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스바냐에 관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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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스바냐 3:17(구약 1310쪽)
스바냐 3:17 NKRV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반갑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함께 하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제게는 여동생이 있어요. 여동생은 저와는 달리 결혼을 하고 현재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요. 달리 말하면 제게는 3명의 조카가 있다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최근에 태어난 셋째 조카는 아직 만나지 못했어요. 반면, 첫째와 둘째 조카는 올해 설명절까진 얼굴을 보았어요. 제가 알기론 첫째가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둘째가 그 보다 2-3살 어려요. 둘 다 여자아이고 아직은 저와의 관계가 대면대면하고 경계심을 품고도 있어요.
그래서 명절에 한 번씩 볼 때마다 흔쾌히 저에게 다가오진 못하고, 제 동생인 엄마의 권유에 의해 또는 동생의 남편인 제부의 권유에 의해 제 주변을 맴돌곤 해요. 사실 저도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조카들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진 않아요. 한편으로 왠 아저씨가 다가오는 것이 어린 조카들에겐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탐색을 하다가요.
갑자기 조카들이 모든 경계심을 풀고 저에게 달라붙는 순간이 있어요. 엄마인 제 동생이 삼촌인 저에게 가서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할 때에요. 그건 정말 마법같은 주문이어서 조카들은 언제 저를 경계 했는냐는 듯 저에게 달라붙어서는 나가자고 성화에요.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요. 몇 번 조카들이 왔을 때 편의점을 데려간 일이 있었어요. 그 기억들이 조카들에게는 아주 긍정적으로 남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기억을 되살리는 주문이 발동되면, 저의 조카들은 갑자기 저와 친해져 버려요.
저는 그러면 호구가 되어서, 조카들의 요구를 순순히 따라주곤 해요. 물론 저는 바보는 아니니까 조카들이 원하는 것은 제가 아님을 잘 알죠. 저는 철저히 이용당하는 것도 잘 알죠. 그런데도 조카들의 그와 같은 행동에 웃음기를 머금고 기꺼이 호구가 되어줍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저의 기쁨이고 조카들에게 감사한 점이죠. 아직까지는 편의점을 데려가는 것으로 충분히 친해질 수 있으니 말이죠.
이렇게요. 내가 손해볼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결코 손해라고 여기지 않고, 기쁨이 되는 순간이 여러분에겐 있었나요? 또 어떤 존재 자체가 여러분에게 행복감을 주었던 적이 있었나요?
최근에 또 저에게는 일 년에 한 두 번 보는 조카들 말고도 저에게 행복감을 주는 존재가 있어요. 아마 여러분도 그 존재를 만났을지 몰라요.
우리 교회에 자주 출몰하는 존재인데요. 그 존재는 바로 고양이 가족이에요. 언젠가부터 우리 교회 주변을 맴돌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요. 어느 날은 3마리 정도나 되는 새끼들을 데리고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저는 여전히 내향적인 사람이라 고양이들과도 철저히 거리두기를 시전하는데요. 다시 말해 섣불리 다가가지도 않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지도 않죠. 그런데 제가 교회와 집을 오가는 길에서 종종 출몰하던 녀석들이 언젠가부터는 우리 교회에 있는 놀이터 주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가 하면, 교회에 있는 화단쪽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우르르 몰려서하고 있어요.
그런데 특별히 먹이를 주거나, 한번 쓰다듬어 준 일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그 고양이 가족들을 보면, 묘한 행복감이 찾아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캣대디’를 자처할 생각은 없지만요. 그냥 그 기분 좋은 광경을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은 있어요.
이렇게 어떤 존재들은 때로 내게 손해를 끼치고 때로 내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음에도 묘한 감동과 기쁨이 되는 존재들이 있어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도 그와 같은 존재들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에요. 구약성경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 이른바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죠. 그 창조의 절정에 있었던 존재가 바로 인간이에요.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하나님은 자신의 대리자로 인간을 택하셨어요.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다스리도록 명령하셨어요.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에덴 동산이라는 낙원을 만들어주시까지 하셨어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기대와 달리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이른 바 죄의 길에 들어섰어요. 결국 하나님이 만든 첫 번째 사람, 아담과 하와는 낙원이었던 에덴 동산에 쫓겨나고 낙원 밖에서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배신 곧 죄에도 불구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할 길을 열어주셨죠. 성경의 여러 인물들 가령,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을 비롯한 인물들이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회복의 길을 걷던 이들이었어요. 가장 결정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게 하셨죠.
하지만, 인간의 어리석음 죄를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결국 하나님은 이를 바로잡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홍수의 심판을 비롯해서, 나라의 멸망과 포로생활에 따른 심판을 내리셨어요. 그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다시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도 하였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다보니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죄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멸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고 계세요.
왜 그럴까요? 우리는 그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다시 성경을 펴고 찾아서 읽어봅시다. 구약성경 스바냐 3장 17절의 말씀, 구약 1310쪽에 있어요.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스바냐 3:17 NKRV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말해주고 있어요. ‘그’인 하나님께서 ‘너’인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이지요. 짐작할 수 있나요? 앞서 저는 조카들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과 우리 교회에 출몰하는 고양이 가족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을 얘기했지만, 사실 그것에 비할 바 없이 큰 사랑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전히 배신하고 여전히 죄의 길에서 헤메는 우리를 인내하며 기다리신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사랑을 깨닫게 된다면, 여러분의 삶을 달라질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시고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하실 것을 약속해 주세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하는 거예요.
구약성경 스바냐가 쓰여질 당시에 시대는 이러했다고 해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앗수르 제국이라는 큰 나라에 위협다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실제로 앗수르 제국은 이스라엘의 반쪽나라인 북쪽왕국을 멸망시켰어요. 이스라엘의 남은 반쪽나라인 남쪽왕국은 앗수르 제국의 위협에 가까이 있었어요. 그러나 앗수르 제국의 위협도 오래가지 않아 사그라 들었어요. 앗수르 제국이 신흥세력인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하게 된 것이죠.
아마도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달았다면, 많은 것들이 변했을지 몰라요. 자신들을 위협하던 앗수르라는 거대한 제국도 하나님에 의해 한 순간에 멸망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고 더욱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 길을 걷게 돼요. 그리고 그 결과는 앗수르 제국을 다음에 등장한 바벨론 제국에 의해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하게 돼요.
그런데 스바냐는 그와 같은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고 있어요. 비록 사람들의 죄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나라가 멸망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그러니 다시 회복의 길을 여실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고 해요. 이들을 통해 새로운 싹이 자라고 하나님의 구원이 이들로 말미암아 이뤄질 것을 말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시고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말이지요. 그것이 우리 안에 확연히 다가올 때, 저는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라고 믿어요. 그리고 그러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을 믿어요.
오늘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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