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의 여섯 가지 기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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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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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6:10(신약 8쪽)
마태복음 6:10 NKRV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반갑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함께 하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주기도문에 나오는 6개의 기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앞서 나눴던 얘기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주기도문에 첫 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소서’ 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가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달라는 기도로써,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나가야 함을 결단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나눴던 주기도문의 두 번째 기도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또는 통치자로 모시고 살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기도문의 핵심이 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가 주기도문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주기도문에 세 번째 기도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하소서’ 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앞선 기도의 연장선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이른바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달라는 혹은 바꾸겠다는 기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간단한 심리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드릴테니, 각자 속으로 답을 해보시고요. 그 풀이를 듣고 내 마음이 어떤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는 사막을 걷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에다가 각자 자신을 놓고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나는 다섯 마리의 동물들과 함께 사막을 걷는 중입니다. 그 동물들 각각은 이렇습니다. ‘사자, 말, 소, 양, 원숭이’ 입니다. 그러나 그 동물들 모두와 함께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습니다. 과연 나는 어떤 동물을 먼저 버리고 어떤 동물을 나중에 버릴 것입니까? 동물들 다시 말씀드립니다. 사자, 말, 소, 양, 원숭이입니다. 각자 마음에 정하셨지요.
이제 내가 선택한 동물들의 뜻하는 것을 해설합니다. 먼저 사자는 자존심을 뜻합니다. 가장 먼저 사자를 버린 것은 위기가 닥칠 때, 내가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이 자존심임을 말해줍니다. 반대로 가장 마지막에 사자를 버리는 것은 내가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자존심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원리로요 말은 가족을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버리느냐 가장 마지막에 버리느냐에 따라서 가족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는 직업을 말합니다. 그리고 양은 사랑하는 이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숭이는 친구를 말합니다.
어떤가요? 내가 생각한 것과 나의 마음 상태가 일치하나요? 물론 이건 전문적인 검사는 아니니깐 그냥 재미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심리테스트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삶의 목표나 우선순위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내가 어떤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내 삶의 모습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주기도문의 세 번째 기도는 우리의 삶에서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우리 기도의 우선순위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이뤄지게 해달라는 기도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주기도문의 앞선 기도와 마찬가지로 이 기도는 우리가 그렇게 기도해야만 이뤄지는 종류의 기도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하나님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일들 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이미 그와 같은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이미 거룩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오게 하시며, 그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살아가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선 주기도문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세 번째의 기도도 결국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로 결단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와 결단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그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사실 이것은 명확하게 답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을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부터 이기적인데, 하나님의 뜻은 그 이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명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감각적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관계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우리의 기호와 흥미에 맞아드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는 일은 우리에게 참으로 어렵고 어떤 의미에서는 거북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는 것입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주 자신감에 넘쳐 설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때로 대립과 충돌이 생기기도 합니다. 특히나 교회가 분열되어 싸울 때는 서로가 하나님의 뜻을 얘기합니다. 서로 대립되는 의견이 생겼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 안에 어떤 확신이 들어차더라도 진정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관계되어 있는지 신중하게 하나님께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씀에 비춰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 이익에 관계되어 있고 내 기분에 맞는 것이라면, 더욱더 의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어긋남이 없고 내 이익을 벗어나 있는 것인지 철저히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묻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면, 그것을 믿음에 따라 실행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결과를 기대한다거나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그것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내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는다면, 당시에는 어리석다고 여겨졌을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고, 그의 삶의 모든 기반을 버리고 정확히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이 ‘지시할 땅’은 과연 어디란 말입니까? 여기에는 예상되는 실패와 손해가 막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브라함이 당시의 지혜를 따르는 자였다면, 그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쫓아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 믿음에 따른 것으로 평가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확실한 보장이 있다면, 누가 그 길을 마다 하겠습니까?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없었고 오히려 손해에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위험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일이 믿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란 바로 이러한 믿음에 서는 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우리 삶에 우선순위로 목표로 설정한 인생들에게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기도문의 세 가지의 기도를 흔히 하나님 청원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기도의 주어가 하나님으로 되어 있고, 기도의 방향이 하나님께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내일부터 나눌 네 번째 기도에서 부터 여섯 번째 기도는 우리 청원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기도의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 입니다. 바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고 그 후에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기도의 우선순위입니다. 그것은 더 나아가 우리 신앙생활의 우선순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서 바로 이와 같은 삶을 살 것을 하나님께 결단하는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삶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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