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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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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분들과 이렇게 인사하시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나이에 대한 특징을 들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지우학,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는 이립, 미혹 되지 않고 판단을 바르게 한다는 불혹, 하늘의 뜻을 두었다는 지천명 등으로 나이를 나눕니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나이가 있죠. 바로 40세를 뜻하는 불혹입니다. 지우학이나 이립, 지천명 같은 나이는 많이 말하지 않지만 불혹이라는 용어는 일상생활에서나 티비같은 매체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말이죠. 공자는 사람의 나이가 40세가 되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공자가 이야기한대로 나이가 40즈음이 되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까요? 저는 아직 그 나이에 이르지 못해서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역사책을 봐도 인터넷이나 티비나 하물며 유튜브를 보고 있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나이가 적건 많건 재물욕에 그리고 권력욕에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유혹에 넘어가서 실수를 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속에, 세상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세상이 주는 시험에 넘어가서 실수를 하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공자는 사람들에게 나이를 먹고 아는게 많아지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설파 했지만 그것은 공자가 원한 이상이었죠.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귀가 부여하는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시고 마귀를 물리치시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 속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마귀의 그 시험에 승리하시는가를 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귀가 주는 시험에 어떠한 태도로 대응해야 하는가를 알아보길 원합니다.
1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말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십니다. 그리고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성령에게 이끌리십니다. 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가운데 그늘 삼을 나무 하나도 여의치 않은 곳이죠. 또 이렇게 그늘 하나 없는 곳의 특징은 밤이 되면 엄청나게 춥죠. 그리고 그곳에서 금식을 하십니다. 그런 곳에서 저는 금식하면서 하룻 동안도 버티지 못합니다. 어떻게 단언할 수 있냐면, 군대에서 복무할 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겨울에 훈련을 했던 경험이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했다 뿐이지 먹긴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힘들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려 사십일을 그렇게 하십니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 마귀는 시험을 하려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묵묵히 그 시험에 모두 응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라는 단어는 ESV 성경이 번역하는 것처럼 Temptaion, 즉 유혹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마귀가 유혹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시험 받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령에 이끌리심을 받는 아무런 흠이 없으신 예수님이었어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런 의지할 것 없고 고난이 가득한 광야 같은 인생 속에서 마귀의 유혹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분명히 찾아옵니다. 마귀의 유혹의 대상은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또한 이러한 시험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생각해보고 질문해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시험에 묵묵히 모두 대응하셨습니다. 그 어떤 불평도 불만도 그 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마귀는 예수님에게 어떤 유혹을 하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셨을까요?
첫째로 3절에 누가복음 4:3
누가복음 4:3 NKRV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라고 했습니다. 이 시험은 굶주림 가운데 놓여 있던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배고픈 것은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여기 있는 돌보고 빵이 되게 해봐” 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점심, 저녁에 밥 한번 제대로 먹고자 하면 한 만원 정도는 우습게 넘죠? 만약 배달을 시켜서 나오는 배달비는 덤이구요. 물가가 너무 올라서 밥 한번 사먹기 두렵습니다. 만약 제가 밥 사먹을 돈도 없어서 며칠 째 쫄쫄 굶고 있는데 저에게 길가에 있는 돌멩이 줏어다가 맛있는 빵으로 만들 능력이 생긴다면 당연히 했을 거예요. 그 능력을 사용한 대가가 무엇이 되던 말건 그냥 바꿔서 먹고 나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실제로 그럴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비슷하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중에 일으키시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신명기 8:3 의 말씀으로 대응하십니다.
신명기 8:3 NKRV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가복음에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까지만 나와있지만, 마태복음에는 뒷 부분인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부분까지 인용하고 있습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의 굶주림과 힘듬 같은 일차원적인 고통을 파고듭니다. 그런것 있잖아요.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 같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것들, 기초적인 것들을 시험합니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의식주 부터 우리가 가지고 싶어하는 넓은 집, 맛있는 음식들, 좋은 옷들 모두가 포함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물질적인 것으로 규정되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관계적으로 규정되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의지하면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보내주심 같이 우리의 삶을 돌보실 것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누가복음 4:5-6
누가복음 4:5–6 NKRV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두 번째 시험은, 장소가 바뀝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끌고 올라갑니다. 동서남북이 잘 보일만큼 높은 곳으로 끌고 올라가서 나한테 절하기만 하면 이거 다 내꺼니까 다 주겠다.라고 합니다. 이 말에 진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마귀의 것도 아닐 뿐더러 줄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그것의 권리도 모두 하나님께 있습니다. 교묘한 거짓말로 꼬드기는 것입니다. 이 유혹은 그냥 절하라는 단순한 시험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의 이면은 성부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포기하라는 엄청난 제안입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1계명부터 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이루셔야 할 사역마저 모두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우리를 다스리셔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편하게 지금 얻으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이 제안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신명기 6:13
신명기 6:13 NKRV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을 인용하시면서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다고 대답하십니다. 이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고자 하는 거짓말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으로 받는 것을 선택하십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삶에 있어서 고통당하지 않는 길이나 쉬운 길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여러가지 권력에 대한, 권위에 대한 유혹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자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어떻게 우리가 권위를 얻으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권력과 권위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하지만 삶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은 모두,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뇌물을 주는 일, 직장에서 자신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떨어뜨리려고 이간질 하는 일, 가정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권위를 잡으려고 하는 일들 모두가 그러한 잘못된 지름길입니다.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으로 부터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복을 얻고자 마귀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복에 다다르는 방법을 잃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귀는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예수님을 데려갑니다. 이번에는 시편의 말씀까지 인용하며,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구약의 말씀까지 인용하면서 이야기하니까 얼핏 영적인 것으로 들리고, 맞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신명기 6:16 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마지막 방식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 편에 서서 무언가 하시게끔 하나님을 강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신지 아닌지 시험해보길 원하는 것이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약 저를 돌보신다면 이 상황이 이런 식이 되어야만 해요”. 이것은 믿음이라기 보단 하나님의 반응과 행동을 멋대로 단정지어버리고 규정해버리고 제한하는 행동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린 하나님과 영적인 내기를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반응해주세요! 라고 우리의 마음 속에선 이미 요즘말로 답정너, 그니까 답은 정했으니 너는 답해라 식으로 정해놓고 주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가보다 라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 나를 버리셨나? 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비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우리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 어떤 것보다 크신 하나님을 자신의 생각안에 가두면 안됩니다. 심지어 마귀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이러한 유혹을 합니다. 말씀을 바르게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셨던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이상하게 적용하여 공격하는 마귀에게 대하여 말씀의 바른 적용으로 대응하시고 물리치십니다.
마귀는 이 시험을 마친 후에 ‘잠시' 떠나갑니다. 잠시라는 말은 다시 오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삶에 같은 어려움은 다시 닥쳐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순간 동안에는 계속 찾아오겠죠. 어떨 때는 유혹에 져서 실패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준비하고 대비한다고 해서 언제나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첫째 사람이었던 아담은 마귀의 계략에 넘어가 이 세상의 죄가 들어오게 했습니다. 실패 중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오늘 본문의 무대인 광야에서 계속 실패합니다. 첫 번째 시험은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을 연상하게 하고, 두 번째 시험인 마귀를 경배하라는 시험은 출애굽기 32 장의 금송아지 사건을 연상하게 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하나님을 시험했던 맛사에서의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계속 실패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에게 받은 모든 시험을 통과하셨을 뿐더러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심으로 그 모든 실패와 상황을 역전시키십니다. 그 분은 여러 유혹들로 인한 실패에 눌려있는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것이 아닌 그 분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광야와 같습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거 없이 너무나도 광활한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언제나 마귀의 유혹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유혹이 있을 수도 있고 권력에 대한 유혹이 있을 수도 있고, 영적인 유혹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바르게 적용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 유혹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넘어선다고 그것은 끝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그 유혹들은 계속됩니다. 어쩔 때는 넘어질 수도 있겠지요. 그럴때마다 우리의 실패를 역전시키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일어나 주님을 의지하면서 이 광야같은 세상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이 시험들을 이겨 나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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