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민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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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민되기
전에 제가 컴퓨터 학원을 다닐 때 항상 강남역에서 내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놀라운 광경 하나를 목격했습니다.
한 사람이 교통방송 철탑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노동자분이신 거 같은데 거기에서 1년가까이 데모를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딱 한 사람만 올라갈 수 있는 25미터나 되는 정말 위험천만한 철탑이었습니다.
뉴스를 찾아보니 수년전 삼성에서 부당해고를 당해 이렇게 데모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살아가면서 부당한 일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편, 편법을 써서라도 자식들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려 합니다.
어떤 대기업은 직원들 자식들이 그 기업에 지원할 때 가산점을 받게 해서 사실상 직장 대물림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 졸업후 직장 면접볼 때 술을 잘 못 마신다는 이유로 최종면접에서 몇번 떨어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술을 잘 마신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로 왜곡된 이 세상은 자주 부조리하고 부당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시편 73편에서 시인은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보고 이렇게 한탄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악인들이 잘되는 부조리한 세상을 보고는 하마터면 믿음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본론]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철탑에 올라간 그 분처럼 정의를 위해 목숨걸고 싸워야 할까요?
아니면 조용히 입다물고 살아가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세상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전도서의 대답은 우리를 좀 허탈하게 만듭니다.
7장 15-16절입니다.
헛된 세월을 사는 동안에 나는 두 가지를 다 보았다. 의롭게 살다가 망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악한 채로 오래사는 악인도 있더라. 그러니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
전도서는 우리에게 너무 의롭게도 살지 말고, 너무 지혜롭게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악하고 미련하게 살라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너무 지나치게” 자기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거나,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서 의롭다고, 지혜롭다고 반드시 잘되는 것도 아니니, 의롭게 살려고 그것에 목숨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도서는 한술 더 떠서 오늘 말씀 2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나는 권한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여라.
불합리하거나 불공평한 일, 부조리한 일을 당하더라도 우선 권위자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공무원, 선생님, 직장 상사, 대통령 등등 이런 사람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전도서는 왜 우리에게 이런 권위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3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 우리가 권위자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2절)
2절입니다.
나는 권한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여라. 그것은 네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이기 때문이다.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과 같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권위자들을 세우신 것으로 내가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악한 왕일지라도 그 권위 자체는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세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위자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적 연결]
로마서 13장 1절도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연 질서를 세우시듯이, 사회의 질서 또한 세우십니다.
그래서 권위자들이 나라와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만약, 권위자들이 없다면 나라와 공동체는 큰 혼돈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그럼 만약 권위자들이 악한 짓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래도 복종해야 할까요?
당연히 아니라고 여러분들은 생각하실 거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구절은 일제시대때 일본에 항거하는 기독교인들을 강제로 복종시키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도 교회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권위자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권위자들 역시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들어, 아무리 부장이 힘이 있어도 부장 위에 회장이 있기에 부장에게 너무 설치지 말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권력의 한계를 설정해주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바로 앞전에 봤던 다니엘서를 기억해보십시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바벨론왕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했습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부당한 황제숭배에 저항하다가 불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또한 다니엘도 부당한 황제의 명령에 따르지 않아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둘다 권위자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한 것입니다.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된다면 저항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결코 저항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언어와 학문을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고 공무원되어 열심히 왕과 나라를 섬겼습니다.
그들은 결코 그 나라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권위자들의 부당한 명령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들에게 복종해야만 합니다.
[적용]
그런데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중에는 세상 법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맞춘다면서 신호위반을 죄책감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교회에 헌금을 낸다는 핑계로 국가에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금이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쓰인다며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코로나 초기에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지자 그것을 어기고 계속 모여서 예배드린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모두 하나님이 세운 권위자들을 무시하는 것이며 이는 곧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먼저 순종하고, 세상 법과 권위자에게도 복종해야만 합니다.
그럼 이렇게 권위자들에게 복종하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둘째, 우리가 권위자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5절)
5절입니다.
왕의 명령을 지키는 이는 안전하다.
왕의 명령은 세상 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것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권위자들은 원래 선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권위자들은 주어진 공권력을 통해 사회 정의를 지켜야 합니다.
법과 규칙이 잘 지켜져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만 합니다.
물론 일부 세금이 잘못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세금은 결국 사람들의 공공복리를 위해 사용됩니다.
심지어 북한의 악한 정부일지라도 이런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통해 이러한 유익들을 누리기 때문에 국가에 봉사도 해야만 합니다.
각종 국민의 의무사항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 헌법에 규정된 6대 의무가 무엇일까요?
국방, 납세, 교육, 근로,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4대의무이고, 여기에 공공복리에 적합한 재산권 행사, 환경보전이 더해져서 6대 의무가 됩니다.
내가 국가로부터 여러가지 유익을 누리기 때문에 나 또한 이런 의무들을 행해 국가에 봉사를 해야만 합니다.
또한 이렇게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때 복음전파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나라가 평안해지면 그만큼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전쟁이나 나라에 혼란이 자주 일어난다면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적 연결]
그래서 디모데전서 2장 2-4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즉 내가 속한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쓸 때 로마의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네로가 누굽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핍박한 황제인데도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네로가 나라를 올바로 통치해서 신앙생활과 복음전도 하는데 방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권위자들에게 복종하고 법과 질서를 잘 따르면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성실한 시민이 되는 것만으로도 복음전파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적용]
최근 우리나라는 극우, 극좌파들이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시위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시절에는 극우 단체들이 그런 일을 벌였습니다.
대통령을 욕하고, 탄핵해서 끄집어내리려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런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목사라는 것이 참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제 윤석열 대통령시절이 되자 극좌 단체들이 그런 일을 벌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위 현장에 절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나라의 권세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기에 존중해야만 합니다.
법과 질서를 잘 지키며 국민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만 합니다.
중대한 악행이 아니라면 공동체의 질서를 허물어 뜨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자 동시에 이 세상의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가 권위자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8절)
8절입니다.
바람을 다스려 그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자기가 죽을 날을 피하거나 연기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벗어날 사람이 없듯이, 악은 행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인간이 바람을 다스릴 수 없고, 자기 죽음을 피하거나 연기할 수 없고, 전쟁과 같은 재앙을 피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통제영역이 아닙니다.
그렇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듯, 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악은 나쁜 짓한 사람을 반드시 따라다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심판 역시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 심판받지 않을 수 있다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때와 방법으로 권위자들을 다루십니다.
6절입니다.
우리가 비록 장래 일을 몰라서 크게 고통을 당한다 해도,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고 알맞은 방법이 있다.
인간은 미래의 일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일의 알맞은 때와 방법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악한 권세자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때와 방법으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것을 믿고 신뢰하며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성경적 연결]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살아서 자신의 눈으로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경험했습니다.
그 화려한 문명과 권세를 자랑하던 바벨론이 결국 무너졌고, 페르시아가 새로운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세상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권력일지라도 저항하지 않고, 충실하게 성실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다니엘이 바벨론 제국이나 페르시아 제국을 전복시키려는 투쟁을 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좋은 머리로 유대인들을 이끌고 세력을 키워 황제를 죽이고 제국을 차지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제국들을 심판하시고 자신의 나라를 회복시켜주실 것을 신뢰했습니다.
[적용]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일이 결국 하나님의 통치가운데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약하고 못된 권위자일지라도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범위 안에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한 그 권위자가 어떤 한계선을 넘으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와 방법으로 그를 심판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는 말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의 과정을 통해 그 분의 때와 방법을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할 일을 정직하고 성실히 하면서도 그 결과와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좋은 권위자만 만나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좋지 않은 권위자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부당한 일을 지시하는 개떡같은 직장상사를 만나기도 하고, 불공평한 평가를 하는 선생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정당한 요구를 말하고, 저항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지혜롭게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지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1절에서 전도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인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지혜는 사람의 얼굴을 밝게 하고 굳은 표정을 바꾸어 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조리한 이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려면 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지혜자가 별로 없다며 전도자는 한탄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자신들의 지혜를 너무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지혜란 우리가 가진 지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지혜인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날마다 묵상하는 이유입니다.
그럴 때 오늘 말씀처럼 지혜가 우리의 얼굴을 밝게 하고 우리의 굳은 표정을 풀어줍니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지혜없는 자가 항상 찡그리고 있고, 표정이 굳어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십시오.
표정이 어떻습니까?
여유가 있고, 표정이 밝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 삶에 여유를 주며, 행복을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권위자들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지혜를 갖기 원하십니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권위는 무시되기 쉽습니다.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꼰대라는 말이 이런 사회 분위기를 잘 대변해줍니다.
왠만하면 꼰대스럽다고 말하잖아요.
저도 가끔 듣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권위는 곧 꼰대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권위자들을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하셨고, 그 권위자를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악한 권위자일지라도 일정부분 우리가 따라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때와 방법으로 그를 심판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 모두 기억하며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참된 지혜자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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