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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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인간의 한계를 기억하며 하나님이 주신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복된 인생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전에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들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세생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모든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이 말은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김혜자씨의 나레이션입니다.
전도서를 마무리하며 생각났던 드라마가 바로 이 드라마였습니다.
그래서 요새 시간날 때마다 보는데 너무 재밌더라구요.
전도서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김혜자씨가 드라마에서도 말하고, 대상수상할 때도 말했던 이 말을 다시 들으면서 전도서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대사는 인생이 때로는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오늘 하루를 망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많이 알려진 말들이 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나온 말인데 아마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카르페디엠, 메멘토모리입니다.
카르페디엠이란 지금 현재를 즐겨라는 라틴어이고,
메멘토모리란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짝궁같은 단어들은 죽음을 기억하면서 현재를 맘껏 즐기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본론]
그럼 전도서의 가르침은 어떨까요?
얼핏보면 전도서의 가르침도 비슷한 것 같아 보입니다.
전도서는 처음 1장부터 우리 삶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그런데 전도자가 삶에 대한 많은 것들을 관찰한 후 전도서 마지막에 하는 말도 똑같습니다.
12장 8절입니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게 전도자의 결론입니다.
이 ‘헛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벨’입니다.
이 단어는 안개, 입김, 연기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헛되다’라는 의미보다는 인생이 마치 연기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수수께끼 같다는 의미로 보는게 더 나아 보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를 읽을 때 이런 의미를 기억하면서 읽는 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처럼 전도서는 우리의 인생을 헤벨로 만드는 주범을 세가지로 지적합니다.
첫째는 시간입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세상은 변함없고 우리의 삶은 겨우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오래 기억되지 않고 잊혀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죽음은 부자, 가난한 자, 선한자, 악한자를 가리지 않습니다.
셋째, 예측불가능한 삶입니다.
삶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재앙은 때와 장소,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세상에서 말하는 카르페디엠, 메멘토모리와 달리 한가지를 더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전도서의 핵심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이 문장의 영어 번역을 보면 첫번째 동사가 Remember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기억하라는 말의 의미는 지적인 능력으로서의 기억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새기고, 항상 염두해둬서 삶의 모든 순간마다 판단하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여기서 ‘고생스러운 날들’이란 늙어서 몸과 마음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를 의미합니다.
그런 때가 되면 인생이 안개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때는 사는 게 그리 즐겁지 않게 되니까 그 때가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젊으면 젊을수록 되도록 이른 나이에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서가 말하는 헤벨같은 삶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2-7절은 인간이 늙는 것과 죽는 것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비를 몰고 온다는 것은 젊음이 사라지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런 때가 되면 건강했던 팔이 수전증 걸린 것처럼 떨리게 되고, 튼튼했던 두 다리가 관절이 약해져 힘이 없어집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구 어깨야,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다리야 하는 소리 많이 들으셨을 거에요.
이도 약해져서 젊을 때 좋아하던 음식도 제대로 씹지 못하고, 눈도 침침해져서 읽는 것도 힘들어 집니다.
개역개정은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을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어질 것’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맷돌이 음식을 가는 데 사용하듯 이빨을 그렇게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새번역은 이런 은유들을 모두 해석해서 번역을 하다보니 그 느낌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4절은 노인이 되면 귀의 기능이 떨어져서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잘 듣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말씀드릴 때는 크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5절은 노인이 되면 높은 곳을 무서워하고, 작은 위험에도 조심스러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머리도 파뿌리처럼 거칠어지고, 원기도 떨어져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변변찮습니다.
보통 사람은 40대가 되면 모든 육체의 기능들이 점점 쇠퇴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40대 중반인데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카톡 글자가 잘 안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늙어가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서글퍼 집니다.
음식도 젊었을 때는 매운 것을 잘 먹었는데 이제는 조금만 매운 거 먹어도 탈이 나서 고생을 합니다.
우리 집사님 앞에서 이런 얘기하니까 민망하지만 사실입니다.
젊은 여러분들은 배고프면 돌도 씹어먹을 수 있지만, 중년이상은 그랬다가는 응급실갑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젊은이 분들은 점심 선정할 때 이런 배려를 꼭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5절 뒷부분부터 7절까지는 죽음에 대한 묘사입니다.
조문객들이 오고가는 모습이나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그릇이 부서지고, 샘의 물을 뜨는 물동이가 깨지는 것 모두 생명이 사라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가치있는 것들이 끊어지고, 부서지고, 깨지는 것은 모두 죽음의 모습들입니다.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럼 전도서는 왜 이렇게 늙어가는 것과 죽는 것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 쉽게 망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어령 박사는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놓은 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목회자들에게 장례식장에는 빠짐없이 가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죽음은 사람들이 자주 망각하는 삶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망각한 사람은 세상의 거짓에 속아 자꾸 별것 아닌데도 욕심부리며,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죽음이라는 진실을 감쪽같이 감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죽음을 더 생생하게 묘사하며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히려 건강할 때, 젊었을 때 죽음을 기억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 때 삶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망각하며 살다가 죽음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죽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는 우리가 감춰뒀던 삶의 진실을 다시 끄집어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오히려 우리는 삶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 기억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껏 밖에 돌아다니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함께 식사하며 떠들어 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망각했던 작은 일상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마냥 끝이라면 이 짧은 인생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면됩니다.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그냥 다 하고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죽음 후 사람은 소멸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둘째,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13, 14절입니다.
할 말은 다 하였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은밀한 일을 다 심판하신다.
전도서는 청년의 때에 우리에게 많이 시도해보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불확실하니까 기회들을 붙잡아 원하는대로 도전해보고, 주어진 순간들을 누리라고 말합니다.
바로 앞장 11장 9절을 보면 ‘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하고 말합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젊음을 즐기라는 말입니다.
나이들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으니 힘과 능력이 있을 때 해보라는 것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나이가 들면 신체적 능력이 저하되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집니다.
저도 이제와서야 어릴적 해보지 않은 것들을 후회한 게 있습니다.
유럽에 있었을 때 어떻게든 좀 돌아다녀보고 할걸 너무 집과 학교만 다닌게 후회됩니다.
어릴적 공부하느라 가족들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도 후회되구요.
여러분도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언제 나이 먹은지 모르게 시간은 흘러가거든요.
그러나 전도서는 인생을 즐기라는 말에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하고 싶은거 다하되 모든 행동에는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자유가 하나님 앞에서 방종이 되지 않도록 한계를 지어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한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행한 일도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어릴적에 하나님을 믿는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리는 더많은 죄만 짓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즐길거 다 즐기고 죽기전에 하나님 믿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이 말은 너무 빨리 믿으면 세상에서 해보고 싶은 거 맘껏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다 보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하나님의 심판은 더 무거워집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기 힘들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이 많아지고, 인생의 짐들도 많아져 그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믿기 어렵습니다.
또한 인생의 가치관이 완전히 굳어져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마음 속에 잘 들어가질 않습니다.
주변의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십시오.
대부분 어린시절, 청년시절에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지, 나이들어서 주님의 제자가 되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 다 아십니다.
인생이 아무리 부조리하고, 예측하기 힘들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삶의 결과를 보시지 않습니다.
인생이 통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때로 악인이 성공할 수도 있고, 선한 사람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더 잘될 수도 있고, 믿는 사람이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의 성공여부로 우리를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은 좌우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즐기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분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찌르는 채찍 같고, 수집된 잠언은 잘 박힌 못과 같다. 이 모든 것은 모두 한 목자가 준 것이다.
여기서 지혜로운 사람의 말이란 결국 지혜의 진수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채찍과 같이 우리 삶의 방향을 잡아줍니다.
인생을 즐기며 살되, 방향만큼은 분명히 하고 살아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는 것이 삶의 가이드라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이정표입니다.
11절에서 말하는 목자란 하나님을 말합니다.
우리가 양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되십니다.
양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 그들을 때려서 옳은 길로 가게 하는 것이 목자의 막대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막대기, 채찍인 것입니다.
그래서 약간의 고통이 따르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잘 박힌 못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 깊이 박힌 못과 같아서 마음에 새겨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묵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겨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루를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넘쳐나는 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는 결코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단지 삶을 살아가는 기술, 처세술만 가르쳐줄 뿐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12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지적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만 더하마. 나의 아이들아, 조심하여라. 책은 아무리 읽어도 끝이 없고, 공부만 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한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과 지혜도 우리 삶에 유익하지만 너무 많이 배우려고 하다가는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우리 주위에 석사 박사가 넘쳐납니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래서 대형교회에서는 담임목사 뽑을 때 박사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민다고 합니다.
인터넷만 봐도 각종 정보가 넘쳐납니다.
청소기술, 연애 기술, 철학, 역사, 문학까지 정말 없는 지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요새 젊은 친구들은 책 안 보고 블로그나 유튜브 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줄 수 있지만 결코 우리를 옳은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지 못합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전도서를 마무리하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주신 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좋은 책, 영화, 그림, 연극, 음악, 자연 말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좋으면 좋을 수록 이런 것들은 누리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말씀과 기도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반은총만 누리다가 특별은총인 말씀과 기도에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은총뿐만 아니라 일반은총도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며칠전 제가 헨델의 메시아를 듣는데 지난번하고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음악을 잘 몰라 가사만 집중했었는데 이번에는 음악이 들렸습니다.
너무 아름다웠고, 음악의 선율이 제 마음에 평안을 주었습니다.
헨델의 메시아가 왜 3대 오라토리오에 들어가는 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지금 이순간,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즐기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디엠,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모리가 전도서에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에는 한가지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김혜자씨의 말로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러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눈이 부시게.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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