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시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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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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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시100:1~5)
감사절만 되면 감사에 대한 찬송, 감사 설교(할 것도 없다), 억지로 쥐어 짜내어서 감사를 이끌어내는 것을 봄. 심리학적 감사의 효능에 집중. 더 행복한 감정, 건강한 몸, 더 나은 나(의사소통, 대인관계가 깊어짐, 생각이 유연,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신경회로가 늘어 점점 기뻐짐, 긴장과 불안 감소)가 됨.
그러나 감사하려 해도, 딱히 감사할 일이 없다. 감사에 대한 기준이 높으면 감사가 안된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함. 감사란 무엇인가? 심리학의 감사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감사의 차이? 감사에 대한 오해 세 가지. 첫째, 일시적 감정은 진정한 감사가 아님. 날씨가 화창해서 감사하는 것은 ‘느낌’에 가깝다. ‘느낌’에 근거한 일시적 감정은 금방 사라짐. 둘째, 환경에 지배를 받는 감사 “~ 때문에 감사”. <지하철 여인을 보고 저 여인이 내 아내가 아님을 감사한 것은 환경이나 해석을 매개로 하는 감사. 좋은생각, 긍정적인 삶의 양식 수준. 셋째는 상대적 감사.“~아니기 때문에 감사” 소아병동에 가면 아픈 아이들이 많다. 우리아이는 그래도 잘 크니까 감사, 이것은 상대적 감사. 가치가 있지만 절대적 감사는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환경과 감정과 의지를 뛰어넘는 감사가 무엇인가?
시편 100편은 감사의 노래. 주제가 감사. 신약에서는 더 이상 성전에서 예배드리지 않음. 예배당에서 드림. 그러나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는 구약의 성소를 향해야 함. 구약의 성소를 향한 간절한 자세를 가진 사람의 행동이 1~2절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으로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 지어다. 구약시대 예배는 성전 깊은 곳에서 예배드리는 사람, 밖에서 드리는 사람, 뜰, 마당, 성소, 지성소. 다 함께 예배를 드리지만 각자 감격과 기쁨의 자세로 나와야 함.
항상 예배드리는 사람의 자리가 비슷함. 예배의 자리가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거리를 나타낼까? 일리가 있음. 간절할수록 앞자리로 나오려고 한다. 그러나 자리라는 물리적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나가느냐? 거리보다는 자세의 문제. 기쁨과 찬송.
억지로 감사가 되나? 중요한 동사 하나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깊은 찬송과 기쁨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를 기록 3절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언제 진정한 기쁨과 찬송이 내 안에서 나오는가? 상황, 감정, 비교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절대적 기쁨과 절대적 안정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알 때. <알다>라는 동사는 지적인 앎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인격적인 앎을 말함. 부부의 성적 친밀감 “너희가 나를 모른다”
감사하기가 힘들다. 좋은 일은 잘 안 알림. 다 내 탓인 것 같다. 예배당에 앉아서 기도. “너도 나만 바라보고 성도들도 나만 바라보게 만들어라” “너는 약하지만 내가 강하다.”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하나님, 한숨과 비참함을 아시는 하나님, 고통과 서러움을 아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 때 죽음의 공포에서 평안을 얻게 됨. 수술을 하러 갈 때 몸이 연약해 질 때 죽음의 공포.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보는 것은 아주 부분적인 것. 그 뒤에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계획과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하늘에 우리는 땅에. 보이지 않지만 신뢰하는 것.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고 나는 양이므로. 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 때(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 그의 양) 두려움이 사라지고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는 기쁨과 찬송이 나옴. 그때 나오는 반응이 먼저 감사. 감사가 동일 시간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믿음안에서 미래에 일어날 감사가 현재에 이루어지는 것.
육신적 연약함과 한계. 그것이 축복이었다. 비교인 가정에서 태어남.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것이 축복. 과거의 상처나 아픔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면 찬송과 기쁨으로 바뀐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으면 일이 되지 않아도 깊은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수능예시) 그런 평안이 여러분에게 임하기 바란다. 기쁨과 찬송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온 자들은 어디에 서게 되나? 마지막 관문. 지성소 문. 이 문까지 열려야 하나님을 만나는 것.
구약시대에 지성소로 들어가려면 어린양의 피로 죄를 씻은 다음에만 들어갈 수 있음. 그래서 제사장들이 어린양을 잡아서 들어갔다. ‘보혈을 지나’라는 찬양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자세를 말함. 그러나 이제는 양의 피가 필요 없다. 예수의 피로 지성소에 들어감. 이제는 예수의 피로 하나님의 지성소 깊은 곳으로 들어감. 그런데 하나님의 지성소에 문은 이것만 가지고 열리지 않는다. 자동문 위에 센서에 찍혀야 문이 열리는데 하나가 더 있음.
4절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감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마음이 씻긴 사람이어야 하고 그 사람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지성소 문 앞에 설 때 하나님 앞으로 들어가는 문은 열린다. 여기 다 같은 장소에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의 거리는 다르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구경꾼으로 와 있는 사람도 있음. 문 밖에 있는 사람들. 문이 안열리는 이유 센서에 찍히지 않았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문제와 한계, 절망은 어떻게 열리는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할 때 열림. 그래서 시인도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도 이렇게 나아가자. 짜증내고 성질낼수록 이 문은 안열린다. 오래 지속될수록 문은 오래 닫혀 있다. 우리의 영혼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이 감사. 감사하는 자에게 항상 하나님이 지성소의 문을 여신다.
닉 부이치치. 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 키울수록 염려와 근심. 15살 때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음. 이런 실수를 저지른 하나님을 용서할 수 없음. 자살을 3번 시도. 이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천지를 창조한 신이라면 내 팔 다리도 다시 만들 수 있는 신이라는 인식이 생겨남. 조금씩 일어서니까 절망속에서 자신이 한걸음 일어날 때 자신을 보는 사람은 백 걸음, 천걸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인기 강사가 됨.
23살 때 캘리포니아 간증 강사 초대. 자기와 똑같은 아이를 번쩍 들어올림. 공감이 시작됨. 그때 들리는 목소리. “닉, 너는 내가 너의 없는 팔 다리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을 통해서 기적을 만들것이라고 생각했지? 없는 부분을 창조해서 기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의 모습 전체가 다니엘에게 미라클(기적)이다!” 너의 전 존재가 기적이 되게 하겠다. 빌리그레이엄 이후에 최대의 전도자. 이게 진짜 복음. 이것이 진짜 감사.
상대적 감사, 느낌에 의한 감사, 의지에 의한 감사는 심리학. 이것에 영향을 받아서 성공한 사람만 간증하고 앞에 세운다. 이것이 기독교 승리주의. 이런 설교나 간증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보잘것 없다는 메시지를 깔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승리주의적 기독교는 위험하다. 유명한 의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CEO가 되어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용하셨다는 메시지는 그 뒤 수많은 사람에게 더 깊은 절망을 주는 것. 장미란 선수 탈락했을 때 기도가 더 가치가 있음.
그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하나님으로 인도하셔서 나를 어디로 인도하셨는가? 심판에서 구원받는 자리까지 인도하심. 포기하지 않고 인도하심. 이것이 인격적, 경험적으로 깨달아 질 때 우리는 상황과 환경, 느낌에 상관없이 감격하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 결국 절대적 감사란 무엇인가? 구원을 거저 받았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태도. 헤세드.
5절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이셔서 우리를 살리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육신을 입고 기어이 나에게 오신 하나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내 삶 전체가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덮고 있다. 기억하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즐거웠던 일, 무엇을 먹었는가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 내 영혼이 가장 끔찍 했던 순간, 말할 수 없이 어려웠던 일, 그 순간을 통과할 때 고비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를 인도하셨다는 사실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알라. 상황과 상관없이 확신과 감사와 찬송이 터저나오고 보혈로 적셔진 우리에게 인자와 성실하심이 경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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