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02UNLIKELY
Disgust
0.02UNLIKELY
Fear
0.01UNLIKELY
Joy
0.05UNLIKELY
Sadness
0.04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01UNLIKELY
Confident
0.13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9LIKELY
Conscientiousness
0.07UNLIKELY
Extraversion
0.08UNLIKELY
Agreeableness
0.04UNLIKELY
Emotional Range
0.19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 .5
.5 - .6
.6 - .7
.7 - .8
.8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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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에 가득한 허무한 인생들의 모습 [Eccl.
4:1-16]
Exegetical Idea: 전도자는 억압 당하는 상황 속에서 위로자가 없는 인생,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고를 멈추지 못하는 인생, 끊임없이 부를 쌓기 위해 분투하는 홀로된 인생, 가난을 극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왕좌에서 결국 다음 세대에 의해 잊혀지게 될 왕의 운명을 살펴본 뒤에 이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확인한다.
Homiletical Idea: 당신이 고통 가운데 있으나 위로자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남과 끊임없이 경쟁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부를 쌓기만 하며 친구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결국 소외될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라면, 당신의 삶의 진정한 필요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Exegetical Points
죄로 인해서 망가진 이 세상에는 허무와 허무를 쫓는 인생들이 가득합니다.
많은 성취와 업적이 모든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아닙니다.
함께 울고 웃을 친구가 없는 나만 홀로 존재하는 인생은 진정으로 복된 삶이 아니라 결핍된 인생입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도 금새 사라질 일들입니다.
박수치던 사람들은 곧 떠나고 나만 홀로 남게 될 것입니다.
Biblical Theology and Systematic Theology
하나님은 인생을 단수로 두지 않으시고 복수로 살아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돈, 명예, 성공을 추구하는 삶 vs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
Good News [Thinking a passage in the light of Christ’s person and work]
하나님께서는 해 아래에서 허무와 다투고 있는 인생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도록 하십니다.
[예.
삭개오의 인생 - 홀로 부를 쌓았으나 친구가 없는 인]
예수 그리스도는 해 아래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억압 당하여 울고 있는 인생을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1절].
예수 그리스도는 외로운 인생에게 찾아오셔서 영원히 떠나지 않는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일시적이거나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구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Insightful and Important Observations
해 아래서 벌어지는 고통의 현실을 보며 전도자는 살아있는 자보다 죽은 자가 낫다고 고백하며, 이 둘 보다 더 나은 자는 이 세상에 나지 않은 자라고 말한다.
전도자의 관찰대로, 이 세상은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자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억압으로 인해 고통 받는 자들 가운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개역개정에는 “학대 받는 자"로 공동번역에는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으로 우리말 성경에는 “억압 받는 사람들” 로 번역되었다.
학대, 억압, 억울한 일 모두 공통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섬세한 의미를 따져보면 각각 다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1-3절에서, 전도자는 해 아래에 벌어지는 고통에 주목하며 이 부조리한 세상의 구조 속에서 또 다시 헛됨을 경험한다.
전도자는 사람들의 발전과 성취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발견한다.
즉,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고 발전하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기저에는 이웃을 향한 부러움과 시기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NET 는 4a를 더 적나라하게 번역한 것 같다.
“Surely it is nothing more than competition between one person and another.”
이 얼마나 예리한 관찰인가?
박사 공부를 위해 원서를 넣고 있는 상황 속에서 4절의 말씀이 내 마음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군가보다 뛰어나기 위해서 이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누군가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경쟁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러나, 전도자는 이 또한 허무하고 구름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전도자는 어리석은 사람의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은 게으른 삶의 태도를 연상시킨다 [cf.
NET “the fool folds his hands and does no work]” 손을 놀리는 자는 먹을 것이 없는데, 이러한 이유로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몸을 먹는다.
개역개정은 이를 “자기 몸을 축내는구나”라고 표현했다.
ESV 는 “so he has nothing to eat but his own flesh.”
전도자는 하나의 진리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 시키기 위해 두 사물이나 현상을 비교하는데, 6절에서 전도자는 쉼이 있는 한 손과 헛된 일을 위해서 고군 분투하는 두 손을 나란히 두고, 전자가 후자 보다 낫다고 말한다.
7-12 절에서 전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분명한다.
“Two people are better than one.”
8절에 묘사되는 인물은 자신이 가진 부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다.
그는 정작 불행한 삶을 지속하고 재산만 모으고 있는데, 전도자가 볼 때 이 사람은 참으로 헛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형제도 없다.
왜 이러한 고생을 하며 사느냐 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 세상에서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줄 친구가 없는 인생의 딱함을 서술한다.
즉, 인생을 살아가며 넘어짐을 경험할 때, 일으켜 세워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이다.
11절은 한 사람과 두 사람의 차이를 함께 잠을 자는 상황에 빗대어 설명한다.
혼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추위를 견딜 수 없지만, 둘은 서로 몸을 겹쳐서 몸을 녹일 수 있다.
실제로, 고난의 시간을 통과할 때 함께 견뎌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힘다.
배우자가 서로에게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친한 벗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
미국에 와서 지내며 최영환 목사님 가정을 통해서 함께함의 은혜를 누리는 것 같다.
목사님 가족들이 우리 가정에 오갈 때 마다 삶의 온도가 오르는 것 같다.
12절은 한명 보다는 두명이 강하고, 두명 보다는 세 명이 더 강함을 보여 준다.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이어서, 전도자는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젊은이와 늙고 어리석은 왕을 비교한다.
이 세상에서 불의한 억압을 목격하고 경험하느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고 고백한 전도자, 부족하더라도 만족한 삶이 많이 가졌으나 만족이 없는 삶 보다 낫다고 고백한 전도자, 홀로 고군분하며 모으기만 하는 것보다 두 사람으로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고백한 전도자! 13절에서 그는 조언을 받을 줄 모르는 늙고 어리석은 왕의 한계를 지적한다.
가난하더라도 지혜로운 젊은이로 살아가는 것이 낫다.
전도자의 고백대로 나이가 들수록, “take advice”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세월이 가며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만 의지하게 되면 더 이상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특히, 자신이 ‘왕’이라면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귀담아 듣고 자신의 삶에 비추기란 더욱 쉽지 않다.
14절에서는 지혜로운 젊은이가 나은 이유를 설명하는데, 비록 그가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그는 왕위에 오를 수 있다.
이 장면은 요셉의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전도자가 갑작스레 감옥과 왕좌를 언급하는데, 이는 극단적 대조를 보여준다.
감옥에 있던 사람 조차 왕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전도자는 이 또한 헛되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15절의 말씀대로, 왕이 다스릴 때 그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There was no end of all the people], 그가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기뻐하지 않는다.
실제로, 한 공동체의 리더로 사역을 할 때 많은 존경과 사랑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어느 누구도 큰 관심을 쏟지 않는다.
이것은 실제로 많은 지도자들이 경험하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이끌고 그 중심에 견고히 서 있기를 추구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이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This is a striving after wind.”
Brief Interpretation and Meditation
Application
1. 내가 현재 추구하고 있는 삶의 목표와 방식을 점검해보자.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2. 나의 개인적 성취에 사로잡혀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지 말자.
가족, 교회, 친구 등등등! [8절]
3. 가난이나 경험의 한계를 두려워하지 말고 타인의 조언을 마음으로 듣지 못함을 경계하자.
4. 해 아래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여 울고 있는 자들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1절]
5. 우리 주변에 홀로 있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진정한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인생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교회의 역할을 예수님처럼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Prayer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아침 전도서 4장을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참으로 허무한 일들이 가득함을 깨닫게 됩니다.
돈과 명예와 성취만을 쫓다가 더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는 인생들.
무엇보다 마음의 평안이 없이 항상 분투하는 인생들의 모습들.
하나님, 저 또한 매일 매일 분투하며 살아가는데 이 열심과 애씀이 무엇을 위함인지, 누구를 위함인지, 늘 깊이 생각하기 원합니다.
전도자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이 없는 인생에서 그 무슨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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