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킹덤스토리 41과과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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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말씀 : 여호수아 14:6-15절
제목 :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과 용기
찬 266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찬 352장 십자가 군병들아
오늘은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과 용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굳건해지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나 닮고 싶은 성경의 인물이 있으십니까? 저는 특정인물을 꼽으라면 어렵지만 요즘 대단해 보이는 신앙의 선배들은 바로 은퇴하시는 목사님들입니다. 물론 모두가 다 아름답게 은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없이 무탈하게 정년의 때까지 목회의 길을 걸었고 때가 되어 은퇴하는 목사님들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지곤 합니다. 왜요?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불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입장에서 말씀드렸지만 목사나 다른 직분자나 할 것 없이, 신앙의 길을 ,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한다는 것은 정말로 존경스러운 부분입니다. 나름대로 역경 가운데, 인내와 믿음 가운데 신앙의 경주를 완주한 것이죠. 저보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이 대부분 연수로는 저보다 신앙의 선배들일 것입니다.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오신 그 길 정말로 대단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신앙이라는 경주를 끝까지 충성되히 완주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여호수아 14장 말씀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믿음의 선조 ‘갈렙’입니다. 여호수아 14장의 배경은 이제 어느 정도 가나안 땅 정복은 진행이 된 상태입니다. 남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구요, 이어서 11장에는 북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였습니다. 이제 전쟁들의 승리로 가나안 땅에서의 주도권은 이스라엘에게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머지 땅들, 그 땅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가 자기들의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 정착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죠. 13장에서 여호수아는 이제 총사령관의 지위에서 내려오게 되고, 이제 각 지파들로 땅을 분배하고 스스로 정복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 땅을 분배하고 있는 상황은 이미 정복한 땅을 나누어 갖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제 각 지파는 분배받은 땅으로 가서 그곳에 사는 가나안 원주민들과 전쟁을 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그 땅을 차지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열두 지파가 연합군으로 전쟁했지만, 이제 각 지파는 흩어져 자신들에게 분배 받은 땅을 점령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유다 지파가 가장 먼저 땅을 요구합니다. 유다 지파의 대표로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했습니다. 12절 말씀 한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이 산지는 어디입니까? 바로 13절에, 헤브론 산지입니다. 이 헤브론이라는 지역은 갈렙이 산지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 잡은 도시였습니다. 해발 1,000m정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갈렙이 이 헤브론 땅을 요구한 이유는 그가 45년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한 사건과 연결됩니다. 45년전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10명의 정탐꾼들이 자신들이 메뚜기 같다고 하며 불신앙적 보고를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민수기 13:33절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은 거기에 살고있는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거인 같은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며 겁을 먹은 것이죠. 이 ‘아낙’이라는 의미는 문자적으로 ‘목이 긴 사람’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아낙 자손을 키가 큰 사람들로 묘사되구요, 강한 민족의 대표격으로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겠느냐?’라는 속담이 당시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아낙 자손이 어디에 살고 있었습니까? 바로 헤브론 산지입니다. 45년전 갈렙은 이 헤브론에 살고있는 아낙 자손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갈렙의 나이 40세 때였습니다. 민수기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는 45년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호수아 14장에서는 이로부터 4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14장 10절 마지막에 보십시오. 갈렙의 나이는요? 85세입니다. 그는 40살 때 헤브론 산지와 아낙 자손을 보며 정탐했던 그때와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믿음을 눈을 가지고 가장 먼저 여호수아에게 요구합니다. 11절 12절 말씀 다시금 읽어볼까요.
(수 14:11, 개정)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수 14:12, 개정)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지금 갈렙은 출애굽 1세대로, 민족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입니다. 백성들 중에서는 어른 중에 어른입니다. 그 어른이 누구보다 앞장 서서 뭘 요구합니까? ‘이 산지를 내게 달라’ 요구합니다. 그가 그토록 원하는 헤브론 산지는 점령하기 가장 편한 땅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은 선택하기 싫은 산지입니다. 어떤 지파라도 기피 제 1순위의 땅이 바로 헤브론 산지였을 것입니다. 왜요? 그곳에 거대한 아낙 자손이 살고 있습니다. 그 땅은 높은 지대에 견고한 성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누구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야성을 보이며 그 땅을 우리 지파에게 달라 요구한 것이죠.
여러분 따라해볼게요. “하나님을 향한 변하지 않는 충성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갈렙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충성입니다. 8절과 9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때로는
여러분 45년전 갈렙은 하나님께 충성하였습니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지금 역시 그의 충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갈렙’이라는 이름을 히브리어 ‘켈렙’과 관계되어있다고 말합니다. ‘켈렙’은 우리 말로 ‘개’입니다. 당시 ‘개’는 신하를 가리키는 상징이기도 했구요, 왕의 신하가 자신을 가리켜 ‘개’라고 지칭했다고 합니다. 갈렙은 민수기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개와 같이 충성된 신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께 충성할까요? 하나님의 종처럼 살기를 원할까요? 아닙니다. 연륜이 먹어갈수록 자신의 경험과 다른 것을 의지하려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기보다는 누군가를 종삼으려 합니다. 그것이 나이를 먹는 사람들의 본성입니다. 갈렙도 얼마든지 자신의 직위와 나이를 이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머리로 계산해서, 아니 연륜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죠, 어디가 가장 점령하기 편하고 좋은 땅인지, 그 땅을 여호수아에게 가장 먼저 요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세월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희 이 모습에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내 주위에 어른이라고 칭함받는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정말로 존경스러울 것 같아요. 사람이 정말로 10년만 지나도, 아니 1년만 지나도 변하는 것이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뜨거웠던 첫사랑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우리 가운데 아직도 남아계신 분 있으십니까? 아니면 신앙의 연수가 쌓여갈수록 사람이 더 보이구요, 신앙의 요령만 늘어가곤 있진 않습니까?
우리 안에 이 갈렙과 같은 신앙의 열정이,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불일 듯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여기에 85세 넘으신분 계신가요? 갈렙은 85세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가득하였습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연수가 쌓여갈수록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변함없길 소망합니다. 가장 기피하는 그 자리에라도,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께 충성하는 우리 모두 되길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두 번째입니다. 갈렙은 그렇다면 왜 헤브론 산지를 유다 지파에게 달라고 했을까요? 물론 그의 45년 전과 변함없는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갈렙의 신앙적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도 중요합니다. 먼저 갈렙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그 땅을 구한 것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충성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었으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이자 민족을 향한 헌신적 충성이었습니다.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구한 이유는 헤브론 땅이 자신에게 부귀와 권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 땅을 요구한 이유는 오히려 그 도시를 정복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다른 사람에게 다른 지파에게 힘든 과제를 넘기기보다는 자신이 떠맡기를 원했습니다.
또 갈렙은 45년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였던 것 때문에, 자신의 동료와 친지들 출애굽 1세대들이 광야에서 유랑하며 죽어가는 것을 40년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 땅에 정착하는 출애굽 2세대들이 다음 세대들이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금 경험하며 그 땅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길 바랬기 때문에, 그 산지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의 충성은 하나님 나라와 믿음의 사람들을 위한 헌신된 충성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신기한 부분은 그가 그토록 점령하고자 했던 헤브론은 이스라엘 역사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의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매장지로 구입한 땅이 헤브론 땅이었으며,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야곱과 레아가 묻혀있는 곳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나중에 다윗 왕이 초기에 헤브론에 성을 건축하였구요, 결국 유다 지파가 차지한 땅은 성전이 지어질 예루살렘과 더불어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까지도 이 땅에 포함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 나라와 믿음의 백성을 위한 헌신된 충성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헌신된 충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게 되는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때때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하지만 실은 개인의 욕심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충성이지만 실은 그 동기가 자신의 이름을 내고 싶어하는 자들이나, 개인의 욕심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갈렙의 선택은 가장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 더 나아가 이웃을 위한 선택과 헌신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바로 이러한 결정과 선택일 경우가 100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헌신은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이 헌신입니다. 헌신은 내가 인정받지 못하여도 하는 것이 헌신입니다. 헌신은 하나님만 아셔도 된다는 것이 헌신입니다. 헌신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헌신입니다. 이러한 헌신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이 갈렙의 충성과 헌신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나이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충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85세의 나이에 다른 지파가 기피했던 헤브론 산지를 믿음으로 구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변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지길 소망합니다. 또 여러분들의 헌신과 충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이웃이 살게 되는 놀라운 복의 통로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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