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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번째 위기 2. 아브람과 롯 3. 괜찮다 괜찮아 4. 결정 원칙 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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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위기

지난 주 나누었던 회피하지 않기. 거짓말 하지 않기. 타협하지 않기. 이 세가지를 기억하며 살아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요.
세가지를 기억하고 계속해서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은 정말 하나님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에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위로와 은혜 그리고 사랑이 정말 가득하다 넘쳐흘러서 저와 여러분과 관계 맺는 모든 사람들도 덩달아 회복되는 은혜들이 분명 있을거에요.
이 세가지를 애굽에서 배워서 돌아왔던 아브람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일단 아브람은 배워온 이 세가지를 계속해서 기억하며 의식하며 살아갔어요.
아브람은 또 넘어질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는 더 부유해졌거든요. 모든 일이 잘 풀려 갈 때 우리의 본래 성품. 숨겨놓았던 내면의 휘석이. 내면이 OO이가 등장해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죠. 이 말이 왜 있겠어요.
잘나가게 되면 다른 것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오만해질 수도 있고, 우쭐 거릴 수도 있고 혹은 거들먹 거릴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너무 잘 나가거든요. 모든 것들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 아브람이 그래요.
훨씬 더 부유해졌어요. 오늘 본문 2절을 보면요 “풍부했다"라고 해요. 이전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생긴거에요. 첫번째 위기를 F학점으로 마무리한 아브람인데도 불구하고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된거에요.
그는 인생의 첫번째 위기에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어요. 아니 신뢰하지 못했어요. 그냥 자빠졌어요. 실패했어요. 실패했는데 더 부유해졌어요. 왜 그가 더 부유해졌는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한번 실수 한 것은 용서 할 수 있어. 더 많은 복을 줄테니까 이제 나를 의지해" 라고 하기 위해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 것이 아니에요.
실패자. 도망자. 그 어떤 자격 없었던 아브람이 더 많은 것을 받아서 돌아왔어요. 그가 무슨 생각을 했겠어요.
하나님 앞에 어떤 말도 변명도 할 수 없는 마음가짐으로 돌아온거에요. 첫번째 위기를 통해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은거에요.
제단을 쌓고 예배 하면서 “난 당신을 신뢰합니다! 나에겐 당신밖에 없습니다!!”라고 외쳐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던 그 길로 지금 다시 돌아오고 있어요.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더 많은 재산이 나에게 생겼어요.
여러분이 아브람이었다면 어떤 마음이었겠어요.
굉장히 착잡하지 않았을까요?
한번의 위기 앞에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갔는데, 세상을 대표하는 왕이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을 했어요.
“너의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라!” 아브람이 깨닫지 못하자 세상이, 악한 세상이 아브람을 혼냈단 말이에요.
아브람은 굉장히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마르고 건조한" 네게브를 지나 다시 벧엘로 돌아왔어요. 착잡하고 복잡한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제단을 쌓았던, 예배를 드렸던 그 벧엘에 도착을 했어요.
도착 후 그는 즉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요. 완전히 믿음을 잃은 상태에요. 하나님을 볼 면목도 없는 상황이에요.
예배가 되었겠어요? 제사에 집중을 했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을까요?
제가 중 3이었을 때, 제 인생 최대의 방황을 했어요.
교회 예배 반주자였는데, 교회를 가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교회 앞에 내려주고 제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차를 돌려 집으로 가셨는데, 저는 올라가는 척하고 도망쳐서 만화책방을 가고 피시방을 갔어요. 교회 가는게 너무 싫었어요.
반주도 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왜 예배를 드려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그 때에도 저의 꿈은 목사. 선교사였어요.
예배가 너무 싫었고, 설교도 듣고 싶지 않았고 그냥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심이 들었어요.
그렇게 1년을 방황했어요. 성가대 반주는 하는데, 아무런 마음도 감정도 없이 그냥 피아노를 쳤어요. 예배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중3을 보내고 겨울방학이 되었어요.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어요. 반주를 해야 한데요.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그런데 도망치다 잡혀왔어요. 전에 저를 잡아다 기도하라고 밀어넣었던 그 전도사님에게 다시 잡혀서 반주의 자리에 앉게 되었어요. 대충 막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첫날 집회 때 말씀을 듣는데, 듣고 싶지 않은데 그 날 따라 말씀이 너무 잘 들리는거에요.
게임을 떠올리고, 읽었던 만화책을 생각하는데 그 상상이 다 사라지고 말씀만 들리는거에요. 그리고 저는 그날 완전 하나님 앞에 고꾸라졌어요.
지난 1년간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지 않으려 했던 저의 모습들이 계속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온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날 펑펑 울면서 반주를 했어요.
그리고 둘째날이 되었어요. 제 마음이 어떠했는지 아세요?
아브람이 애굽에서 돌아와 벧엘에 도착해 제단을 쌓고 다시 예배를 드릴 때 저의 마음과 비슷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는 1년간 완전히 믿음을 잃었던 아니 버렸던 사람이었어요. 다시 예배의 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까요.
반주를 못하겠는거에요.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었어요. 이렇게까지 방황했던 내가 어떻게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반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정말 많이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계속 눈물이 나왔어요.
아브람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그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와 부르심 앞에 다시 돌아와 그 자리에 서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어요.
아브람도 하나님 앞에 설 면목이 없었을거에요. 너무 부끄러웠을거에요.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라 외쳤던 그 고백이 계속 생각났을거에요.
방황을 하던 저에게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주셨어요.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 곁으로 잘 돌아왔다"
아브람에게도 그러셨을거에요.
그가 있는 곳은 벧엘. 하나님의 집이에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던 그가, 하나님의 집. 아버지의 집. 자신의 집으로 이제 돌아왔어요.
죄송한 마음으로 가득찬 그에게 하나님은 “괜찮다. 잘 돌아왔다. 이제 나와 함께 살면 돼" 라고 말씀하셨을거에요.
이곳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실거에요. “한 주 힘들었지? 나와 함께 쉬자. 내가 주는 쉼을 누리면 된다. 마음껏 누려"
이렇게 아브람의 여정이 마무리가 되고, 우리의 예배도 설교도 마무리가 되면 정말 좋을거에요. 설교가 일찍 끝나는 것만큼 쉼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설교는 지금 끝나지 않아요. 아브람의 믿음의 여정도 이렇게 끝이 나지 않았어요.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다시 힘을 내서, 용서도 받고 위로도 받으면서 끝나면 참 좋은데요. 그의 믿음을 다시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의 결단을 재확인하려는 것처럼 두번째 위기가 곧바로 찾아와요.
바로 조카 롯이에요.
아브람을 따라 왔던 그가 갑자기 아브람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요.
그는 그저 삼촌을 따라왔을 뿐인데, 생각하지도 못한 복을 경험하게 되어요.
아브람만 복을 받아 부유해진 것이 아니라, 5-6절의 말씀처럼 그도 부유해지기 시작했어요.
가축과 거느린 동물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식량과 물 그리고 땅이 필요해졌어요. 아직 그 땅의 기근은 끝나지 않았거든요. 자원이 부족해요.
기존에 그 곳에 살던 거주민들과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는데, 더 큰 문제는 아브람과 롯의 종들이 충돌하기 시작했어요. 한정된 자원을 쪼개서 쓰는데 자꾸 가축도 동물도 사람들도 늘어나니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죠.

아브람과 롯

아브람이 롯을 데리고 왔어요. 롯은 아브람을 잘 따랐어요. 아브람은 롯을 불러 잘 말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지금 꽤 오래 같이 있었다. 너도 이제는 독립할 때가 된 것 같다. 너가 가진 모든 것들을 갖고 이제 살 곳을 찾아 떠나라"
하지만 아브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서로의 마음이 상할 수 있어서 조심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브람은 자신의 지위로 롯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롯이 비록 어리고 자신의 조카이지만, 그를 나와 똑같은 동등한 존재로 대우하며, 명령이 아닌 대화를 통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돕기로 결정한 것이죠.
롯이 자신의 강요에 의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해요.
아브람이 우선적인 선택권을 롯에게 주었어요.
“너가 좌를 선택하면 나는 우로 가겠고, 너가 우를 선택하면 나는 좌로 가겠다.”
아브람이 연장자이기에 먼저 선택할 수 있었어요. 아브람도 어느 땅이 더 비옥하고 살기 좋은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선택권을 롯에게 넘겨요.
지금 롯과 함께 살 곳을 선택하는 이 순간이 두번째 위기였어요.
또 다시 아브람이 자신의 눈에 좋아보이는 것을 선택해서 나갈 수 있는 그런 두번째 위기의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한번의 경험이 있었던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고 자신의 앞길과 미래는 오직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정을 했어요. 두번째 위기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죠.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돌보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선택과는 다른 선택을 아브람이 하고 있어요.
아브람은 첫번째 위기를 통해 배운거에요.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나를 공급해주신다.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셨고,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을 더 소중히 여기고 신뢰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그래서 롯에게 기꺼이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어요.
롯은 어떠했을까요? 아브람 곁에서 모든 것을 보았던 롯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가장 비옥한 땅을 선택했어요. 그의 숨겨져있던 본성이 드러나요.
“먼저 선택권을 주었던 아브람에게도 감사를 표하지 않아요.”
“약속과 무관한 자신에게도 복을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어요.”
지극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욕심에 따라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눈에 좋아보이는 것을 신뢰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10절이에요. 함께 읽어볼까요?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데, 그 곳이 여호와의 동산. 에덴 동산과도 같았고, 세상을 대표했던 애굽과 같았다고 하죠.
우리는 에덴 동산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에덴 동산하면 각자가 떠올리는 어떠한 환상? 그러한 이미지가 분명히 있을거에요. 굉장히 아름답고 평온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깨끗한 이미지를 주는 것이 에덴 동산일거에요.
그가 선택했던 그 땅.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그런 곳이었어요.
가장 비옥하고 가장 좋은 물이 흐르는 곳.
기근과 같은 어려움은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곳.
그의 선택에는 머뭇거림이 없어요. 어떠한 감사도 표하지 않고 그 땅을 바라보며 홀린듯 길을 떠나요. 아브람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고 그냥 선택하고 가버렸어요.

괜찮다 괜찮아

떠나는 롯을 바라보는 아브람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아브람은 타지에서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던 조카 롯을 정말 허망하게 보내버렸어요. 두번째 위기 앞에 하나님을 신뢰하려는 마음을 갖고, 우선적인 선택권을 주고 그와 헤어졌어요.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과 별개로 저는 굉장히 서운했을 것 같아요.
기껏 데리고 와서 먹이고 키워줬는데, 기회가 생기자 어떠한 마음의 표현도 없이 떠나가버렸잖아요. 더군다나 정말 좋은 땅을 롯이 선택해서 갔어요.
성경을 보면 ‘아브람은 가나안에 남았고' ‘롯은 요단 온 지역’을 택했다고 해요. 아브람이 손해를 본 것 같아요.
롯이 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아브람의 가족이었기 때문이에요. 복을 주겠다 한 아브람과 함께 있었기에 덩달아 복을 받았던 것이었어요.
아브람 덕분에 롯이 독립해서 살 수 있게 된거에요. 그런데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버렸어요.
여러분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의 모습이지 않아요?
자신을 향해 주어졌던 모든 사랑과 은혜 그리고 복을 뒤로 하고 세상을 선택해 길을 떠난 롯의 모습은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세워주셨고 구원해주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저도 여러분도 정말 너무하게도 롯처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은혜를 잊고 세상만 바라보고 살 때가 많아요.
내 앞에 있는 어려움과 고난에 너무 몰입해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면서 하루를 그리고 한 주를 허비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는 ‘그렇게 세상을 쫓아가고 바라보라고 주신 것'이 아닌데, 우리는 모든 생각과 마음을 온통 세상에 맞추며 살려 해요.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리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사라지고 말 자리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체 내 모든 신경을 세상에 쏟아내며 살아요.
롯이 땅을 선택하는 이 이야기를 처음 받아본 첫 독자들이 있어요.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보고 들었던 첫 독자들은 롯이 선택한 땅을 바라보며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롯이 곧 망할 땅을 선택했다.”
첫 독자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사실과 요단강 유역의 지형을 정말 잘알고 있었어요.
우리는 그곳에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속에 그림을 그리고 이미지화 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들은 이 이야기를 딱 듣는 순간 그 지형이 머리속에 그려졌어요.
나일강 근처에 있는 이집트. 그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한 나라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았던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 역시 비옥한 땅을 노리는 수많은 나라들의 공격이 있겠다.라는 것을 첫 독자들은 알았어요.
저와 여러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쏟아내고 있는 바로 그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에요.
하나님 앞에 적극적인 반기를 들고 싸우는 곳에서 우리 역시 롯처럼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세상을 바라보고 걸어갈 때가 많아요.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여름의 그 결단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길 바래요.
오늘 본문 14-15절을 읽어볼까요?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롯이 떠난 후 허망한 마음을 갖고 있던 아브람을 하나님이 데려가셔서 위로해주기 시작하셨어요.
“너와 함께 했던 그 롯은 이제 너를 떠났지만, 너에게 가장 소중했던 조카가 너의 곁을 떠났지만"
“괜찮다. 괜찮아.”
“여전히 너에겐 내가 있다.”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위로가 아브람에게 찾아왔어요. 두번째 위기를 견디고 버텨낸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칭찬하고 계시는거에요.
“잘했다. 너는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아니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내가 여전히 너와 함께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말하고 계실거에요.
“잘 살아냈다. 잘 견뎌냈다.”
내가 너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두번째 위기를 견뎌내고 위로를 받은 아브람은 거처를 헤브론으로 옮겨요. 가장 비옥하고 좋은 땅을 롯에게 주었다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를 위해 헤브론을 준비해두셨던거에요.
헤브론은 상대적으로 기름진 토양을 갖고 있고, 다양한 종류의 과실과 견과류, 채소가 정말 잘 자라던 곳이었어요.
헤브론에 온 아브람마므레 상수리 수풀까지 이동하여 거기에서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았어요.
마므레 상수리 수풀은 지난 주 나누었던 세 겜처럼, 사람들이 정말 신성한 장소로 여기며, 풍요의 신전을 세워놓았던 곳이었어요.
아브람은 그 곳에 제단을 세웠어요.
제단을 세웠다는 것은 이제 이 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다! 라고 낙인을 찍은거에요.
그는 그 곳에서 매일 예배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어 나가기 시작했어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롯을 보내고 난 뒤 아브람은 “진짜 소중한 것을 두고 다른 것에 마음을 두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했어요.

아브람의 결정 원칙

여러분 우리도 아브람처럼 두번째 위기 아니 그 이상의 어려움이 계속해서 찾아올거에요. 첫번째 위기에서 아브람은 F를 맞았어요. 하지만 두번째 위기에는 A+를 맞았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첫번째 위기를 통해 깨달은 것을 토대로 아브람이 결정하는데에 있어 4가지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었어요.
첫번째, 질문을 바꾸세요.
여러분은 무엇을 근거로 결정을 내리나요?
언제나 즉시 얻을 수 있는 이익 혹은 평안함에 따라 결정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롯처럼 분명하고 즉각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 바라보면 우리의 인생은 고달파질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쿠팡 쓰죠? 로켓 배송도 사용하죠?
로켓 배송 진짜 엄청 편하죠. 그런데 이 로켓배송이 신앙인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 알아요?
굉장히 편리하고 좋은 시스템인 것은 맞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 시스템에 길들여지면서 “즉각적인 반응을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너무 잘아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기다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결과란 말이에요.
그래서 결정을 내릴 때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지 못하는거에요.
이 것을 선택하면 나에게 어떤 이득이 올까? 이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까?
이런 질문을 멈추세요.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세요.
그리고 질문을 바꾸세요.
이 것을 선택했을 때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렇게 질문하면 굉장히 괴로울거에요. 빠른 삶에 익숙하기에 굉장히 불편할거에요.
침묵과 불편함 속에서 한번만 더 인내하고 참으면 하나님이 길을. 마음에 감동을 주실거에요.
마음의 감동이 오는 그것을 선택하세요.
두번째, 결코 서두르지 마세요.
기다림에 지쳐 서두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거에요.
기다림 속에 내린 마음의 감동에 따른 그 선택은, 성급하게 결정한 것보다 더 큰 선한 영향과 결과를 가져올거에요.
여러분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인내하며 내린 선택의 결과를 결코 낮게,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지 마세요.
롯은 계곡과 수풀을 살펴보았고 많은 물이 모이는 곳을 서둘러 선택했어요. 그가 선택한 땅은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되던 전혀 상관하지 않았어요.
서둘러 선택했고 스스로 망하는 세상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세번째, 잊어버리세요.
아! 저거 선택할걸! 저 선택지가 더 좋았던 것 같은데.
하고 돌아보지 마세요. 잊어버리세요.
섣부르게 한 선택은 여러분에게 영원한 행복과 안전을 보장하지 않아요.
그냥 그 선택을 한 그 순간만 기쁠 뿐이에요. 당장 내 손에 들어오는 이득만을 보고 기쁠 뿐이에요.
그것이 사라지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요.
침묵과 불편함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감동에 따라 선택했다면, 다른 선택지를 기억하지 마세요.
잊어버리세요. 그래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바로 갈 수 있어요.
마지막, 기억하세요.
내가 나의 기분과 이익을 위해 선택했을 때 여러분이 경험했던 그 어려웠던 순간들을 기억하는거에요.
당장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과의 동행을 타협한다면, 그것은 세상 나쁜 결정이에요.
그 결정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하나님 없는 돈? 성공? 새로운 사랑? 미안하지만 실패할거에요. 반드시 실패하고 아파할거에요.
여러분이 해왔던 수많은 선택을 돌아보고 그 것에 따라왔던 아픔들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따라 선택했을 때의 기쁨과 감격으로 그 자리를 채우세요.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동행을 선택했을 때 누렸던 그 평안함을 기억하며 사세요.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이 질문을 하고 선택해야 해요.
이 선택이 하나님과의 나의 관계를 나아지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YES라면,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공급해주시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선택하세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NO라면,
그 길로는 단 한 걸음도 디디지 마세요.
반드시 기억하세요. 선택의 순간 우리는 이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거에요.
이 선택이 하나님과의 나의 관계를 나아지게 하는가?”
이 질문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모든 삶의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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