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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 사4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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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사는게 너무 힘들다.” 살면서 이 말을 한번도 한 해본 사람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이 말을 친구한테 혹은 가족한테 혹은 연인한테 이야기합니다. 그럴 때 보통 어떻게 반응해 줍니까? “많이 힘들지?,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등의 말로 우리의 주변사람들은 그 힘들에 대하여 반응해 줍니다. 그 문제에 본질을 잘 건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짜피 해결해 줄 수 없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힘듦이 구조적인 문제,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을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인간에게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신적인 존재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그 앞에 내려 놓습니다. 이때 사람이 그 신적인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신적인 존재에 대한 지식에 따라서, 그 방향성이 달라집니다. 어떤이는 자신의 정성과 문제를 교환하려고 합니다. 그 정성이 신적인 존재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이는 자신의 재물과 문제를 교환하려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합당한 대가가 신적인 존재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도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를 보고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오랜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의해 압제당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서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이해, 즉 그들과 하나님과 맺은 그 언약에 기대어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 언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윗에게 해주셨던 언약입니다. 영원히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미 여러번 호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뀌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평이 제일 먼저 나오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길 즉 내가 겪고있는 인생길의 어려움을 모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가 당하고 있는 불의를 정의로 바꿀려고 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불평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그 언약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결혼한 후 첫 신혼집을 전세로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제가 그 전세금을 받아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어서 4개월 전에 계약을 맺은 집 주인 아저씨게 전화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자 나갈 때 전세금을 주겠다 라고 하던 주인 아저씨는 1개월전에 돌연 말을 바꾸어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지 전세금을 줄 수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는 이사를 가지 못했고 5개월동안 먼 곳에서 왔다갔다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이때 제가 집 주인 아저씨를 향해서 어떤 평가를 내렸겠습니까? “아, 저 사람은 지금 전세금을 줄 능력이 없구나 내가 뭐라해도 이 계약에 근거한 어떤 요구를 해도 저 사람은 돈이 없어서 못주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 아니었겠습니까? 그들이 고통가운데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계속해서 호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아, 하나님은 이 언약을 지킬 능력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평가와 상황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 초래한 결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지 못했고, 그 언약이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근거해 그들의 요구를 전달했지만 잘못된 언약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스스로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28절에서 하나님은 질문을 던지시면서 그들에게 선재해 있는 하나님에대한 지식을 끄집어 내십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라는 질문을 통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알려졌고 경험되어졌던 그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십니다. 그 첫 번째 속성은 바로 영원성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말씀하시면서 그 자신의 속성을 따라 스스로 영원하신 것 같이 그의 백성을 영원히 돌보실 것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 속성은 명철이 한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지혜와 계획을 인간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지금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스스로의 한이 없으심을 알려주심으로, 그 하나님의 길은 우리가 신뢰함으로 따라가야 할 길이지 우리가 판단할 길이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세 번째 속성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는 바벨론도 창조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그 모든 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나의 지혜와 이 세상에 대한 주권적 통치는 제한이 없고 너희의 이해를 훨씬 능가한다. 나는 실현하기로 결정한 무엇이든 행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것은 바로 그런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앎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앎이 바로 서게될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들고 하나님께 요구했던 그 언약에 있어서 그 언약을 먼저 위반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고통이 하나님의 무능력이 아니라 지산들의 죄악의 결과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다윗언약의 후반부에는 이렇 약속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입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예레미야 6:16-1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이제 하나님께 내세울 근거가 아무것도 없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백성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무엇입니까? 그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 되어주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이 있는 40장의 목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40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위로해 주십니다. 그 위로를 위하여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금 해야할 태도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30절의 말대로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가장 강하고 능력이 있는 상황도 한계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문제상황은 저 높이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입니다. 만약 돌파구가 없다면 계속되는 한계를 마주하면서 그 미래는 좌절과 절망 뿐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만이 그 문제에 해답이 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상황속에서 29절의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라는 말이 이렇게 들리는 듯합니다. “너희의 고통을 다 안다. 너희의 힘듬과 할수없음의 절망과 고통을 다 안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라”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십니다. 이것을 문법적으로 살펴본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띄엄띄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을 매일의 삶 가운데서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하여 능력이 없다. 우리를 모른척한다 라고 하는 그 순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위로해 주실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를 앙망해야 하는것입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소망에 찬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란 하난님을 인내하며 바라면서 그분의 구원의 능력을 믿고 확실하게 그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자입니다. 그런자는 이전과 다르게 됩니다. 새롭게 됩니다. 이 내힘, 내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상황을 해결하게 합니다. 그것을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다” 라고 합니다. 혹시 독수리가 나는 것을 보신분 계십니까? 독수리의 비행은 활공입니다. 독수리의 비행을 영상으로 보신다면 독수리는 날개를 펼치고 있지 공중에서 날개짓을 하지 않습니다. 독수리는 자신의 강한 날개 때문에 높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날개를 받쳐 주는 기류 때문에 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향한 절대의존의 상황에 있는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을 잘 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진정한 의미로 하나님에게 속한 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난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그런데 과거의 이스라엘의 모습과 오늘날 신자들의 기도가 조금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의 약속은 알았지만, 그 약속에 포함되어 있는 조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당당하게 찾아가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이 성취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문제만을 보았지, 자신의 현재상황과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기도를 올바른 신학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기반해서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기도를 할때에 하나님과 동등한 계약자의 입장에서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니까? 우리는 혹시 우리의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같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요구가 아니라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고백과 삶, 그리고 그에 따른 성취가 기도속에 담겨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확인을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사랑에 근거해서 그 언약하신 바를 따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기독교의 진리는 우리의 인생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 속에 우리의 인생을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give&take가 아닙니다. 계약을 통한 동등한 관계는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의 힘입어서 그의 이름으로 합니다. 어떤 고통이, 괴로움이, 혹은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앙망합시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것을 이겨냅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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