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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이유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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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8 (NKRV)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요한복음 1:6–8 NKRV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기다림으로의 부르심

대림절은 기다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기에 참 좋은 절기입니다. 대림절이라는 말 자체가 “기다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대림절은 영어로 “Advent”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오다”라는 뜻의 “Adventus”에서 유래했습니다.본래 이 “Adventus”는 로마에서 신이 축제 기간에 자신들의 신전을 찾아와 인간들과 함께 머무는 일을 뜻하는 말이었구요, 또한 황제가 즉위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찾아와 백성들 사이에 행차하는 일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죠.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오는 일을 설명했습니다.
신이 자신들의 신전을 방문할 것을 기대하는 로마인들에게 기다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또 황제가 자신들의 지역을 방문할 것을 예고받은 로마인들에게 기다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여러분들에게도 공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하였을 때를 한 번 떠올려봅시다. 학교에 장학사가 오기 전날은 어김없이 대청소를 하는 날이었구요, “우리는 이렇게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선생님들과 열심히 참관수업을 준비합니다. 수업이라고 쓰고 연극이라고 읽어야 맞죠. 또 부대에 사단장이 방문하였을 때를 한 번 떠올려봅시다. 없던 화단이 갑자기 생기고, 광이 바랜 아스팔트 도로에 구두약을 먹여서 반짝반짝 빛나는 길이 만들어집니다. 로마인들도 이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신전을 혹은 거리와 광장을 청소하며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지십니까? 신 혹은 황제의 위엄에 걸맞는 준비를 하기 위해 아주 분주하게 준비를 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기다림에는 “예비하다”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있습니다. 이런 기다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기다림과는 많이 느낌이 다릅니다. 그저 그 시간이 오기까지 참고 견디는 기다림이 아니라, 그 시간이 오기까지 적극적으로 열심히 행동하는 기다림이니까요. 오늘은 이처럼 수동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기다림, 열심히 행동하는 기다림, 예비한다는 의미에서의 기다림에 대해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세례 요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세례 요한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은 참 특별한 인물인데요, 첫번째로 모든 복음서에서 예수님보다 앞서서 소개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예언이 있기 전에 세례 요한의 출생에 대한 예언이 나타나구요, 예수님의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세례 요한의 활동이 나타납니다. 심지어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의 본문에서는 세례 요한의 활동으로 복음서가 시작되고 있는데, 상당히 생뚱맞게 느껴지지 않나요?
세례 요한은 두번째로 많은 구약의 약속들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세례 요한의 출생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잠시 한 번 기억해봅시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고, 그와 아내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자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그리고 오랜 불임, 그리고 자녀에 대한 약속, 혹시 익숙한 내용이 스쳐가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또 마노아와 그 아내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엘가나와 한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이를 몹시 원했던 부부들에게 이삭과 삼손과 사무엘의 출생에 대한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그저 아이를 낳을 것이다 정도가 아니라 그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지요. 이삭은 땅과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자가 될 것이었고, 삼손은 블레셋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자가 될 것이었으며, 사무엘은 왕을 기름부어 세울 자가 될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출생 예언에 이처럼 이삭과 삼손과 사무엘이 반향되어 있다는 것은, 그가 장차 이삭과 같은 자, 삼손과 같은 자, 사무엘과 같은 자가 될 것임을 어렴풋이 가리키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세례 요한은 장차 새로운 이삭이 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자가 될 것이고, 새로운 삼손이 되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자들과 다툴 것이며, 새로운 사무엘이 되어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부어 세울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출생 예언에는 엘리야에 대한 반향 또한 나타납니다. 세례 요한은 새로운 엘리야가 되어서 사람들이 주님을 맞이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킬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의 본문에서는 복음서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곧바로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는 지금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사람들을 동요시키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막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혹시 이 구절에서 사람들을 동요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아주 긴박하고 과격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세례와 회개라는 말이 익숙하기 때문에 지금 이 구절에 나타나는 뉘앙스를 제대로 알아차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당시에 세례 자체가 생소한 일은 아니었지만, 요한의 세례는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세례라는 말에는 ‘물로 씻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에게 이런 종류의 세례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마다 반복적으로 해야 했던 일이었구요. 하지만 이것과 달리 요한의 세례는 단 한번 받는 일이었습니다.
세례라는 말에는 ‘물에 담금’이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을 할 때 반드시 물에 몸을 담가야 했는데요, 이것은 외부인을 내부인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과 달리 요한의 세례는 내부인을 회개시키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1세기 유대교인들에게 이런 종류의 세례는 듣도 보도 못한 너무나도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여기 회개라는 단어로 쓰인 헬라어 메타노이아를 직역하면 “생각 혹은 마음의 변화”로 쓸 수 있는데요, 요한의 세례를 통해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변하는 일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곧 세례였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회개라는 단어로 히브리어 슈브를 사용하는데 이를 직역하면 “반대 방향으로 돌아섬”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오실 주님’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알고 있고 또 믿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완전히 생각과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살아왔던 방향에서 돌아서게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생각과 마음의 변화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어디를 향해 돌아서야 했을까요? 조금 더 자세히 이 구절을 들여다보도록 합시다.
막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세례 요한은 지금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6절을 함께 보면 그는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베풀어 주지요. 당시 유대인들은 죄의 용서는 성전에서 희생제사를 드려야만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으로 나아가기 전 몸을 깨끗이 물로 씻고 희생제물을 드린 그들은 스스로 이미 죄를 용서받았다고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는데요, 요한의 메시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지금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그들이 몸도 물로 깨끗이 씻고, 희생제물도 드리는 내부인이지만 진정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요한은 아무리 반복해서 성전을 찾는다 한들 단순히 의식을 지키는 것으로서는 아무런 죄를 용서 받는 은혜를 기대할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가질 때에, 지금껏 달려온 삶의 방향에서 돌아설 때에 성전 밖에서도 죄를 용서 받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이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선포했던 메시지입니다. 그는 이 메시지를 외치며 사람들을 동요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왜 이런 메시지를 외친 것일까요? 이것이 그의 부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막 1:2-3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에 보내진 사자입니다. 여기서 “사자”는 라이언이 아니라 메신저지요. 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그는 메신저로서 사람들에게 생각과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으로 사람들이 주님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키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메시지를 전하였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과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의 시기 가운데에서 그렇게 자신의 부르심을 이루며 살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을 고대하며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열심히 그의 일을 하였습니다.

주님을 맞이할 준비

우리 또한 세례 요한과 같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단지 시기만 조금 다를 뿐이지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과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의 시기 가운데를 살아갔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신 후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의 시기 가운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이나 우리나 예수님보다 앞에 세상으로 보내져서 사람들이 주님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키는 같은 소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기신 이 시대에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이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 자신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의 변화가 없이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죄악으로 달음질하는 삶의 방향에서 돌아섬이 없이 그 누구도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수가 없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다시 오실 주님과 마주한 자의 운명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자들은 버려지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또 예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 천국 문이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 하십니다. 마 25:10-12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끔찍한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우리 각자의 삶을 잘 살피고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전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이웃들은 지금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임을 과연 알고 있을까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에 다시 한 번 우리 가운데 오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예고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땅히 세상에 알리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시기 전에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그동안 걸어온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모든 자들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던, 아무리 큰 부와 능력과 지혜와 업적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생각과 마음이 변화되고 삶의 방향이 돌이켜지지 않았다면 끔찍한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임하실 그 때에, 그분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설 때에 오직 그에게는 두려움과 공포와 좌절과 절망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들은 지금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세례 요한과 같이 이 기다림의 기간 동안 아주 적극적으로 열심히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임하실 때에 그 분의 영광과 위엄과 존귀에 합당한 성대한 잔치가 준비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날이 분명 큰 잔치의 날이 될 것이라고 계속해서 말씀해오셨습니다. 사 25:6-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특별히 그 날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혼인잔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그날에 필요한 모든 귀하고 값진 것들은 하나님께서 모두 준비하십니다. 우리가 할 것은 그 자리를 채워 함께 영광을 돌릴 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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