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삶의 은혜와 열매들

베드로 전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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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열매 충만하십시오’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한글 창세 578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글은 우리 민족이 스스로 문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인 의미가 너무나 크지만, 창제 이후 약 400년간은 조선 사회에서 소외 계층에 해당하는 여성들이나 중인들에 의해서 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882년 중국 심양에서 스코틀랜드 선교회를 중심으로 한 존 로스와 맥킨타이어 목사,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에 의해 한글 성경이 번역됨으로써 비로소 대중화가 일어납니다. 1882년 누가복음 번역을 시작으로 1887년 신약 전체가 번역됨으로써 성경은 한글로 기록한 가장 방대한 책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개신교 선교는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 의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한국에 선교사로 들어 올 때 손에 한글 성경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1884년에 이수정은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했는데, 그는 1882년 수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회심을 합니다. 당시 도쿄 농학사 츠다센은 한문 신약 성경을 그에게 전했는데, 이를 읽다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1884년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이수정 번역본을 가지고 한국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담고 있는 성경을 읽게 하려고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한글을 보급하는 최고의 기관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한글날은 개신교 선교 역사와 뗄 수 없는 날입니다. 올가을에도 아름다운 우리말 성경을 더 사랑하고 가까이해서 영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으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오늘은 나느네의 삶을 사는 성도에게 주신 은혜와 열매들에 대해 함께 배우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나그네 된 성도에게 주신 내적인 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성도는 세상에 나그네로 살지만, 그의 영에는 믿음의 소망이 가득하고, 구원의 기쁨이 넘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성도는 주신 믿음을 통해 보지 못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들임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비록 나그네요 가진 것 없는 방랑자이지만 그 내면에는 하늘로부터 주신 믿음의 소망이 역동하며, 구원의 기쁨이 삶을 힘차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그 열정은 세상의 거친 삶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만약 삶에서의 낙심과 절망이 찾아올 때면 성도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주님께서 내 안에 두신 이 소망과 기쁨, 그리고 주님을 향한 사랑을 다시 확인하며 이를 통해 내면을 역동적으로 다시 새롭게 하는 능력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성도의 내면에는 나그네 삶의 겉모습과는 달리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내적인 능력의 은혜가 풍성히 존재합니다.

S3. 문제 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에게도 종종 세속화와 실패자의 삶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좋은 일만 계속되는 세상이라면 문제가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외적인 도전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순신의 ‘일성호간’이 위협하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내적 자원들이 풍부해도 현실을 바라보면 내 안에 있던 기쁨이 사라지는 것 같고, 내 안에 두신 소망도 무력해 보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보다는 원망이 마음에 차고, 차라리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지 왜 여기에 두셨나? 하는 연약한 마음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연약해지도록 성도를 내버려 두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에게 주신 내면의 힘만이 아니라 현실의 모든 도전을 이기는 또 다른 성도의 정체성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주님 다시 오실 날을 바라보는 역사의 종말을 향한 ‘소망의 바라봄’입니다. 성도는 중생으로 인해 내면에 주신 믿음과 그로 인한 소망, 그리고 구원의 기쁨과 주님을 향한 사랑의 힘으로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내면 즉, 내 안을 향한 시선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에 더하여 역사의 종말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시고, 영적 나그네들에게 항상 내일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13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13절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사도는 이 땅의 나그네에게 예수님께서 재림 시에 가져오실 새로운 은혜를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성도에게 주신 내면의 은혜가 주변의 고난과 도전을 받을 때 나느네는 역사의 끝에 재림하실 예수님의 은혜를 온전히 소망해야 합니다. 내면만 아니라 역사 끝에도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하나님께서는 종말의 날에 예수님을 이 땅에 다시 보내실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오신 주님은 더이상 절망이 없고 눈물이 없는 나라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 재림의 날의 영광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계시록 7장 15-17절입니다.
요한 계시록 7장 15-17절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구원과 회복의 날을 주님의 재림의 날에 은혜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을 소망할 때 새 힘을 누립니다. 내면의 은혜들이 약해질 듯할 때 나그네는 역사의 미래를 바라보며 새 힘을 얻게 됩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이 진리는 예수님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이 나그네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은 궁중에 살고 잘 먹고 잘 입으시면서 우리에게는 고난을 이기고 오라고 부르는 그런 왕이 아니십니다. 주님 자신이 이 땅을 나그네로 사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길 가는 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하니까 주님이 들려주신 대답입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 없이 세상을 사셨습니다. 진정한 나그네는 우리가 아니라 구주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세상에서 머리 둘 곳 없는 나그네셨기에 이 땅에 두신 자기 백성들을 나그네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진짜 거지들의 왕초라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죄로 무너진 지금의 이 세상을 대신할 영원한 새 나라를 준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는 이 세상을 새롭게 하고 영광을 온 땅에 드러내실 미래의 새 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앞으로 주실 새 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동인다’는 말은 ‘묶는다’는 뜻입니다. 당시는 통으로 된 옷을 입고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가려면 허리를 묶어야 했던 것이지요. 고난이 찾아오는 날, 내면의 소망과 기쁨이 약해지는 날, 우리는 마음의 허리를 묶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두신 소망의 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고난과 고통의 아픔들을 묶고, 약속의 날을 바라볼 때 놀라운 은혜의 열매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재림의 날을 꿈꾸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매맺게 하십니다.

마지막 날의 소망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세상과 단절하는 놀라운 삶들이 열매 맺기 시작합니다. 본문은 세 가지의 새로운 삶을 말하는 데, 먼저는 자신의 사욕을 본받지 말고 아버지의 거룩을 본받는 삶이 나타납니다. 14-16절을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14-16절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거룩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규범으로 알고 순종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이 또한 약속의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력으로 결코 하나님의 거룩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를 명령하셨다면, 이는 분명히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부흥회 시에 영적 수동태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능동적인 사역의 결과로 우리에게 은혜가 수동적으로 부어집니다. 그런데 이 비밀은 비단 수동태라는 형태가 전제되어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는 모든 일은 수동태가 전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그 말씀 속에는 내가 너를 거룩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너를 그렇게 할 것이라는 약속이 먼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종말의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성도를 거룩하게 살게 하시는 은혜를 누립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는 나그네들은 거룩을 열매맺는 새 사람이 됩니다.

W2. 미래를 소망하는 성도는 참된 두려움으로 살게 됩니다.

두려움에는 없애야 하는 부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마음에 숨겨진 불안으로 인해 생기는 두려움들을 치유하여 회복해야 합니다. 혼자 있는 것이나 일 안하고 있는 것이 불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을 찾습니다. 술을 찾아 취하도록 마시기도 하고, 노름 판에 끼어들기도 하고, 하루종일 텔레비전만 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부정적인 두려움이 일으키는 열매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류의 두려움들은 반드시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말의 날에 있을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참 두려움을 갖습니다. 이를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17절 말씀을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17절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종말에 다시 오실 주님, 그 주님이 주실 은혜를 소망하는 사람은 나그네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도는 종말에 주실 은혜가 내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임을 알기에 항상 겸손하고 살고, 혹시 이 구원에서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됩니다. 구원은 금이나 은과 같이 세상 물질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 흘리심만으로 얻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달려있는 구원은 사람의 열심이나 노력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나그네 인생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1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중생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를 나그네로 부르신 예수님은 종말의 날에 죽은 자를 부활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완전하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나그네는 자신을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진정으로 참 생명을 가져다 주실 미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인생길을 겸손하고 낮은 마음으로 사는 복된 열매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W3. 더하여 우리 하나님은 거룩과 경외를 아는 나그네들이 형제를 사랑하게도 만드십니다.

거룩과 경외를 아는 나그네는 타인에 대해서도 비난하고 원망하며 살지 않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열매를 맺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면서 신앙의 형제들을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22절을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비록 나그네는 세상에 정처 없이 사는 존재이지만, 종말의 날의 영광을 알기에 이웃과 형제를 원망하고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는 삶을 삽니다. 마지막 날의 영광을 알기에 나그네는 신분과 환경을 탓하며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사랑의 은혜 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의 기쁨과 소망을 더 강하게 붙잡고 살기에 타인의 연약함을 비웃거나 무너뜨리지 않고, 거짓 없는 사랑을 열매 맺으며 사는 것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며 형제를 존중하는 삶의 열매가 그의 삶 속에 맺혀집니다.

T. 나그네는 종말의 날의 은혜를 소망하며 변화의 열매를 누리고 삽니다.

성도는 비록 세상에 대해 나그네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 중생을 통해 주신 나그네의 삶은 결코 가난하고 포악하고 악한 삶을 열매 맺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많은 열매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을 떠나서 맺는 열매는 천국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열매를 맺는 자는 이 땅에서 조차도 풍성한 은혜를 열매 맺게 됩니다. 베드로는 나그네 인생이야말로 진정한 거룩과 경외와 사랑의 열매를 맺는 놀라운 복을 누릴 것을 약속합니다. 마지막 날에 오실 주님을 소망하는 성도야말로, 세상의 나그네가 되어 기꺼이 놀라운 삶의 열매를 맺는 복을 누리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강도 혹은 깡패가 변하여 새 사람으로: 김익두 목사님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여전히 성도를 조롱하고 미혹합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데, 세상에서 복된 삶을 살면 되지 왜 손해 보고, 내려놓고, 비우며 사는 삶을 사느냐고 성도를 미혹하고 조롱합니다. 때로는 내가 한번 건드려 볼 테니 끝까지 견딜 수 있는가 한 번 시험해 보라며 성도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는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할까요? 나의 내면에 두신 믿음의 소망이 끊어지는 것 같고, 내게 두신 구원의 기쁨이 소진한 것 같을 때 모든 것이 끝이 나고 절망만이 남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사도는 내 안의 모든 영적인 자원이 소진된 것처럼 여겨질 때 성도는 아직 오시지 않은 주님의 날을 소망하며 세상 마지막 날에 주실 남은 은혜를 깊이, 그리고 멀리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앞에 약속하신 그 소망의 은혜를 붙들 때 놀랍게도 고난 속에서 거룩을 열매 맺고, 돈과 권력과 힘을 의지하는 세상 가운데서 아버지만을 두려워하는 경외의 삶이 나타납니다. 더하여 내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내 것으로 베푸는 사랑의 삶이 풍성하게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종말 소망의 힘으로 성도는 세상의 시련을 이기고 도리어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복된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나그네 된 우리의 영적 시선을 세상의 시련과 유혹이 있는 이 땅의 현실에만 집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종말의 날에 주실 더 큰 은혜의 풍성함을 바라보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이미 두신 믿음의 소망과 구원의 기쁨은 다가올 영광의 날에 주실 은혜의 풍성함으로 인해 내 안에 진정한 거룩과 경외와 참사랑을 열매 맺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그네 인생은 세상에서 버려지거나 매몰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중생으로 얻는 나그네 삶은 세상 현실의 도전과 유혹에 절망하고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참된 소망과 기쁨을 맺게 합니다. 마지막 날에 주실 영광의 소망은 성도의 삶에 더 빛나는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종말의 소망을 꿈꾸며 거룩과 경외와 사랑의 복된 열매를 삶의 곳곳에서 드러내며 온전한 승리의 백성으로 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 - 하나님의 나팔 소리 18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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