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최선, 기도와 기회

사무엘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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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이 도망가다 2. 언약궤를 돌려 보내다 3.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다 4. 후새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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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아달과 사독과의 만남

오늘 말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변함없는 다윗의 지지자들, 다윗을 당황하게 만드는 사건 마지막으로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첫번째, 변함없는 다윗의 지지자들 24-29절입니다.
다윗이 쫓겨 도망을 갑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로 향하고 있습니다. 도망치는 다윗 옆에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법궤를 멘 레위사람들이 있습니다.
법궤를 메고 와 기다리는 레위인들과 사독 그리고 아비아달은 다윗의 변함없는 지지자들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신정통치국가이죠.
신의 통치를 받고 신을 따르는 나라입니다.
혹시 신정통치국가에서 큰 영향력과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종교인들입니다.
왕이 가장 중요하지만, 제사장과 같은 종교인들은 백성들이 신에게서 벗어나지 않고, 을 바로 믿도록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이 신을 따르지 않으면, 더 이상 신정통치국가가 아니기에, 들을 영적으로 가르치는 종교인들의 영향력은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독, 아비아달 그리고 레위인들은 종교인들입니다.
신정통치국가 이스라엘의 종교인들입니다. 종교인들이 위기에 처한 다윗을 격려하러 올라왔습니다.
아들에 반란에 쫓겨 정신없이 도망치며 낙담하던 다윗에게 정말 큰 위로와 힘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올 때 법궤를 메고 왔습니다.
법궤는 정권의 종교적 정당성을 가져옵니다.
이 정권은 여전히 다윗의 것이다! 라는 것을 확증해주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아무리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른다해도,
법궤가 없다면 그리고 그를 지지해주는 종교인들이 없다면 그것은 반쪽자리 왕에 불과합니다.
정권의 종교적 정당성. 정권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법궤가 지금 다윗 앞에 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보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내 편이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는 순간 굉장히 기뻤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보호하시고 회복시킬 것이라는 생각과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금 다윗은 과거의 총명함과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압살롬 반란 이전에 그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모습과 행동들을 계속해서 해왔습니다. 잘못된 판단력을 그는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금 도망이라는 어려움 앞에 잃어버렸던 판단력과 총명함을 되찾아갑니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을 잃어버린 지금까지의 다윗이라면 자신 앞에 있는 법궤를 정치적으로 사용하려 했을 것입니다.
높은 곳에 서 모든 사람들에게 법궤와 종교인들의 지지는 여전히 나에게 있으며, 압살롬은 정당성이 없다! 라고 외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예전과 같은 영성을 회복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법궤를 들고 다시 돌아가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법궤를 볼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법궤를 나에게 가져와,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내가 법궤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가 다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갖고 돌아가라! 라는 이 말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앞으로의 내 모든 여정과 삶을 맡긴다! 라는 그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법궤를 부적처럼 취급했습니다.
법궤만 있으면 부자가 될 수 있고, 법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법궤만 있으면 내 삶은 더 좋아질 수 있어!! 라며 법궤를 승리 부적으로 여겼습니다.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레위인들 역시 법궤에 대한 의미를 왕의 정당성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들고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법궤의 진짜 의미를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하던 그 때, 다윗은 법궤의 진짜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된 것이죠.
밧세바 사건 이후 쇠퇴하던 그의 신앙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잃어버렸던 사라졌던 그의 마음 속에 있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망이 급속도로 채워집니다.
원래 다윗이었다면 법궤를 사용해서 왕권을 되찾으려는 전쟁을 했을텐데,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회복된 지금 이 순간.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요청합니다.
도망자인 그가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내부사정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내부에 신뢰할만한 스파이를 심어두고, 그를 통해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연락병으로 데리고 가 달라 요청합니다.
다윗의 믿음이 회복되어 가며,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다시 결정하고 마음을 먹은 이 때, 그를 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다시 한번 그는 시험대에 오릅니다.
우리의 삶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도하며 선포하며 결단을 하며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내 곧 우리의 마음 그 믿음을 흔드는 사건이 바로 등장합니다.
또 시험대에 오릅니다. 내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건이 생겨납니다.
결단의 삶을 방해하는 일들이 계속 생겨납니다.
두번째, 다윗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 30-31절입니다.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올라가고 있던 그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하나 들립니다. 31절을 볼까요?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합류했다! 라고 말합니다.
아히도벨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이전에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31절 하반절. 다윗이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을 때 아히도벨의 ‘모략'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전략가 였습니다. 다윗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전략가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정하고 법궤를 돌려보낸 그 때, 하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었던 그 때 아히도벨이 등장합니다.
평소에 다윗 같았으면 좌절했을거에요. 넘어졌을거에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자신의 방법으로 이것을 해결하려 했을거에요.
어쩌면 법궤를 다시 가져오라! 라고 했을지 몰라요.
이제 다윗에게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법궤를 돌려보낼 때 했던 그 결단처럼 이제 하나님을 신뢰하고 끝까지 그분을 믿는 것 외에 남은 방법이 없습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 진영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아연실색하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붙잡는 것밖에 없습니다. 당황하던 다윗은 이내 마음을 잡고 하나님을 붙잡기 시작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어떠한 돌파구도 보이지 않아 기도 외에 정말 아무런 답이 없었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일하고 있음을,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세번째, 기도에 대한 응답 32-37절입니다.
예상치 못한 사람이 다윗을 찾아옵니다. 바로 후새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또 그 믿음을 드리기로 결정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후새를 보내주십니다.
아히도벨로 인해 하늘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빛이 사라져 깜깜해져버린 밤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다윗에게 한 줄기 빛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후새를 본 다윗은 “살았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라고 생각했을겁니다. 후새는 다윗의 친구입니다. 오랜 세월 다윗과 우정을 나누며 함께 살아왔던, 또 다윗의 일을 함께 의논하던 최측근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윗과 비슷한 나이였습니다. 33절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후새가 따라오면 짐이 된다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그에게 다른 역할을 부여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
압살롬에게 거짓 충성을 맹세하라.
거짓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은, 다윗을 가장 힘들게 할 수 있는 아히도벨의 계략을 막으라.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돌려보냈던 사람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달라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작전입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가 압살롬 자신의 진영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압살롬이 어떻게 행동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후새는 자신이 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친구 다윗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37절.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후새는 다윗을 만난 후 1.6km를 30분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이가 많은 후새가 1.6km를 30분만에 왔다는 것은 정말 급하게 왔다는 것입니다.
후새가 먼저 도착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 그가 늦게 도착했다면 의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온 것 아닌가?”라는 압살롬의 질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고난 앞에 선 다윗은 원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비록 그의 몸은 노쇠했지만 그의 마음은 처음 왕이 되었을 때와 같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냉정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갖고, 기도하며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습니다.
압살롬 주변에 사람들을 심어 두었습니다.
과거의 민첩함과 치밀한 전략가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압살롬은 다윗이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전히 깔보고 있고, 자신 때문에 도망간 약한 아버지라 생각합니다.
다윗의 변화는 반격의 시작과도 같았습니다.
다윗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 쌓아왔던 깊은 교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난 몇년 동안은 그가 하나님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그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했던 그 것들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던 것이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우리도 끊임없이 예배를 드리며 또 기도하는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때까지 붙잡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더뎌 때론 지칠 때도 분명 있습니다.
그만 기도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보이는 기도. 과연 언제 들어주실까 하는 그러한 마음의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린 계속해서 붙잡아야 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 시간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더욱 더 굳건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포기하고 싶고 좌절하고 싶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예배와 기도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수치를 당하던 다윗이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의 그의 경건생활 때문입니다. 그 경건생활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믿음을 다시 불타게 만들었고, 어려움의 순간에 하나님을 붙잡도록 해주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고 있는 매일의 경건생활은 우리가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힘과,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당당하게 걷도록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 그리고 말씀 묵상하는 그 경건생활을 매일 이어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잡고 여러 상황들을 기쁘게 돌파해내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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