 형태를 자신에게 적용시킨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골로새 교인을 그들의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일은 이미 행해졌다.
여기에 언급된 고난을 그리스도인이 믿음 때문에 당하는 직접적인 외부 박해의 관점에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교회가 그런 박해에 늘 준비해야 하고 그러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실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그가 가진 믿음 때문에 이런 저런 식으로 다양하게 고난을 당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외적인 고난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다양한 내적인 고난들, 즉 유혹 또는 질병과의 느리지만 오랜 투쟁, 가정 또는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연관된 염려들(바울 또한 이러한 고통들을 안다. 고후 1장과 2장; 살전 2:17–3:1을 참조), 믿음의 순종과 함께 나타나는 끊임없는 의심과 불확실성,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았지만 육체의 한계에 따라 자연적으로 겪는 수많은 충격적인 일 등이 일어난다. 이 모든 고난들이 적절하게 이해된다면 기뻐해야 할 일들이다. 결코 가볍게, 경솔하게, 피상적으로 기뻐해서는 안 될 이유는 그것들이 현 시대가 지나가고 메시아 예수의 새 백성들이 새 시대의 자녀들이며, 이 새 시대가 동터오는 해산의 고통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징조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