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즐기라고 주신 것 [Ecc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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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즐기라고 주신 것 [Eccl. 6]
‌Exegetical Idea: If a person is not able to enjoy what God gives him, it is a vanity.
Homiletical Idea: 인생의 누림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Exegetical Points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헤벨' 입니다.
부단한 수고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결코 자신의 마음의 갈망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전도자는 마음의 만족이 없는 인생 속에서 허무함을 발견합니다.
인생의 소유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소유를 진정으로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자가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이 세상의 헤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도서는 단순히 이 세상을 더 잘사는 지혜 교본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Biblical Theology and Systematic Theology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갈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인간은 무언가를 갈망하도록 지어졌다.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Good News [Thinking a passage in the light of Christ’s person and work]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해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을 허무한 삶의 자리에서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며,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갈망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인생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Insightful/Important Observation and Brief Interpretation while Meditating on
Ecclesiastes 6:1–2 NKRV
1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2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전도자는 계속해서 해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한다. 1절에서, 그는 또 다시 해 아래에서 발견하는 한 가지 악을 진술하는데, 그것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그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는데서도 오는 “헤벨” 이다. ESV 성경은 “불행”이라는 단어 대신 “evil” 이라는 단어로 번역 하였고, NET 는 “misfortune”으로 번역한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이다. 전도자에 의하면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그는 이미 소유하고 있다: rich, wealth, honor. 그러나, “yet” 이라는 접속사가 이 사람에 대한 전도자의 인식을 완전히 전환시킨다. 즉,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그가 바라는 많은 것을 허락하셨지만, 정작 이 모든 것들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셨다. 대신, 이 사람의 수고의 열매를 다른 사람이 즐긴다. 이런 이유로, 전도자는 이 또한 헤벨이며, 극심한 고통이라고 고백한다. [고통, 악 등 다양한 번역등이 등장한다]
Ecclesiastes 6:3–5 NKRV
3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4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5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Ecclesiastes 6:5 LEB
5 He has neither seen nor known the sun, yet he has more rest than him.
전도자는 3절에서 2절에 등장 하는 사람과는 또 다른 예를 제시한다. 이 사람은 많은 자녀를 출산하고 심지어 장수까지 한다. 그러나, 좋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마지막 죽음의 모습이 비참해 보인다. 이런 이유로, 전도자는 이 사람은 세상에 아무런 이유 없이 왔다가 어둠으로 사라지는 유산된 아이가 이 사람 보다 낫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전도자는 뱃속에 있는 아기를 어떤 존재로 이해하는 것일까? 그러나, 전도자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세지는 분명하다. 태 중에서 무명으로 잠깐 왔다가 사라지는 아기 보다 이 세상에서 장수하며 사는 사람의 인생이 비참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극명한 대조인가? 이 세상에서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가?
ESV 에서는 이 아기를 better off [형편이 더 나은] 로 이해하였고, NET 와 개역한글 성경은 “rest” , “평안" 이라는 단어로 번역한다. 한가지 독특한 점은 NET는 유산된 아기를 인칭 대명사로 칭하지 않고, “it” 으로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유는?
여기서 “rest” 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많은 자녀를 거느리고 장수한 사람 보다 더 많이 누린 평안이 무엇일까? NET는 이 평안은 노동, 불안, 빈곤으로 부터의 자유라고 해설한다. 빛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불안과 노동과 빈곤과 씨름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세상에는 정말로 “내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 인생들이 있을 것이다.
Ecclesiastes 6:6 NIV
6 even if he lives a thousand years twice over but fails to enjoy his prosperity. Do not all go to the same place?
전도자가 거듭해서 강조하는 가르침이 다시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을 “누리지 못하면" 그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모두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교수이든 의사이든, 인간은 모두 죽음이라는 운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성경 전체가 증거하는 또 다른 진리는 모든 사람의 마지막 운명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마지막이 예비되어 있다.
Ecclesiastes 6:7–9 NRSV
7 All human toil is for the mouth, yet the appetite is not satisfied. 8 For what advantage have the wise over fools? And what do the poor have who know how to conduct themselves before the living? 9 Better is the sight of the eyes than the wandering of desire; this also is vanity and a chasing after wind.
인간의 수고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함인데, 자신의 육체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함인데, 안타깝게도 인간의 욕구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인간의 수고로는 인간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복음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앞서 전도자는 재물을 쫓는 자는 재물로 만족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Eccl. 5:10]. 즉 인간이 추구하는 갈망은 스스로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 이 놀랍고 단순한 진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전도자가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마음이 늘 궁핍한 사람은 눈으로 만족하고 사는 사람보다 더 못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 의지하는 인생에 대해서 성경은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데, 전도자는 오히려 항상 뭔가를 쫓기 위해 마음이 쉬지 못하는 인생 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계속되는 갈망은 ‘헤벨'이다. 여기서도, 성경 전체의 빛 아래서 갈망 자체에 대해서 두 가지 진리를 연결할 수 있다. 해 아래에 세상에 집착하며 이 세상의 것만을 갈망하는 인생은 비참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 아래 살지만 현실을 넘어서 하늘을 바라보는 인생은 복되다. 성경은 이러한 경건한 갈망을 독려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이 시대야 말로 굶주린 인생들이 넘쳐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미디어는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더 갈망하게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해야 하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망각하도록 한다. 이런 점에서, 모두가 배고파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 아주 심각하게 굶주려 있는 것이다.
Ecclesiastes 6:10–12 ESV
10 Whatever has come to be has already been named, and it is known what man is, and that he is not able to dispute with one stronger than he. 11 The more words, the more vanity, and what is the advantage to man? 12 For who knows what is good for man while he lives the few days of his vain life, which he passes like a shadow? For who can tell man what will be after him under the sun?
11절에서 전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을 더해봤자 뭐하겠니? 헤벨만 더할 뿐인데?” 12절의 질문에 우리 모두 답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여기서, 전도자는 인간의 존재적 한계를 마주하고 있다. 어느 누가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꼭 알맞는 조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자신의 내일 운명도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앞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날 일을 알려줄 수 있을까?
Meditation
Application
1. 인생의 순간 순간을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 마음이 여전히 불안하다면, 쫓기고 있다면, 만족이 없다면,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의 동기와 갈망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3. 주어진 삶에 만족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Prayer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순간을 누리는 지혜를 허락하옵소서.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게 하시고, 다가올 미래를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게 하시며, 오늘 이 하루 동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이 하루를 맘껏 누리는 용기를 허락하옵소서. Praise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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