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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만으로 만족하는 백성

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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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수요기도회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십계명 마지막 시간입니다. 십계명 마지막 부분에 대해 말씀 들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고 은혜 받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 나라 백성은 말로써 사람을 살린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은 말로써 사람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 하지 말라고 하는 계명입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계명은 우선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우리는 결코 거짓말을 해선 안됩니다. 우리 입술은 복음과 찬송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우리 입술에 거짓이 담기면 거기에 있는 복음과 찬송도 거짓말과 같이 도매급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과 찬송의 일꾼답게 입술에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맨날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우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것까지 거짓말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말 근처도 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십계명의 해석은 딱 문자 하나에 얽매이는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영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웃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마라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는 자신의 이익과 더불어서 이웃을 낮춰서 그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이런 것은 법정에서 잘 일어나는 일입니다. 법정에서 이웃에 대해 사실이 아닌 증언을 하게 되면 법관이 그릇된 증언을 근거로 판단을 하게 되고 그 이웃은 사회에서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이 아홉 번째 계명은 세 번째 계명과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세 번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인데, 세 번째 계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볍게 여기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세 번째 계명과 아홉 번째 계명은 굉장히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계명은 하나님의 명예를 지켜드리는 문제이고 아홉 번째 계명은 이웃의 명예를 지키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처럼 아홉 번째 계명에서 말하듯이 이웃의 명예를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이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듯 이웃의 명예를 지켜야 합니다. 칼빈은 십계명 첫 번째 돌판이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두 번째 돌판이 이웃에 대한 계명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우리의 참된 부모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우리 육신의 부모를 사랑하는 계명으로 넘어가는 십계명의 가교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계명을 지키는 것과 이웃에 대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천양지차의 일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3계명에 말하듯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는 사람은 이웃의 명예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은 단순히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평판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평판에 문제가 생기면 굉장한 고통을 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에 있어서 진실해야 하고 또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적용) 말에 있어서 진실한 것은 어렵습니다. 거짓말 한 번 하면 정말 편리할 때가 많고 이익이 주어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말로써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한 번 내뱉으면 끝입니다. 한 번 내뱉은 한 문장을 수습하려면 수십 문장의 변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 수십 문장의 변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말은 내가 한 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길 때에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사람을 한 번 거치면 그 의미가 변색됩니다. 말이라는 것은 말을 한 상황과 맥락에 의해서 그 의미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제가 만약에 십 수 년 전에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그분 장례식 갔었는데 호상이었다. 천수를 누리고 가셨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여기까진 괜찮은데 어떤 사람이 만약에 김광준이라는 사람이 “장례식 가서 호상이라고 이야기 했다던데?” 이렇게 말을 옮깁니다. 그러면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장례식가서 호상이라고 하는 건 무례한 것 아니냐” 이렇게 되고 이 말이 한 번 더 넘어가면 김광준이라는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 됩니다. 만약에 이 시간에 설교를 듣다가 잠시 딴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면 김광준 무례하다 딱 이말만 기억했다가 “김광준 목사님이 무례하다더라” 이렇게 됩니다. 말이라는 것은 맥락이 있고 상황이 있기 때문에 그 말만 옮겨도 거짓 증언이 되고 문제가 되고 자칫하면 이웃을 죽이게 됩니다. 말이 또 다른 말을 낳고 어느새 괴물로 성장해서 계속 그 사람의 꼬리가 되어 일평생 사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에 있어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떤 지혜가 필요합니까? 위로부터 난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공부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야 얻어지는 지혜입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에 말씀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하지 않기 위해, 말로써 이웃을 살리기 위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면 말로써 사람을 살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늘 진실된 말을 해서 이웃의 신뢰를 얻게 해주시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 침묵하고 또 타인을 시기 질투하고 뒤에서 이야기하지 말고 다른 이를 높여주고 살려줄 수 있는 말을 하도록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2- 열 번째 계명은 십계명 전체를 정리한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열 번째 계명에 대한 것입니다.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마라는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보면 마치 팔계명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들은 팔계명은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이거랑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것이 어떤 차이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열 번째 계명은 아홉 번째 계명까지를 다 요약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인의 죄를 짓고 간음의 죄를 짓고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탐심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망이 자기 하나님이 되기에 이런 죄를 짓습니다. 자기 욕망에 따라 살면 욕망이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 네 가지도 다 어기게 됩니다. 열 번째 계명은 탐욕에 주의해서 율법을 어기는 삶을 살지 말 것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죄악의 뿌리인 탐욕의 실체를 밝히며 십계명을 요약합니다. 십계명 첫 번째 계명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은 십계명의 정신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훈대로 살아야 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계명은 십계명을 요약합니다. 탐욕에 주의해서 율법을 어기는 삶을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첫 번째 계명은 정신을 말하고 마지막 계명은 요약을 말하며 십계명 전체가 굉장히 유기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 열 번째 계명은 우리가 율법을 어기게끔 만들고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며 살게 하는 탐심을 드러내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이 탐심을 경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탐심은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고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율법을 받아서 이제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하는데 가나안의 종교는 다름 아닌 탐심을 자극하는 종교입니다. 가나안의 신 바알이나 아스다롯 같은 신들은 풍요를 관장하는 신입니다. 가나안 종교의 제의 의식에는 신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신들의 욕망을 자극해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게 해서 농사가 잘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종교에는 비전도 없고 윤리도 없고 그 어떤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신의 욕망을 자극해서 인간의 탐심을 이루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탐욕이 신격화 된 것이 곧 가나안 종교입니다. 이런 가나안 종교가 성황하고 있는 곳에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열 번째 계명 탐욕을 경계하는 교훈이 필요합니다.
(증명) 성경에서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 뛰어난 영성가를 한 열 명만 말해보라고 하면 다윗이 반드시 꼽힐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다윗이 일평생 했던 잘못중 가장 치명적인 잘못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 궁전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발견하게 되는데 다윗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에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내서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다윗이 결국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건 십계명을 몇 개를 어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열 번째 탐심을 극복하지 못해서 간음을 저지르고 살인을 저지르고 아내를 도둑질하고 밧세바가 자기 때문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으니 거짓말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다른 이의 안식을 빼앗았습니다. 열가지 계명을 다 어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바라봐서는 안 되는 여인을 바라본 결과 십계명의 모든 계명을 다 어겨버렸습니다. 열 번째 계명, 자신의 탐욕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의 요약이 탐욕이라는 것을 다윗의 범죄를 통해 알 수 있고 십계명을 지키는 핵심이 탐욕을 억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적용)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 탐욕을 억제해야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탐욕을 자극하는 것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굴러갑니까? 내가 가지고 싶은 어떤 것을 그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면 가질 수 있다는 욕망 때문에 자본주의가 굴러갑니다. 이 욕망이 없으면 자본주의가 성립이 안 됩니다. 아무도 뭐 사고 싶은 마음이 안 들고 석기시대처럼 자급자족하려고 하면 자본주의가 성립이 안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면 살 수 있다는 기대치와 욕망 때문에 자본주의가 굴러갑니다.
1992년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 될 때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참모였던 제임스 카빌입니다. 제임스 카빌이 만든 유명한 선거 문구가 있습니다. 아마 다 아실 겁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제임스 카빌은 ‘더 갖고 싶은 욕망’을 건드리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 단순한 문구는 빌 클린턴을 대통령에 당선 시켰습니다. 결국 사람은 물질의 문제 돈의 문제에서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해서 탐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우리는 탐욕을 극복하기에 앞서 이런 세상을 잘 이해해야 하고 이런 세상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우리의 죄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3- 십계명을 실천함으로써 탐심을 극복한다.
(전환문장)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은 우리는 십계명을 실천함으로써 탐심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십계명을 완전히 다 지킬 수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장로교의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는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82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이 처음에 좀 황당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45번째 문답부터 81번째 문답까지 십계명에 대해 계속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명해놓고는 이제 와서, 82번째 문답에 와서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뭐라고 하냐면 한낱 사람으로서는 이 땅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계명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고 합니다. 이때까지 십계명 지키라고 실컷 설명한 문답들은 뭐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83문에는 이런 질문과 답이 있습니다. 법을 어기는 죄가 모두 똑같이 악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떤 죄는 다른 죄보다 더 악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십계명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하다가 실수로 지은 죄랑 어차피 지키지 못할 십계명 내가 다 어겨버리겠다.라고 한 거는 다르다는 거예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죄를 지은 것이 죄질이 더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요리 문답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첫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 내가 다 지킬 수는 없어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더 심각한 죄라는 거예요. 내가 실수로 죄를 지었다고 해도 “나는 안되는 가보다.” 하지 말고 더 악한 길로 나가지 않도록 회개하고 다시 열심히 믿음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간단한 말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입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지만 에덴동산에서의 범죄사건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다 왜곡되어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간단한 용어로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화를 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십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통해 예수님 닮는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아기가 점점 자라서 어른의 형태가 되는 것처럼 매일 매일 조금씩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이 방법이 십계명인데 십계명을 다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도 순종하기 위해 애를 쓰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자라고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습니까? 그 답은 골고다 언덕에 있습니다. 우리를 율법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해지는 과정, 성화의 과정,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을 밟아나갑니다. 십계명을 실천해 나갑니다. 우리 자체는 부족하지만 삼위 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십계명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적용) 십계명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십계명을 통해 탐욕에 물든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일입니다. 세상은 돈으로, 물질로 그 외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우리의 탐심을 자극하지만 십계명에 순종하는 우리는 거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우리가 탐욕스럽게 사는가? 하고 질문하며 탐욕의 세상을 거절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십계명을 통해 탐욕이라는 거대한 세상에 저항하며 싸워 이깁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가 부딪히는 일입니다. 이 십계명에 순종하여 탐심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짓 증언하지 않습니다. 진실되게 살며 이웃의 명예를 보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탐욕을 극복하는 백성입니다. 이 탐욕을 극복하기 위해 십계명에 순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진실되고 살리는 말을 하는 성도, 십계명을 통해 탐욕을 극복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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