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야곱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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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화는 시작되었다 2. 내일이 아닌 오늘 3. 나를 인정하라 4. 변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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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시작되었다.

오늘 함께 나눌 본문은 최소 3번 이상은 들어보셨을 내용입니다.
여러분에게 야곱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우리가 아는 야곱은 남을 속이는 것에 특출난 은사가 있었고,
자신의 위에 있는 사람의 뒷목을 잡아 당겨 넘어뜨리고 그 사람을 밟고 일어나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관점에서 야곱은 남을 속이는데 일인자입니다. 누군가를 속이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싹 빼오는데 진짜 특출났던 야곱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기꾼을 만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내들의 아버지이자 삼촌인 라반입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야곱이 더 사기꾼으로 성장해서 라반을 넘어서고 고향으로 돌아가긴 했습니다만, 성장 할 때까지 삼촌 라반의 집에서 사는 동안 내내 속고 또 속고 또 속았어요.
20년동안 밀리던 그가 한방을 크게 날리고 모든 것들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죠.
분노한 삼촌과 그 아들들이 쫓아와서 말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승기를 잡은 야곱이 말싸움까지 이겨버리죠.
이제 정말 완전한 승리를 챙쥐한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형 에서였어요.
야곱이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여러분 20년 전에 사건이 잘 생각이 나시나요? 큰 사건들은 기억이 날 수 있겠지만 작은 사건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거에요. 그리고 20년이라는 시간은 안좋았던 기억들도 미화되어 좋은 것으로 남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죠.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동생이 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 또 그 기억들이 미화되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이상하게도 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속았던 분노가 더 강해졌어요.
자신이 받아야 할 모든 축복을 빼았겼다는 것과 자신의 꼬인 인생의 모든 원망을 야곱에게 하고 있었어요.
20년동안 에서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해요. 그런데 부모님이 정말 싫어했어요.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는 것 때문에 정말 너무 싫어하니까 에서가 같은 민족이랑 한번 더 결혼을 해요.
결혼하는 대상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또 다른 아들이자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 이스마엘의 딸이었어요.
이방 여인과 결혼해서 부모님이 싫어했으니까 이제 같은 민족과 결혼하면 부모님이 좋아할 줄 알았던 것이죠.
부모님이 자기를 돌아봐주고 잘했다! 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부모님이 또 싫어하는거에요. 왜 싫어했을까요?
에서가 결혼 한 여자가 이스마엘의 딸이었거든요.
아버지 이삭을 놀리고 괴롭히다 쫓겨난, 아버지와 사이고 좋지 않은 이스마엘. 배다른 형제 이스마엘의 딸을 하필 에서가 데려온 것이죠.
에서는 계속 실수만 하며 살았어요.
부모님 눈에 들고 싶어서 발버둥은 치는데 그럴수록 관계만 더 악하되어 가는거에요. 부모님의 사랑은커녕 눈길조차 받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죠.
집에서는 천덕꾸러기였지만, 집 밖에서는 굉장히 인정받는 리더가 에서였어요.
굉장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타고난 사냥꾼. 타고난 카리스마가 그에게 있었어요.
분가해서 나와서 나라를 하나 세워요.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정말 굉장히 많았어요.
밖에서는 인정받고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데 집에만 오면 주눅이 드는거에요. 뭘 해도 부모님이 쳐다도 안 봐요. 열 받지 않겠어요? 이 열. 분노를 풀어낼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그 분노를 풀 대상이 바로 야곱이었던거에요.
그래서 20년이 지났음에도 그 때의 기억들이 미화되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이죠.
‘내가 부모님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야곱 때문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그에게 한 소식이 들려와요.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에서는 너무 기뻤을 거에요. 야곱에게 복수만 하면 자신을 눌러왔던 것에서 해방이 되는거잖아요. 그래서 에서는 자신을 짓누르는 그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무려 400명이나 데리고 야곱의 고향 귀환을 맞이하러 나가요. 400명은 정말 엄청난 숫자입니다.
에서가 한 나라를 세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근거가 이 400명입니다. 한 나라의 군대 숫자가 400명이었거든요.
야곱의 귀향을 환영하기 위해 400명이나 되는 숫자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전쟁을 치를만큼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야곱은 진퇴양난이에요. 앞으로 나아가자니 400명의 군대가 기다리고 있고 뒤에는 자기가 한방 크게 치고 나온 라반이 기다리고 있어요.
자신의 지혜와 생각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야곱이었어요.
어떤 상황에도 묘수를 생각해서 원하는 것을 다 이루고 빠져나왔던 미꾸라지 같았던 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거에요.
지금까지 자기 맘대로 원하던데로 다 이루어왔는데 이제는 진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거죠.
정말 답답했던 야곱은 모두가 자는 그 밤에 일어나 얍복강을 다시 건너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해요.
야곱이 얍복을 건넜어요. 야곱. 얍복 좀 비슷하지 않아요? 성경은 이름을 통해 언어유희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얍복이라는 이 이름은 야곱이 이제부터 여기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를 보여주는 이름이에요.
얍복의 뜻은 ‘그가 씨름하다'거든요.
도대체 누가 강의 이름을 씨름하는 강이라 지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강의 이름을 통해 야곱이 이제 이 강에서 씨름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거죠.
얍복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국경선이에요.
약속의 땅에서 이루어질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 은혜를 누리려면 하나님 앞에 너의 인생을 놓고 씨름해야 한다. 라는 것을 얍복이라는 단어 하나가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죠.
평생 남을 속이고 뒷목 움켜쥐고 잡아 당겨서 넘어뜨리고 밟고 일어서는 것에 익숙했던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축복을 정말 받기 위해선 이 얍복에서 “모든 지난 행동들을 돌아보고 내려놓는 씨름을 해야 한다!” 라고 말해주고 있는거에요.
야곱은 이 국경선 앞에서 하나님을 찾고 나를 내려놓는 씨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야곱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지만요.
저와 여러분이 정말 새롭게 시작하고 또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후퇴하지 않고 전진하기를 바라고, 내면의 변화가 있기를 원하고 기도하고 있다면
이제 우리도 얍복 앞에서 씨름해야 해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내려놓고 아니 내던져야 해요.
그러한 치열함 없이 새로운 시작과 도전? 내면의 변화를 경험할 수 없어요.
얍복에서의 야곱의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이 얍복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을 마주해요.
평생 타고난 자신의 잔머리 지수만 붙잡고 살았던 야곱이, 그 잔머리를 포기하게 되는 엄청난 사건을 경험합니다.
사실 야곱은 잔머리만 뛰어났던 것은 아니라, 힘과 체력도 엄청나게 좋았던 사람입니다.
야곱이라고 하면 우리는 아마 나약함? 마마보이? 엄마 뒤에 숨어있던 아들? 엄마랑 요리하는 것을 즐겨하던 아들? 아마 대부분 형 에서에 비해 나약한 동생이라는 이미지가 있을거에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완전 다른 사람이 야곱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어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형의 뒤꿈치를 움켜쥐고 나왔어요.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형의 뒤꿈치를 움켜쥐고 나올만큼 힘이 있었어요. 떡잎부터 이미 남달랐어요.
야곱은 형처럼 사냥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약하고 유약한 마마보이가 아니었어요.
형의 축복을 대신 받고 도망가서 삼촌 라반의 집에 갔을 때요. 먼저 우물가에 가서 정보를 얻거든요? 그 때 운명의 여자를 만났어요.
한 여자가 양들을 쫙 데리고 와서 물을 먹이려고 하는데, 그 여자를 보고 진짜 한눈에 뿅 가버렸어요. 그래서 야곱이 벌떡 일어나서 우물 위 뚜껑을 번쩍 들어서 치워요. 이 우물 뚜껑은요. 절대 남자 혼자 들 수 있는 그런 무게가 아니에요.
이 우물 뚜껑은 장정 3-4명은 달라붙어서 사방을 잡고 옮겨야 하는 무게에요. 그런데 야곱이 혼자 그걸 옮겨요.
태어날 때 형의 뒤꿈치를 잡을만큼 악력이 있었고 3-4명이 들어야 하는 우물 뚜껑을 혼자 옮길만큼 그는 강한 남자였어요.
그러니까 머리도 똑똑하고 잔머리도 엄청나고 힘과 체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무리들과 떨어져 얍복강을 도로 건너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이 상황을 해결할 전략을 짜기 시작해요.
자신의 재산을 형에게 주기로 결정하고 형에게 주었어요. 왜냐하면 형의 축복을 빼앗아갔으니까 많은 짐승을 주면 축복을 나눠주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럼 형이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라 생각할만큼 기가 막힌 전략이었어요.
형에게 주는 이 수많은 가축들의 의미는 “형 나 이제 부자가 되었어. 아버지가 주신 그 축복을 내가 받지 않아도 돼. 나 이렇게 돈 많아. 그 때 속여서 축복 받은 것 쏘리. 사과의 표시로 내 재산을 형에게 줄게. 나 축복 안 받아오 돼 형" 이라는거에요.
정말 많은 재산을 나눠주었으니 형이 당연히 받고 용서해줄거라 생각을 했어요.
여전히 자신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죠.
여전히 형을 띄엄띄엄 봤던 거에요. 에서가 이 선물을 받았을까요? 이런 것 필요 없어요.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는데 이런 재산들 필요 없죠.
에서의 목표는 야곱을 끝장 내는거에요.
야곱은 자신의 기준에서 기가 막힌 전략을 짰는데 실패했어요.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지가 없어요. 아무리 생각하고 묘안을 짜내도 뭐가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 내몰렸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지식, 경험만을 의지하고 있어요.
지금 야곱은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에요.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내일이 보이지 않아요. 내일이 보장되지 않아요. 이제 이렇게 밤이 지나 해가 뜨면 끝이에요.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그 순간에도요.
내일을 확실하게 보장 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잘못된 답 속에서 생존해내려고 발버둥만 치고 있어요.
24절. 홀로 남았더니. 홀로 그 자리에 남아있어요.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지금 그의 머리에는요. 오직 “내일"밖에 없어요. 어떻게 해서든 “내일만 버텨보자"그 생각밖에 없어요. 내일 이후에 뭐가 어떻게 되던 중요한게 아니에요. ‘그냥 내일만.’ ‘내일 하루만'이라는 생각 속에 잠겨 있어요. 거기에 몰두하니까 하나님이라는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거에요.
그렇게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복잡한 야곱 앞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요. 시비를 걸어요.
분명 나 혼자 홀로 여기 남아 있었는데 누군가 왔어요. 정신차려보니 그 사람과 싸우고 있어요. 솔직히 저와 여러분이 야곱이라면 이 상황에 어떤 행동을 했을 것 같아요?
가뜩이나 지금 신경도 예민하고 머리도 터질 것 같은데 누가 시비 걸면 어떤 느낌일까요?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무시하거나 혹은 화가 많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야곱은 지금 시비 거는 그 사람과 싸워 빨리 정리하고 싶었을거에요.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눈 앞에 이 사람이 아닌 ‘내일'이거든요.
‘내일을 살 전략'을 짜야 하는데 이 사람 때문에 짤 수가 없는거에요.
근데 더 화나는 것은 시비 턴 이 남자가 힘이 너무 쌘거에요. 자기랑 비슷한거에요.
금방 내다 꽂아버리고 쫓아버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닌거에요.
쉽게 이기기 힘들어요. 근데 또 짜증나는건 질 것 같지도 않아요. 승부욕이 강했던 야곱이에요. 쉽게 이기긴 힘든데 질 것 같지도 않으니까 포기를 못하는거에요. 점점 더 승질나는데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끝까지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던 야곱이에요.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답을 앞에 두고도 자기 힘으로 끝까지 씨름하던 그 야곱에게 Critical damage가 터져요.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주도록 지탱해주는 엉덩이 뼈를 얻어 맞은거에요. 싸우던 중에 우연히 맞은 것이 아니라요.
25절 말씀처럼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의도하고 내려 친거에요. 의도하고 내려 친 그 부위에 Critical Damage가 터지면서 야곱이 고꾸라져요.
이 사람이 마치 지금까지 봐주면서 힘 겨루기를 했던 것처럼 그 부위를 정확히 노려서 쳤어요.
끝났어요. 끝. 내일 형을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는데,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데 오늘을 서 있을 힘조차 사라진거에요.
‘내일'을 걱정하던 야곱이 이제는 ‘지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어요.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생존'하는 것 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어요.
야곱은 더 물고 늘어져요. 다리에 힘은 들어가지 않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붙잡고 물고 늘어져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자기는 이제 끝났어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이 사람을 더 움켜쥔거에요. 물고 늘어지면서 이렇게 말해요.
“당신!! 나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 갈 수 없어. 아무데도 못 가! 절대 놔줄 수 없어!”
좀 쌩뚱 맞지 않으신가요?
일반적이라면 갑자기 그에게 시비 튼 사람, 자신을 때려서 엉덩이 뼈를 박살낸 이 사람에게 “나한테 왜 이러냐고!! 나 지금 안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너 뭔데 나한테 이러냐고!” 막 소리를 질러야 할텐데,
그 순간 “나를 축복하라!”라고 외치고 있잖아요.
그의 이런 외침 이해할 수 없어요.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을 버티는 것' ‘내일 살아남는 것'이지 축복이 아니거든요.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누군지도 모르는 이 사람에게 “축복을 달라"라고 외쳤던 것은요.
그가 싸움을 통해 이 사람이 나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가 이 사람이다. 그렇다면 난 이 사람에게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본능적 외침인 것이죠.
‘어쩌면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일을 살아 낼 수 있겠다.
이 사람이 나와 함께 하면 형과의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순간 그의 머리 회전이 빨라졌던 것이죠. 원래 축복은 위에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잖아요.
이 당시 표현으로는, 열등한 자가 우월한 자에게 구하는 것이 바로 축복이었어요.
사실 축복이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처음 본 이 사람이 어떻게 야곱에게 ‘내일을 버틸 축복'을 줄 수 있겠어요. 어떻게 ‘에서와의 만남을 피할 수 있게’ 해주겠어요.
야곱은 끝까지 자신의 방식으로 축복을 얻어내 ‘내일을 보장' 받고 싶어 했어요.
29절을 보니까 야곱은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일단 축복부터 받고 나서 그에게 ”근데 당신 누구입니까?”하고 물어요.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오로지 ‘내일을 살아내는 것'에만 몰두한 그에게 그 사람은 또 쌩뚱 맞은 질문을 해요. “너 이름이 뭐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가 안 되니까 한명이 암묵적인 룰 힘 겨루기를 포기하고 때렸어요.
처음부터 치고 박고 싸운게 아니라 힘겨루기만 했는데, 치사하게 힘이 들어가는 곳을 내려쳤단 말이에요.
얻어 맞은 사람은 느닷없이 ‘축복을 달라' 말하고 때린 사람은 ‘너 이름이 뭐야'라고 묻고.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런데 이 어이없어 보이는 상황이요. 평생을 남을 속이고 헛발질만 해오던 야곱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상황으로 전환이 되요. 야곱의 삶을 완전히 반전 시켜 버려요. ‘내일만 바라던 야곱’의 삶 ‘그 이상을 바라보는 소망을 갖는 시간'이 되어 버렸어요.
‘너의 이름이 뭐야?’라는 이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었을 것 같아요?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야곱은 이 질문을 듣고 그 숨은 의도를 알아차려요. 아프고 정신 없는 그 상황에서요. 그의 머리가 차분해지기 시작하면서 그 질문의 의도대로 대답을 해요.
“너의 이름은?” 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가 무슨 대답을 했을까요?
우리 함께 27절을 읽어볼까요?
“그 사람이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아멘.”
이름이 뭐냐 물었으니 당연히 ‘야곱'입니다. 라고 대답한 것 같지만, 아니에요.
그는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한게 아니에요.
‘어.. 제 이...름은.... 야..고....ㅂ입니...다.’
이 말의 숨겨진 뜻은요..
“저는 사기꾼이에요. 저는 아버지와 형을 속였고 평생 남을 속이며 살아왔어요.”
“저는 누군가 저보다 잘 나가면 질투했고, 그 사람을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짓밟았어요.”
“저는 사기꾼이에요.”
“저는 죄인이에요.”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야곱은
외면하고 싶엇던 그리고 묻어버리고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을 처음보는 그 사람. 자신을 때린 그 사람에게 고백했어요.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는 사기꾼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온거에요.
야곱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어요.
삼촌에게 속아가면서 결혼도 했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나름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았어요. 자신이 형과 아버지를 속였지만 그리고 결국 라반도 속이고 나왔지만
어쨌든 그는 나름 열심히 삶을 살아낸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절대 지워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그를 매일 사기꾼이라 불렀거든요.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야곱. 사기꾼 속이는 자라 부르는 것과 같았어요.
남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를 때마다 야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거에요. 남들이 그렇게 불러도 자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거에요.
그러니까 삼촌 라반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지나왔던 것이죠.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 “사기꾼”이라는 것을 지금 야곱은 그 사람에게,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고백하고 있는거에요.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저는 지금까지 제 삶을 제가 이끌어 왔습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오직 나였습니다.
지금까지 성공했던 나의 모든 삶은 내 욕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까지 나에게 하나님은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지만 믿었지만 사실 없어도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였습니다.
나는 나를 믿었고, 나의 능력만 의지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이 담긴 한마디
“야곱입니다.”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런 마음으로 ‘나는 사기꾼입니다.’라고 고백한 야곱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생겼어요. 새로운 정체성과 신분을 받았어요.
이스라엘. 이 새로운 이름은요.
"지금까지 너의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나의 지도와 통치를 받아라.”
“너가 나를 수없이 배신했던 그 순간에도 나는 참고 감수했다. 너의 모든 투정을 받아왔다.”
(쉬고 강하게)
“나는 이 순간을 위해 기다렸다. 너의 그 고백을 듣기 위해 수많은 배신의 아픔을 참아가며 기다렸다. 이제 너는 나의 것이다.”
”이제 고백했으니 되었다. 너의 삶 내가 이끌어줄게”라는 뜻이 담겨있어요.
정말 멋진 하나님의 고백이 담긴 이름이에요.
하지만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 이름은 야곱을 변화시키는 어떤 보증과 같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가 이름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여전히 그의 앞에는 형 에서가 서 있었거든요. 에서를 만나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였어요.
야곱은 그날 밤 변화되었어요. 뭐 바뀐 현실은 없는데요. 변화 되었어요. 당장 눈 앞에 큰 현실이 남아 있지만 변화되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예수님을 만났고 구원을 받았어요. 그래서 새로운 신분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하지만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현실이라는 벽 앞에 좌절해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내 환경은 그대로에요. 그리고 우리의 옛 습성도 그대로에요.
그날 밤 하나님을 만난 야곱도 우리도 여전한 끊어버리지 못한 옛 습성이 있어요. 그래서 여전히 현실을 바라보고 두려워해요.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은데 겁이 나요.
어떻게 변화될지 예측할 수 없는 것보다 그래도 지금의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야곱도 마찬가지에요. 변화되었지만 그도 벗어 버리지 못한 옛습성. 교활함이 남아있었어요.
형을 다음 날 만나요. 야곱을 죽이려고 400명이나 데리고 오던 형이 야곱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용서해요. 그러고 같이 살자고 해요.
그런데 여기에서 야곱은 또 머리를 굴러요. 형이랑 같이 살기 싫어서 교묘하게 말장난하면서 형에게서 벗어나요.
여전한 잔머리. 교활한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야곱도 우리도 분명히 변화되었는데요! 그 사실을 알겠는데요. 여전히 바뀌지 않는 모습이 너무 너무 많아요.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하지만 바뀌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며 주눅들 필요도, 주저 않지 않아도 괜찮아요.
야곱도, 저도, 여러분도 옛 습성과는 별개로 변화되고 있거든요.
Metamorphosis.라는 영어 단어가 있어요.
야곱 그리고 우리가 변해가는 이 과정을 이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요. 내 모습과는 별개로 내 상황과는 상관없이 이미 여러분의 내면. 중심은 Metamorphosis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더 높은, 초월한 이라는 뜻을 가진 Meta와 이상 변이, 형태가 변하다 라는 뜻의 Morphosis가 합쳐진 단어인데요. 우리가 감히 상상도, 생각할 수 조차 없는 변화 Metamorphosis가 이미 우리에게 시작되었어요.
우리의 마음. 그 중심. 내면. 성령님이 거하시는 그 자리이미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거에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그 변화가 여러분에게 일어나고 있어요. 봄 말씀축제를 통해 그 내면의 변화를 하나님은 분명 이루고 계셔요.
여전히 교활하고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나
다시 시작하고 싶고 변화의 은혜를 경험하고 싶지만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도 원하지 않았던 나
여전히 교활하기 짝이 없고 오만방자한 나
구원을 받았으니 은혜를 받았으니 다시 시작하라는 그 말씀을 머리로는 정말 잘 이해했지만, 여전히 잔머리를 굴리며 교활한 모습을 보이는 나
머리로만 이해할 뿐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고 계심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나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옛 습성을 유지하며 줄타기하는 것을 즐기는 것과 별개로 하나님은 이미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내면을, 영을, 삶을 Metamorphosis 시키고 계셔요.
절대 저와 여러분을 그대로 두지 않으세요. 그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셔요.
야곱처럼, 너 이름이 뭐냐 물었을 때!
그 뜻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던 그 야곱처럼!
우리도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고백해야 해요.
힘 빼고 그 변화를 받아드려야 해요.
야곱이 힘을 빼지 않고, 계속해서 버티고 잔머리 굴리니까요. 하나님이 치셔서 힘을 빼셨어요. 힘이 빠지니까 보인거에요. 나는 사기꾼이고 죄인이구나. 이런 나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변화 시키려고 기다리고 계셨구나.
저도 여러분도 힘을 빼고 받아 드려야해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Metamorphosis 하셨어요.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가길 바래요.
“나는 야곱입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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