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이루라

초신자의 질문(하나님의 의도)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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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ians 2:12 NKRV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으라는 뜻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Ephesians 2:8 NKRV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우리가 공들여서 우리의 노력을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빌립보서 말씀에서 바울의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마치 네 구원은 네 스스로 얻어야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에 정면 도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누구보다도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전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했던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전하셨던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려면 먼저 구원의 성격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구원을 말할 때에 구원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칭의, 성화, 영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칭의는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
즉 처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성화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성도들이 영화로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고, 우리의 구원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이렇게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이해하면 심각한 문제를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구원은 앞서 말했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구원을 ‘세 단계로 나누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단계로 나누게 되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이 없는 구원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영접기도를 하여 구원을 얻으면, 그 다음의 내 삶이 어떤지 상관없이 나는 무조건 구원을 얻는다는 식의 이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이해가 구원파가 말하는 구원입니다. 나는 몇날 몇시에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그 때 나는 구원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삶을 살든지 상관없이 나는 구원을 받았고, 나는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식입니다. 마치 화재 보험을 가입한 수준으로 구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진실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함을 얻고 완전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구원을 세단계로 나누어 칭의의 단계에 국한하여 이해함으로써,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이 없는 구원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 가르침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안타까운 일은 구원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이해가 오늘날 매우 팽배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성화에 대한 이해도 왜곡되게 합니다.
마치 칭의의 단계에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이제 성화의 단계에서는 ‘나의 노력’으로 부단히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완전히 율법주의적인 이해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삶은 절대로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성화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이며, 칭의와 마찬가지로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성화의 삶,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은 단순히 우리가 율법을 잘 이행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잘내고, 주일성수를 잘하고, 새벽기도하고, 술 담배 안하고 이런 것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 진정한 성화의 삶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행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신앙의 본질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또한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십자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성화의 삶에도 주님을 향한 믿음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온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의도를, 이 말씀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구원을 표현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표현하고, 또 우리가 현재 구원을 받아가고 있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앞으로 구원을 받을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구원을 세 가지 단계로 이해하기 보다, 세 가지 시재의 요소를 가진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즉, 구원은 칭의, 성화, 영화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칭의의 단계에서만 구원이 국한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삼각형에 세 변이 모두 있어야 삼각형인 것처럼, 세가지 요소가 다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구원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영접하여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은 것이 진짜라면,
오늘 우리는 구원 안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구원을 이루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의롭게 되었다면, 오늘 우리는 성화되고 있을 것입니다.
한번 받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를 성도의 견인이라고 하는데, 저 또한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 때 말하는 한번 받은 구원이 그냥 한번 영접기도 읊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교회 몇번 다녀본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예수님을 나의 진정한 주인으로 영접하는 진정한 구원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때로는 넘어지고 실수할지라도 주님 앞에 다시 나아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을 것입니다. 오늘도 기쁨으로 주님을 알기를 추구하며, 주님의 길을 따르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영접기도는 했고, 교회는 다녔었지만, 현재는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떠났다면, 그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었는가? 진정으로 구원을 받았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그 당시 교회에 속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가 영지주의의 이단으로 떠나 간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John 2:19 NKRV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쉽게 설명하면 그들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은 참다운 성도들이 아니었고, 그들이 나감으로써 그들이 참다운 성도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 아니다. 혹은 여기까지는 구원이고 이 선을 넘어가면 참다운 구원이 아니다라는 식의 논쟁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논쟁을 하기보다 우리는 가장 안전한 길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오늘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삶', 즉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오늘 본문 말씀을 말한 것입니다.
Philippians 2:12 NKRV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 구원의 가장 큰 핵심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구원은 단 한 마디로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교제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본질의 삶을 사는 것이 매일 매일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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