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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아니라 이상을 보는 사람들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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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 1-8절

Acts 8:1–8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인사 : 새생명축제 감사, 재초청집회 환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시 한 번 인사할까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던 것처럼 저도 대학6부 입니다. 대학6부 김신천 전도사입니다. 오늘 예닮공에 오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자, 우리 지난 주에 교회에 무슨 일이 있었죠? (새생명축제) 네, ‘새생명축제'가 있었죠. 우리 대학6부에도 많은 분들이 초청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서 박수로, 또 미소로,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혹시, 지난 주에 오셨던 분 계세요? 지난 주에 처음 오셨던 분? (있으면) 와 감사합니다. 우리 다시 한 번 환영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담아 박수하겠습니다. (박수)
그래서 오늘은 지난 주에 오셨던 태신자분들을 다시 초청하는 재초청집회로 드려지게 됩니다. 재초청 되신 분들, 그리고 우리 예닮공에서 신앙생활을 막 시작하신 분들 모두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더욱 분명히 알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예닮공 지체들은 계속해서 보고 있는,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욱 예수님 닮아가는 공동체로 세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서론 : 누구나 이상을 바라본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이상을 바라봅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볼까요? 우리 새돌 여러분 계시죠.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지 않을게요. ‘제가 새돌입니다’ 표시만 해주시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우리 새돌 여러분 대학에 들어갈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아니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볼까요?
자,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 전공공부랑 같이 취업준비도 해야하고 과제랑 시험이 계속돼서 때로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생활을 할 줄 알고 있었다’ 손 들어주시겠어요?
네 다음으로는,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 드라마 “치얼업” 처럼 선배나 동기와 청춘드라마 같은 생활을 하고 매일 다른 옷을 입는 신나는 생활을 할 줄 알았다' 손 들어주시겠어요?
자 마지막으로, ‘나는 이젠 그 시절이 기억이 안난다' 농담입니다. 저도 기억 나는데 다들 나실거라 생각해요.
저도 대학교 들어갈 땐 동기들하고 신나게 놀고 동기사랑 하면서 지내고, 전도도 많이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근데 막상 들어가니 다들 각자 미래를 준비하느라 제대로 교제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예가 있죠. 직장생활은 어떨 것 같으세요? 또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연애/결혼은 어떻습니까? 이상적인 행복한 모습만을 낙관하며 시작하지만 꼭 행복한 일들만 있지는 않죠. 야근도 있고, 연애하다보면 다툼도 있을 수 있고요. (아 근데 결혼은 진짜 행복합니다. 적어도 저는 행복합니다.)

서론과 본론 브릿지 :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마주한 초대교회 성도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의 이상적인 모델이 등장합니다. 바로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예닮공이 함께 봐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부흥케 하셨던 그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이전까지 성경은 반복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의 수가 ‘심히' 많아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수가 늘어나는 것 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는 각종 기사와 표적이 행해졌습니다. 병이 나았고요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교회가 예루살렘 안에서 영광을 누리고, 그 교회의 성도들 곧 그리스도인들은 칭찬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신앙생활 아닌가요?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면 다들 나를 좋게 봐주고, 나를 더 정직한 사람으로 믿어주는 모습 말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어떤 일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1절을 다시 볼까요?
사도행전 8:1 (NKRV)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교회를 향한 첫 박해를 마주하고, 이로 인해 신앙 공동체가 산산조각 나는 현실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소망을 잃은 처참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예닮공 여러분, 진주가, 진흙 가득하고 상처 많은 조개 속에서 아름답게 생겨나듯 오늘 본문 가운데도 우리에게 놀라운 도전을 주는 하나님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누는 말씀을 통해, 비참한 현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고, 왜 그런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를 깨달으며 하나님 안에서 더욱 성숙한 공동체로 세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본론1 : 스데반의 죽음, 예수님의 죽음과의 유사한 서술

먼저 오늘 본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의 시작에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바로 스데반 집사입니다.
여러분 2주 전에 우리 기호 목사님께서 하셨던 설교 기억하세요? ‘파도를 넘는 사람들’이었죠. 그때 사도행전 6 장에서 ‘집사’를 세웠습니다. 일곱 집사 중에 한 명이 ‘스데반’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7 장 전체에 거쳐 유대인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지요? 함께 사도행전 7 장 57절, 58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Acts 7:57–58 NKRV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스데반 집사는 말씀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7 장을 살펴보면 우리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스데반 집사의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과 유사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7장 59절, 6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Acts 7:59–60 NKRV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과 본래 한 권이었던 누가복음의 23장을 보면 예수님도 동일하게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말씀하시고, 또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영혼을 의탁합니다. 또한 방금 읽은 말씀에 나와 있듯이 스데반은 돌로 맞아 죽었습니다. 이는 당시 처벌 문화에 따라 그의 죄목이 예수님과 같은 ‘신성모독’임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과 스데반의 죽음을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와 스데반의 죽음 이후를 대조하기 위함입니다.

본론2 : 예수님의 죽음 이후의 제자, 스데반의 죽음 이후의 성도의 차이

먼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7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24:17 b (NKRV)
…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크게 낙심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시자 그들은 자신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왜일까요? 자신의 소망이었던 예수님께서 죽임 당하시는 모습을 본 뒤로 그들은 더이상 삶의 목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스데반이 죽은 뒤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가진 것을 거리낌 없이 나누고 통용하며 함께 기도하고 생활했던 공동체가 큰 박해로 인해 하루 아침에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낙심됐을겁니다. 무기력했겠죠.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삶의 목표를 잃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오늘 본문 4절 말씀과 8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Acts 8:4 NKRV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Acts 8:8 NKRV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놀랍게도 그들이 보였던 반응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이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비록 당시 큰 박해가 있었다고 하지만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마리아에서 잠시 머물다가 조심히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면 됐습니다. 또한 상식적으로 예루살렘을 떠났다면 도망 갈 곳을 정해서 가기 마련이겠죠.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루’ 다녔고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심지어 그 결과 그들이 가는 곳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앞서 살펴본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예루살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 모두 유사하게 묘사된 절망적인 사건을 동일하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서로의 반응은 이토록 다른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이 죽임 당하신 그 때와 달리 오늘 본문 속 예루살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행전_1장에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사도행전_1장 4절, 5절 말씀입니다.
Acts 1:4–5 NKRV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약속하셨죠? 성령 세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령은 사도행전 2장을 통해 약속하신 그대로 사도들과 무리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말씀의 성취를 경험한 것이죠. 그들은 ‘아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반드시 성취 되는구나’, ‘아 예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지겠구나’ 라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죽임 당하셨을 때 제자들이 보였던 반응을 기억하시죠? 그들의 반응은 자신들의 소망인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삶의 목적을 잃은 탓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그리스도인들은 왜 스데반의 죽음 이후에도 삶의 목적을 잃지 않고 “사마리아와 유대를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죠?
바로 그들은 스데반에 소망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나 교회, 혹은 교회 공동체의 좋은 분위기 등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에 소망을 둔 것이죠. 그 결과 큰 박해가 찾아 와도 소망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박해가 찾아온다고 흔들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예닮공 여러분, 여러분은 소망을 어디에 두고 계신가요? 예수님을 잃었던 제자들의 모습처럼 누군가에게 소망을 두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여러분의 소망이 사람이나 모임에 있기보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 약속에 소망을 두어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도 흔들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론3 : 그 이유, 다시 오실 예수를 확신했던 그들

그렇다면 본문 속의 그리스도인들이 붙잡았던 약속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이 약속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받았던 그리스도인들은 그 당시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또 다른 약속을 항상 기억했을 것입니다. 함께 사도행전_1장 9절부터 11절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Acts 1:9–11 NKRV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하나님의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어떤 약속을 주었습니까?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 바로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큰 박해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는 와중에도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들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니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도 오실거야' 하는 확신 말이죠.
이 믿음은 예루살렘 교회 뿐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성경과 역사 속에 등장하는 기독교를 향한 모든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잃지 않았던 이유가 됩니다.
오늘 교회와 우리 예닮공에 처음 오신 분이 아니시라면, 교회에서 생활하면서 ‘마라나 타’라는 표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뜻이 무엇이죠?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또한 성경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_22장 20절 말씀입니다.
Revelation 22:20 NKRV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예루살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소망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어려움과 핍박, 고난이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마다 이 약속은 늘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약속이요 소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끝이 끝이 아닌게 되는 것이요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닌게 되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아 교회 공동체가 산산조각이 났음에도 그들에게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이리저리 정처 없이 도망가는 중에도 그들에게는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사울이라는 인물은 예수 믿는 이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스데반이라는 리더를 죽이면 그리스도인들이 전멸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들에게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가는 곳마다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큰 박해를 받아 흩어진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큰 기쁨을 일으켰습니다. 그렇죠.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믿는 이들이 일으키는 변화죠.

결론 : 비참함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행복한 그리스도인

결국, 바로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이상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비참한 현실 가운데 있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로 올려져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들, 현실이 아니라 이상을 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이죠. 그래서 이상을 보는 사람들 모두는 어떤 현실 가운데서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예닮공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생의 끝을 끝이라 생각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내 인생은 끝났다고, 이것을 못 이루면 끝날거라고, 이것에 실패하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끝은 진정한 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낙심하지 말고 기뻐하십시오. 낙심한 이를 세워주십시오. 소망 없는 자를 위로해주십시오. 그리고 복음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진정한 위로요 진정한 소망이신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세요. 그래서 오늘 본문 8절 말씀처럼 그 성읍에, 여러분이 계신 그 모든 곳에 기쁨이 넘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공동체에 처음 오신 여러분, 혹은 지난주에 이어서 다시 초청돼서 오신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을 이곳으로 인도한 친구,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들이 자신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더욱 돌보는 이유이고, 요즘 같이 기독교를 안 좋게만 보는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기 신앙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진심으로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이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적용 : 결신, 훈련, 어부동(기쁨이 넘치게)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믿는 하나님을 여러분도 오늘 믿기로 결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믿기지 않으신다면 알아가 보기로 결심하셨으면 좋곘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어떤 현실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약속을 붙드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이상을 보는 사람드르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예닮공 여러분은 GBS에서, 제자훈련을 통해서 우리가 가진 소망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히 알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보다도 겨울에는 어부동 단기선교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그리스도인처럼 그곳을 두루 다니며, 큰 기쁨이 있도록 함께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찬양 : 행복)

우리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하기를 원하는데요. ‘행복’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가 모두 현실 가운데서도 이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고백처럼 쓰여있습니다.
특히 찬양의 후렴을 여러분께 읽어드리고 찬양하기를 원하는데요.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사랑하는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은요, 위기가 닥칠 때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합니다. ‘꿈 깨’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꿈이 아닙니다. 우리 영원한 소망이십니다. 그야말로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담아 우리의 행복을 함께 고백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제목]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는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선물을 날마다 우리 마음에 품고 어디서나 큰 기쁨을 나눠주는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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