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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을 계산하라 눅14: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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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25-30
어떤일을 할때에 “비용이 얼마나 들까?”라고 자문해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집을 사거나, 가구를 사거나, 이사를 하거나 어떤 계획을 세울때도 우리는 비용을 계산해 봅니다. 그리고 비용을 계산해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계획적인 지출과 효과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일들은 항상 예산과 함께 그 일이 진행되곤 합니다. 이러한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곳이 또 한군데 있습니다. 바로 자기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얼마일까요? 진실로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번 같이 나누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2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내게 오는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왜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을 미워하라고 하셨을까? 그런데 여기서 번역된 미워하다 라는 단어는 적대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것에 무관심하고 다른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이와 비슷한 본문인 마태복음 10:37에서는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 혹은 하나님과 다른 무엇을 동등하게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말에 동의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위하여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26절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라는 것을 말한다면 27절은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지금이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릅시다! 라고 말한다면 아주 거룩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십자가는 고상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가 언제부터 고상해졌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을 그때부터 십자가는 고상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말하고 있는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십자가의 개념입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십자가는 수치와 낮아짐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절 26절과 27절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비유를 28-30절의 말씀을 통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28-30절입니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아무렇게나 아무희생없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실한 성도라면 누구나 거룩해 지고 싶은 열망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열망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비용을 계산해 봐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가는 그 길은 분명 즐거운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짊어진 후에야 면류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계산해 본다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드는 비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원받기를 바라는 사람이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지 세상속에서 기독교인 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 적당히 하면 됩니다. 자기부인이나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기독교의 구원이 이런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생명의 길을 묘사한 말씀도 바뀌어야 합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광대하니”로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고 말합니다. 원수들과 싸워야 합니다. 애굽을 떠나고, 광야를 지나야합니다. 십자가를 져야하고 경주를 해야 합니다. 편하게 누워서 천국으로 가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심한 순간부터 위대한 갈등이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르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제 그 사람에게는 전에는 없던 것들이 생겨납니다. 성경과 설교를 통해 그 사람의 양심이 깨어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따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영혼의 가치를 깨닫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합니다. 이제 그 사람의 죄는 값없이 용서함 받았고 성령의 은혜와 자비가 다 예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람에게는 여전히 계산해야 할 비용이 남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치루어야 할 대가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릇된 습관과 행실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악과 대적하고 싸워야 합니다. 이제 그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다스려야 합니다. 모든 죄를 원수로 여기고 거짓된 길을 미워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미워해야합니다. 이것은 힘듭니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럴때일수록 더욱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기도함으로, 그 사랑을 생각함으로 그 죄악과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악과 싸우고 그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안락함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합니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어려움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싫어합니다. 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달리면 걷고싶고 걸으면 서고싶고 서면 앉고싶고 앉으면 눕고싶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어려운 일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은 노력과 수고를 요하는 것은 무엇이나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이 없이는 얻는것도 없는 것이 우리의 영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안락함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합니다. 천로역정에는 천국으로 가는길을 쉽게 가기 위한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천국으로 가기위한 어려움과 고난보다는 천국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비용을 치르지 않고 유익만 얻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시도는 실패하게 됩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는 편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그 길을 걸어가며 예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치러야할 비용이 많습니다. 만약 우리가 배에 타고 있는데 배가 침몰하고 있다면 살기위해서 배 밖으로 짐을 던지는 것을 아까워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몸의 한 부분이 썩어들어가고 있어 몸 전체를 위협한다면 목숨을 구하기위해 어떤 수술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천국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나 기꺼이 포기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결국 면류관도 없는 기독교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모태신앙에 관한 이야기들을 흔히 듣습니다. 대부분은 부정적입니다. 어렸을때부터 복음의 형식과 이론에 익숙합니다. 왜 모태신앙입니까?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설교를 듣고 성경말씀을 들엇기 때문아닙니까? 그렇기에 누구보다 익숙합니다. 매주 듣는 복음의 가르침에 익숙합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가르침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왜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없이 신앙을 고백하면서 자랍니다. 신앙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천국갈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한치의 의문이나 망설임도 없이 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삶이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아예 모든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버리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독교 신앙에 따르는 희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용을 계산해 보라라는 가르침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갈 때 참된 기쁨과 내적인 평안을 얻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중에 우리를 넘어뜨리는 마귀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니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5-27)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위해서는 반드시 비용을 계산해 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우리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성경은 비용을 계산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계산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슨일을 할때에 이것이 손해인가 이익인가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에 따라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십자가 후에 따라오는 것은 면류관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길위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동행하여 주십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어 그 길을 걸어갑시다. 그리고 우리 다 함께 천국에서 그 면류관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나누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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