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들에게 주신 소망

베드로 전서 1-2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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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1 베드로, AG2 예수님, AP 나그네, CP 세상, PW 소망, MIW 유업, 구원, SC 믿음 안에서 주신 소망, A 하늘, C 땅

Notes
Transcript

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평안하십시오’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일교차가 심한 요즘은 감기에 조심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셔서 계절의 변화에 잘 적응하시기 바랍니다. 내일부터는 마스크 외부 착용 의무가 없어집니다. 계절성 질환인 감기가 강할 것으로 보고 실내 마스크는 여전히 착용하기로 했다고 하니 모두 유념하셔서 방역에 잘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한 일은 우리 교회에서 이찬수 목사님을 모시고 가을 집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노회 장로회에서 이 목사님을 섭외하여 우리 교회당을 빌려서 초청 부흥회를 가집니다. 다음 주 4, 5일 화, 수요일 저녁 시간을 잘 활용하셔서 말씀을 통해 은혜를 누리고 가을을 풍성한 영적인 시간으로 만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오늘은 베드로전서 두 번째 설교로 ‘나그네들에게 주신 소망들’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를 택함받은 나그네라고 부르며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증가하기를 축복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그네라고 하면 정주민이 아닌 임시 거주자로서 살아가는 자들인데 은혜와 평강이 증가한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그네라는 신분 자체가 소망없는 방랑자와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성도의 나그네 됨이 결코 소망없는 절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 나그네가 됨으로써 더 큰 소망을 가진 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상의 나그네 된 성도는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소망이 이 나그네들에게 주어졌는지를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사도가 성도를 나그네라고 하면서 은혜와 평강의 증진을 구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택함받은 성도로서 세상에 나그네로 살아가는 자들은 세상 너머에서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성도를 거듭난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3절 말씀을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3절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여기보면 사도는 성도가 거듭난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 혹은 ‘위에서 태어난다’는 뜻으로 우리 말로는 ‘중생’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이 증언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대로라면 성도가 세상에서 나그네가 된 것은 세상을 너머 하늘나라에 다시 태어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실제적인 나라를 이루고 있지만, 이 세상 나라는 그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함께 존재합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한 번 태어난 뒤에, 예수님의 성령을 통해 하늘나라로 한 번 더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 결과 참 성도는 세상에 대해서는 정주민이 아닌 나그네가 되고, 종말의 날에 사라지고 없어질 세상이 아니라 영원히 정주할 참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중생이라고 하고, 거듭난 자가 되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W3. 문제 제기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거듭나는 것이 세상에서 나그네가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갑니까? 만약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한다면 무슨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까? 세상에 속하지 않고 나그네가 된다면 이 땅의 소망들은 참 소망들이 아닌데, 그렇다면 성도가 붙들어야 하는 삶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방법

이 세상에서 성도의 삶이요 정체성인 나그네 됨이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걱정보다는 찬양을 앞세웁니다. 3절 상을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3절 상)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
사도는 우리를 세상의 나그네로 만드신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표현은 ‘찬송하다’를 ‘동사’로 번역했기 때문인데, 원어상으로는 ‘형용사’이기 때문에 본 절은 하나님은 ‘찬송받으실만한 분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왜 하나님이 찬양받으실만한 분이신가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많으신 긍휼로써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가 나그네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거듭남과 그로 인한 나그네됨의 제 일 원인, 혹은 유효적 원인은 하나님의 긍휼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은 자신의 긍휼하심을 통해 죄인인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셨고, 그 결과 세상에 대해서는 나그네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J2. 예수님의 신성

더하여 사도는 이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칭합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부의 긍휼을 우리에게 알리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성도인 우리의 아버지도 되시기 위해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세상에 대해 나그네로, 하나님에 대해 친 아들을 삼아 주신 것입니다.

J3. 예수님의 인성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받고 죽으신 이유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죄인인 우리를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자녀로 옮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아담 아래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죄의 권능은 사라지고 세상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천국의 자녀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3절 전체를 이런 관점에서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3절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성도는 아버지의 긍휼과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 거듭난 백성이 되어 세상에 대해서는 나그네가 되었으나, 이 땅에서 천국의 소망을 가진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그네이나 소망없이 방황하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W1. 무엇보다 예수님은 성도에게 부활의 생명으로 산 소망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새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벗어나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절망이 아닌 참 생명의 본질을 누리며 사는 희망입니다. 거듭난 백성은 영이요 육이 아니기에 이 땅에서는 나그네이지만, 본질은 영의 나라의 정주민으로 삽니다. 요한복음 3장 6, 7절입니다.
요한복음 3장 6, 7절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성도는 거듭남으로써 세상에 대해 나그네 되고, 천국에 대해 정주민 된 새 신분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나그네 됨은 우리를 생명의 산 소망을 가진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W2. 왜냐하면 이 산 소망으로 성도는 천국을 유업으로 얻는 상속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얻은 자는 하늘에 간직해 두신 영적 유업을 잇는 자가 됩니다. 거듭난 자, 그래서 나그네 된 자에게 주신 산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에 간직한 유업을 누리게 합니다. 4절 말씀을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4절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세상은 썩고, 더러워지고, 쇠하는 운명을 가졌습니다. 우주의 무질서도를 말하는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것이 법칙입니다. 아담 아래에서 범죄한 인생의 역사는 갈수록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정주하는 것이 오히려 영원할 수 없습니다. 요한1서 2장 17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요한일서 2장 17절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므로 은혜로 거듭나 세상에 대해 나그네 된 자들만이 하늘에 간직된 영원한 생명, 곧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소망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종말의 구원을 주시고자 이 나느네들을 능력으로 보호해 주십니다.

이 땅의 나그네인 성도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원한 기업 상속의 소망과 함께 종말의 구원의 소망을 꿈꾸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유업을 잇게 하시고자 성도를 세상에 나그네로 만드셨고, 이는 마지막 날에 심판을 이기고 영원한 구원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날의 구원을 위해 나그네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 안에 안전히 거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본문 5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5절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 하나님은 죄인으로 세상을 살던 자기 백성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그 백성들을 보하시고, 마침내 종말의 날에 영원한 영광의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내 힘이 아닌 믿음의 선물 안에서 세상의 나그네 된 자들만이 말세의 심판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T1. 베드로는 예수님 안에서 참 나그네의 소망을 누렸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베드로는 누구입니까? 그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 잡던 어부입니다. 종교심이 있어 그는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에도 참여하였고, 그때 유대 광야에서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그는 물고기를 못잡고 그물을 깊고 있던 어느 날 그를 찾아오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엄청난 고기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고 부와 배를 뒤로하고, 고향을 떠나 주님을 따르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고향을 떠난 나그네가 되었을 때 그의 인생은 예수님 안에서 천국을 누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한 것을 넘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씩 회개하는 수많은 무리를 믿음으로 인도하는 대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 세례를 행하여 능력을 전함으로 복음이 온 이방에 전파되도록 하는 놀라운 영적 지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직업을 떠나고 고향을 떠남으로 세상에 나그네가 되니까 그에게는 영적인 새 고향이 기다리고 있었고, 자신은 온 세상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소망의 나그네로 살게 된 것입니다.

T2. 세상은 안전한 정주를 자랑하나 영원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이 이 땅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갑니다. 야고보는 세상의 부와 힘도 그렇게 다 지나간다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1장 11절입니다.
야고보서 1장 11절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이 땅의 성공과 부도 무더운 바람에 꽃이 떨어지고 아름다운 모양도 없어지는 풀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뜨거운 바람을 보내시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해가는 것입니다. 꽃으로는 사람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꽃이야말로 아름다운 쓰레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세상의 외모는 결코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한 것들뿐입니다.

T3. 그러나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신 나그네는 참된 소망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해 성도를 세상의 나그네로 부르시고, 영원한 소망을 주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참된 소망의 근원이 되는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긍휼하신 사랑으로 아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이 놀라우신 은혜는 믿음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세상에 대해 나그네 되는 영광을 선물로 줍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야말로 소망을 낳는 열쇠가 됩니다. 히 11장 1절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 ‘바라는 것’이란 말은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다르게 번역하면 ‘믿음은 소망의 실상입니다’라는 말이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소망은 믿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믿음, 곧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그 은혜야말로 진정한 소망의 근원인 것입니다. 성도는 이 믿음을 선물 받았기에 이 땅에 나그네로 살면서 영원한 산 소망을 누리고 사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듭남의 은혜를 누리고 참 소망 중에 사십니까? 세상의 나그네 됨을 믿으십니까? 성도는 세상에 대하여 나그네로 삽니다. 이는 세상을 정주하는 내 집이 아니라 잠시 다녀가는 쉬는 곳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세상 문화는 정주민과 유목민의 문화로 나뉘어 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주하는 곳에서 불러 유목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영원한 정주지인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나그네로 부르십니다. 성도는 진정한 나그네가 될 때 참된 소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주시는 부활의 생명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에서 누리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이 땅의 나그네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길이 없습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나그네의 소망을 내 삶의 참된 소망으로 붙드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긍휼하심과, 아들의 순종의 삶을 마음으로 믿어 천국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소망하고, 영원하고 변함없는 천국을 꿈꾸며, 이 땅에서 종말의 날까지 믿음 안에서 아버지의 보호받는 구원의 백성이 되기를 꿈꾸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정주하면 위로부터 오는 이 하늘의 꿈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닌 주님을 바라고, 세상이 아닌 나그네의 길을 꿈꾸며 살 때 참된 믿음 안에서 주시는 소망이 내 삶의 본질이 될 것입니다. 오늘 약속의 말씀들을 심령에 잘 붙드시고 택함받은 나그네들에게 주시는 참된 소망을 믿음 가운데 굳게 붙들고 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245장 저 좋은 낙원 이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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